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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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본 적이 없다.’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을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이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거나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우디 건축의 외관은 사진으로도 접한 적이 있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건물의 내부였다. 카사 바트요는 한척의 배나 잠수함을 타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듯 했고, 카사 밀라는 고대의 동굴 속을 탐험하거나 혹은 요나처럼 고래 뱃 속으로 삼켜진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장엄함과 신성함, 고통과 신음으로 가득차 보였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는 찬란한 빛의 궁전이었다. 그래, 짧은 견문 탓이겠지만 이런 건 미처 본 적이 없었다.
섬세하고 오밀조밀하기로 치자면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에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형이고 흉내내기였다. 여기에는 실제 건물이, 돌덩어리가, 쇠붙이가, 유리 조각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생명체처럼 꿈틀꿈틀거리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방 하나, 층계참 하나, 코너 하나를 돌 때 마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비바람 불고 잔뜩 흐리던 바르셀로나가 맑게 갠 아침, 숙소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향해 걸었다. 아마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우디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길가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를 한 잔 사들고 만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고, 이른 시간임에도 관광객들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건축과 조각으로 쓴 성경이자 예수의 삶이다. 크게 3개의 면으로 나눠진 성당의 외벽에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다. 앞으로 완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돌로 쌓아올린 가우디의 무모한 기도를 보면서 생각했다.
한 때 나의 게으름을 높은 이상과 완벽주의 탓으로 돌렸다. 현실의 높은 벽과 생계의 엄중함이 구차하지만 적당한 핑계거리였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이다. 용기가 부족한 것에 대한 불필요한 변명일 뿐이다. 여기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오늘도 하늘을 향해 끝없이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