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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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당시 FM의 팝음악 프로그램에 미쳐있던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신문에 소개되던 새로운 팝 뉴스를 눈여겨보곤 하였는데, 10월 어느 날, 무려 8년 만에 세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는 어느 밴드의 꼭지기사를 읽게 되었다. 대체 어떤 그룹이길래 그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서야 세 번재 앨범을 만들어서 내놓는 것인지 그리고 이렇게 일주일에 한번 기사도 몇개 보낼 수 없는 좁은 지면에 나올 정도인가 싶었던 밴드의 이름은 Boston이라는 락 그룹이었다.


1984년 중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 친구 덕택에 처음으로 팝송이라는 것을 제대로 듣기 시작하고 그 친구 집에 가서 '월간팝송'이라는 월간 음악잡지 그리고 온갖 브로마이드 사진 속의 화려한 뮤지션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팝 음악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 그리고 1985년과 1986년이라는 시기가 국내에서는 일렉트로닉과 유럽의 댄스음악이 판을 잡고 있던 탓에 FM에서 주로 듣던 음악도 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 Boston의 음악은 처음 듣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의 새로움과 신선함, 음악을 들으면서 "와, 정말 신선하다"라는 표현을 처음 해보았을 것이다. 그 만큼 이들의 음악은 달랐다. 그 다름의 중심에, 그 다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냈던 사람이 이 밴드를 만들고 리드하고 그룹의 모든 음악을 쓰고 노랫말까지 입힌 Tom Scholz였다.

21살까지 기타를 잡아보지도 않았던 그는 MIT를 졸업한 후 Polaroid에서 주간에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밤에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곡을 쓰고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하면서 기타의 달인이 되었고,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 - 기타, 베이스, 키보드. 오르간 등 - 를 마스터하면서 데뷰앨범의 곡을 하나씩 완성해갔고 결국 1976년 첫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모든 곡을 작곡하고 엔지니어링까지 마무리한 Demo Tape을 레코드사에 들려주고 난 후, 레코드사에서 그에게 요구한 것은 Tape에 있는 원곡을, 밴드의 형태를 만들어서 멤버를 구성한 후 그 멤버들에게 Demo Tape의 연주를 똑같이 copy 하고 재녹음시킨 일 뿐이었다.
그렇게 발매된 Boston의 동명타이틀 앨범 <Boston>은 1990년대 중반 Alanis Morriset이라는 여성이 나타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팔린 데뷰앨범이었으며, 2년 후 두번째 앨범 <Don't Look Back> 그리고 8년 후 1986년에 비로소 세 번째 앨범인 <Third Stage>를 내놓게 되었다.
내가 그 - Tom Scholz - 에게 달인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백지상태에서 스무살이 넘은 시점에 악기들을 마스터하기 시작했고 아울러 곡을 쓰는 것 그리고 그 곡을 레코딩하고 프로듀싱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마스터한 기타의 사운드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디바이스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원래 자신이 하던 Job이 끝난 후 취미로 시작했던 것이 본래의 Job을 밀어내고 자신이 평생 하는 業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본다.
성격적으로 마냥 부드럽고 둥글둥글하지 못해서 그는 음악이라는 비즈니스세계에 발을 들인 후 한시도 조용하게 지내지 못했다.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후 거대 레코드회사와 10여년 이상을 법정에서 다퉈서 결국 승리했고, 또한 밴드 초기 시절에 함께 했던 동료들이 밴드에서 거둔 성공을 등에 업고 밴드에서 자신들이 했던 것 이상의 내용으로 포장하려 한 것을 끝끝내 막아서 서로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고, 30여년 넘게 밴드의 리드보컬이었던 사람마저도 Tom Scholz라는 인물을 불편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관계에서의 정확성과 비즈니스에서의 투명성을 추구한 것이며, 음악 외에 자연과 동물보호에 앞장서 왔으며 또한 자신 만의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1976년 데뷰앨범을 비롯해서 초기 3장의 음반은 2천 5백만장이 넘게 팔렸지만, 데뷰앨범 발표 이후 2013년 현재까지 밴드의 정규앨범은 고작 다섯 장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드문 활동을 했고, 본인 자신도 이제는 60대 중반을 넘어선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 보았을 때 그는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어렵지 않게 살아갔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것을 단지 가볍게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이 평생할 수 있는 수준, 아니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후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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