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318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9년 10월 8일 01시 06분 등록

IMG_0199.jpg
산부추 꽃이 폭죽처럼 피어나고 있다.
빽빽한 나무들 틈에서 부족한 빛을 견뎌 한 여름을 났을 그의 꽃은 그래서 저렇게 예쁜가 보다.

그대 보고 싶다던 이 숲의 가을이 점점 예뻐지고 있습니다. 꽃향유가 보라색의 정수를 드러내며 제 꽃을 길게 피우자, 양지바른 땅의 산국들이 서둘러 노란색으로 화답합니다. 산부추 꽃은 폭죽을 터뜨리듯 피어나고, 밤 새소리는 한결 멀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낮, 숲에 가까운 하늘은 햇살을 튕겨내는 날개 달린 씨앗들의 대 이동으로 은빛 물결입니다. 두꺼비들도 이미 다시 산에 올라 자리를 잡은 듯 하고, 뱀들도 숲 언저리보다는 산 중 은신처에 마음을 두고 있는 듯 합니다. 이미 씨앗을 떠나 보낸 풀들은 자신의 지상부(地上部)를 사위어 땅으로 돌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헐거워지고 있는 이 즈음의 숲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앞에 두고 오늘 나는 그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숲의 희망적인 풍경 하나를 전하려 합니다. 나무와 풀들의 뿌리가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종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우리가 보는 다 자란 나무와 풀은 그들 몸 전체 양의 대략 60%정도일 뿐입니다. 나머지 40%를 그들은 땅 속에 묻어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뿌리라고 부릅니다. 뿌리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또한 물을 통해 필요한 양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식물은 또한 뿌리를 통해 자신이 만든 영양분의 일부를 뿌리 주변으로 분비시켜서 자신들에게 영양분 공급을 도와줄 토양 미생물들의 활동을 자극합니다. 따라서 뿌리 주변에는 가는 뿌리 분비대가 존재하게 됩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근권(根圈, rhizosphere)이라고 부릅니다.

 

식물이 한 개체만 존재하는 토양 속의 뿌리 분비대는 미미하게 형성됩니다. 반면 식물군락이 발달한 곳의 토양 속은 뿌리 분비대가 광범하게 형성됩니다. 앞의 토양 환경에서 싹을 틔운 식물은 미생물의 도움이 미미하므로 척박함을 안고 자라야 하는 식물이고, 뒤의 토양 환경에서 싹을 내는 식물은 광범한 원군이 배경으로 존재하니 숲의 은혜를 받고 자라는 식물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앞의 식물은 절망적인 환경을 안고 자기를 실현해가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식물과 빛을 다툴 일은 거의 없겠지요. 한편, 뒤의 식물은 그 반대일 것입니다.

 

원군이 별로 없는 절망적 환경을 받고 태어난 식물은 어떻게 할까요? 그는 어떻게 그 절망적 상황을 이겨낼까요? 그들이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은 간단해 보입니다. 척박함이 허락한 만큼 키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근권을 확대하는 일을 꾸준하게 지속합니다. 자신이 만든 영양분의 20% 가량을 뿌리를 통해 분비해 줌으로써 아직 미미한 미생물 원군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족한 양분으로 삶이 고단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낼 첫 번째 결실(씨앗)이 조금씩 더 비옥한 환경을 얻고 결실을 확대해 갈 수 있는 초석을 다져가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의 질서 속에는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는 진리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척박함을 이겨내고 자신의 영토를 만든 풀과 나무는 모두 그렇게 자신의 초석을 다져가는 일로 절망을 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원군을 얻기 위해 자신의 미미한 결실을 나누고 있음도 기억할 일입니다.

 

낙엽이 지려할 때 이 숲의 가을은 더 예쁠 것입니다. 낙엽을 통해 땅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대 처한 땅이 어떠하든 이 가을 그대 원군이 더 많아지는 순환이 함께 하길 빕니다. 그것을 요즘 경영분야에서는 네트워킹이라 부르나요?

IP *.229.142.35

프로필 이미지
2009.10.08 04:43:06 *.100.182.69
시와 같이 아름다운 글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정명윤
2009.10.08 11:54:41 *.20.125.86
낙옆이 떨어져 거름이 되어 또 그 나무를 키우고, 뿌리를 키우고,.........................,사람의 마음을 키우고.....오늘 맘씨좋은 글을 읽고 내 마음을 키우고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9.10.08 12:05:22 *.190.122.223
참 좋은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길가에 심어진 은행잎들이 색깔이 변하고 있네요.

아름다운놈님이 살고계시는 숲속에도 가을이 찾아오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무들이 홀로서는 그 계절을 상상합니다.

나목의 아름다움...나이 마흔에서야 알았습니다.

40%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60%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 세월입니다.

눈에 들어온다고 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6 [월요편지 16] 용기를 주는 대화법 file 습관의 완성 2020.07.12 1198
775 [화요편지]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file 아난다 2020.07.14 1090
774 막스 베버는 왜 그랬을까? 장재용 2020.07.15 1145
773 [용기충전소] 랜선시대, 피할 수 없다면 김글리 2020.07.17 934
772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머리보다는 몸이 움직이는 춤 file 알로하 2020.07.19 927
771 [월요편지 17] 말 안 해도 내 맘 알지? 그럴 리가요? file 습관의 완성 2020.07.19 1069
770 [화요편지]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file 아난다 2020.07.20 1215
769 닿을 수 없는 곳 [2] 장재용 2020.07.22 1075
768 목요편지 - 장마 [1] 운제 2020.07.23 928
767 [용기충전소]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2] 김글리 2020.07.23 1289
766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나비를 꿈꾸며… 1 file 알로하 2020.07.26 1056
765 [월요편지 18] 처음엔 누구나 근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쳐 맞기 전까지는 [1] 습관의 완성 2020.07.26 1224
764 [화요편지]욕심, 실은 깊은 두려움 file 아난다 2020.07.27 1240
763 월급쟁이 알바트로스 장재용 2020.07.28 1091
762 목요편지 - 생활의 발견 운제 2020.07.30 916
761 [용기충전소] 인생이 각색되는 순간 김글리 2020.07.30 1617
760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나비를 꿈꾸며... 2 file 알로하 2020.08.02 904
759 [월요편지 19] 내가 글을 쓰는 근사한 이유 5가지 file [1] 습관의 완성 2020.08.02 990
758 [화요편지]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file 아난다 2020.08.03 1079
757 몸 가진 것들이 사는 법 장재용 2020.08.05 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