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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1년 2월 11일 08시 33분 등록


  "거의 사흘마다 바람이 불어서 비둘기집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세금을 내기 위해 가축을 처분해야했습니다. 태풍이 불면 포도밭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과수원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안심하고 창작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가난 속에서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는 자신의 후원자인 메디치가문으로부터 농장을 하나 기부받았는데,
얼마 후 도나텔로는 그 농장을 다시 메디치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위에 적어 둔 내용입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후원한 메디치가의 참주였지요. 그는 특히 도나텔로를 극진히 아껴 자신이 죽은 후에도 도나텔로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피렌체 교외의 농장 하나를 도나텔로에게 주라고 유언을 했답니다.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는 그 유언을 지켜 도나텔로에게 농장을 하나 주었지만, 그는 예술가였지 농장주는 못되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피에로는 다시 그 농장을 돌려받고 그 대신 매달 그 농장에서 들어오는 수입만큼을 그의 구좌에 넣어 주게 했답니다. 도나텔로는 이 조치에 진심으로 고마워했지요.

그 후 도나텔로는 1466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코시모 데 메디치 무덤 옆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게 됩니다. 피에로는 이 약속도 지킵니다. 지금도 피렌체에 있는 산 로렌초 교회의 메디치가문 묘지에 코시모와 도나텔로는 나란히 묻혀있습니다.   감동적이지요 ?   삶도 나누고 죽음도 나눈다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떠나면서 감동과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가득했습니다. 500년 전에 그 도시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었지요.  도시 자체가 걸작이었고, 그 도시의 건축물들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예술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요. 

코스모 데 메디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도시의 기분을 알고 있다. 우리 메디치 집안이 쫒겨날 때 까지는 50년도 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물건은 남는다"

그의 말대로 500년이 지난 지금도 피렌체는 관광객으로 북적거립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잊을 수 없는 역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남겨진 물건뿐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든 위대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시료리아 광장에서 그 유명한 '다윗 조각상'을 보면서 나는 23살의 미켈란젤로를 생각합니다. 코시모와 도나텔로의 묘지를 보며 그 속에 나란히 묻혀있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웃고 있군요. 신으로부터, 또 운명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니까요.

자기경영은 르네상스입니다. 인간의 부활이지요. 역사는 결국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경영은 바로 내 속에 묻혀있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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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11 08:46:25 *.10.44.47
사부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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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09:01:55 *.10.44.47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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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1.02.11 08:49:54 *.160.33.89
그래, 미영이 북콘서트에서 보면 좋겠구나. 
그 날도 에레베이터가 열리면 그 앞에 앉아 있으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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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2.13 09:55:11 *.220.23.66
아...스승님,
책제목으로 하고 싶습니다.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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