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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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어제는 일요일이라 나름 집중해서 파박! 써냈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뭔가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렸어요. ㅠㅠ
하루에 글 하나씩 토하려면 아침부터 잘 생각해둬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급한대로^^; 예전에 썼던 글을 올립니당.
제가 학보사에 있을 때 썼던 인터뷰인데요.
우리가 '바둑'하면 흔히 알게 생각하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씨만큼
유명한 분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바둑계에 한 자리를 구축하고 계신 분이에요.
저는 인터뷰했을 때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둑과 인생을 연결해보고자 했었는데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네요.
내일은 꼭! 새 글 쓰겠습니다. 이틀 째부터 재활용해서 죄송해요.
집념의 하루 되세요. ㅎㅎ
집념의 승부사! 양재호 9단 | ||||||
프로바둑기사 양재호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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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기대와 지도로 일곱 살에 아마 1급 수준에 도달해 17세 때 프로로 입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좋아서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점점 바둑으로부터 멀어지기만 했다. 입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건강이 안 좋아지는 악재가 겹쳐 결국 방황 끝에 다시 바둑으로 돌아왔다. 대국에만 매진하던 다른 프로들과 달리 몇 년을 방황했기에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가 ‘연구실의 공부벌레’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기풍은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형성되었다. “실력은 따라주지 않는데 정상에 빨리 서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리를 추구하게 된 거죠. 실리를 추구할 때 취하고 아닐 땐 아니어야 하는데 저는 무조건 실리를 추구했으니까. 그러다 대마도 많이 죽었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더욱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패배로 인해 오는 충격은 더욱 컸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몇 시간씩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일까. 그는 번번이 다른 기사들의 그늘에 가리고 말았다.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등 소위 ‘4강’이 한창 활약하고 있었고 서서히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쯤엔 이창호와 유창혁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랭킹 5위’였다. 어느덧 그의 나이도 40을 넘었다. 승패에 대한 집착을 덜어낸 지금에서야 진정한 바둑의 즐거움을 알겠다고 말하는 그는 최근 바둑학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즐겁게 승부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바둑을 훨씬 더 잘 둘 수 있게 되더라고요. 뭐든지 즐겁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요즘 바둑계에서 성적을 잘 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돈이나 승패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정열을 다 바쳐서 하되, 욕심은 버리고 즐겁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17살에 프로가 돼 30년 가까이 바둑을 뒀는데 지금에야 그 경지를 깨달았으니까요”. 그에게 바둑은 스포츠와 예술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를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바둑은 한수 한수 혼신을 다해 두며 자기를 수양하는 예술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림이나 음악처럼 바둑 대국 하나하나가 바둑판 위에 바둑돌로 그려내는 작품이에요. 그러다 바둑판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그런 일을 반복하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자만하지 않게 되죠. 그러한 노력 끝에 탄생한 작품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것이죠. 지금 바둑 스포츠로 분류되고 적극적으로 상품화되고 있는데 원래 바둑의 성격에 맞는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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