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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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조차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다시 까만토끼를 되살려낸다.
어려서 집에 토끼를 키웠는데, 그 속에 까만토끼는 한마리도 없었다. 그보다 더 어려서 희미한 기억 속에는 처마 밑에 토끼가죽이 걸려있고 거기에는 고드름이 녹은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도 까만토끼는 없다.
내가 까만토끼를 본 것은 서울 만화대전이 열리는 코엑스에서 솜인형으로 나온 것이었다. 까만토끼를 만들어서 팔겠다는 그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까만토끼를 보기 전까지는 내게는 까만토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특히나 아이들의 품에 안겨있을 솜인형으로는 더더욱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동생이 미술시간에 검정색으로 꽃을 그렸다. 꽃잎을 까맣게 칠해서 선생님이 엄마에게 그 일을 말씀드렸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솜인형을 보기 전까지 까만 것은 안된다는 것이 공기속에 섞여 있다가 귀로 들어어서 내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너무나 어려서 내 안에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으면서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 내가 아는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 그 기준들은 예쁘다고 뽑내는 것들 속에 섞여 들여와서 내 안에 들어있다.
까만토끼는 종이 속에 들여 놓으면 안되는 것들을 막아두는 경계를 순식간에 무시하고 들어왔다. 더이상 넘어서는 안되는 금(禁)은 힘을 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