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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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리듬을 벗어나 자유로운 길을 떠나는 것은 멋지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수 있는 기둥들이 늘어선 곳은 항상 필요하다.
영화 <인셉션>에서 의식의 서로 다른 영역들을 종횡무진 오가는 주인공은 꿈과 꿈 사이에서
현실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토템을 지니고 다닌다.
그 조그만 물체가 자신이 현실에 있는지, 아니면 바스러질듯 선명한 꿈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붙잡을 것이 없는 현실은 나비가 날아다니는 꿈과 다를 바 없다.
극단적인 자극들과 믿지 못할 수많은 사건들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날이 오면
당신은 어딘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리셋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그럴 때는 우리가 기억하는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 변하지 않는 익숙함이 여전히 있는 곳.
그 곳은 가저린하게 열을 맞춰 서 있는 기둥들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울림처럼
혼란스런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당신의 위차를 확인시켜줄 것이고, 번잡한
마음 속의 질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줄 것이다.
내 삶의 시계가 되어주는 공간과 그 곳에 스며있는 기억들은
혼돈의 파도가 치는 세상에서
날 제 위치에 서 있게 해준다.
- 구승회(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
....
오늘로서 벌써 49일이 되었습니다. 7주가 된 것이지요.
이제 내일부터는 다시 100일 여정의 나머지 절반이 시작됩니다.
다들 일주일간 계속된 '첫사랑 찾기' 글에 식상하셨을 수도 있고
참 대책없는 글에 이른 아침부터 황당해 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떨 땐 대문글을 쓰는 저 역시 난감할 때가 있었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주 내내 청룡부족의 오이야님의 글을 보면서
참 묘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번주 대문글 주제로 '첫사랑'을 선택하게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서영이의 아버지 집이 바로 다름 아닌 <제주도>였기 때문이지요.
실제 감독은 영화의 제작과 <제주도> 서영이의 집 건축을 함께 하였습니다.
옛날 집이 존재하고, 그것을 리노베이션해야 하는 설정, 그래서 오래된 아버지의 집에
서연이의 공간이 덧붙여지는 것이 영화 속 이야기의 핵심적인 내용에 어울릴 것이라는
감독의 바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제가 단군의 후예를 하면서 제일 먼저 서점에서 찾았던 책이 바로
<습관의 힘>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오이야님과 함께 같은 주에 글을 쓴다는 일이 참으로 묘했고
뭔가 우주적 설계 안에 내가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인사불성스러운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ㅎㅎ
...
어떤 분들께는 불편했을, 심지어는 거슬렸을 <첫사랑>을 굳이 이른 시간부터 써내려간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첫사랑>이라는 장엄한 영웅의 여정을 한 번쯤 거쳐다는 사실을
여러분 또는 저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캠벨의 영웅의 여정에서 영웅은 왜 모든 고난을 승리로 극복한 후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 여정은 다시 반복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왜 우리는 <영웅>의 여정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영웅>인 것이지요?
영웅을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바로 영웅이 아니었을까요.
<첫사랑> 찾기에 나섰던 당신이, 실은 바로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