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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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Y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인데, 녀석은 반장이었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닌 세탁소집 아들,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했고 모범적이었으며 공부를 잘했던 친구이다. Y와는 6학년때 같은 반이었지만 또 다른 친구 S와 함께 4학년때부터 같은 주산학원을 다녔기도 했다. Y와 S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은 소위 삼총사를 이루며 친하게 지냈다.
그런 Y를 만났다. 무려 20여년만이다. Y는 여전했다. 20년이 흘렀지만 Y는 특유의 착한 미소를 날리며 나를 반겼다. 우리는 명함을 주고받았다. Y의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허법인 땡땡, 변리사 Y’. 역시 Y. Y는 서울 유수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한 뒤 대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대기업문화와 여건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회사를 그만두고 신림동으로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운좋게(녀석의 표현에 따르자면) 2년만에 합격했다. 역시 모범생 Y였다.
하지만, 대화 도중 나온 Y의 말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자신이 얼마 전 방통대 법학과를 졸업했다고, 그리고 내년에는 일어일문학을 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직종에 몸담고 있는데, 무슨 공부를 그렇게 더 하려고 하냐고,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반문하자 Y가 이렇게 답했다. 일단 자신이 일하는 업계 사람들의 소위 말하는 스펙이 장난이 아니고 – SKY를 비롯, 대학원, 해외 유학파 등등 – 자신은 일본클라이언트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잘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공부를 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또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업계 선배들이 말하길, 변리사 업종에서 성공하려면 공부는 적당히 하고 사람관계를 잘 다져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영업'을 잘하라는 것. 실무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갖추어 지고 특출나지 않는 이상 거기서 거기가 된다고, 결국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독립도 하고 파트너(지분을 보유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착하지만 그리 외향적이지 않은 Y의 또 다른 고민이었다. 연봉이 높아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며, 도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 것, 열심히 사는 것인지 의문 아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의학을 전공했지만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의 CEO였고, 기업가 정신을 전파하는 대학교수였으며 지금은 현실정치에 뛰어 들어 만만치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멘토 안철수. 그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생활 태도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인 것 같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최우선의 자세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 한계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는 것, 대신 자신에게 맞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를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하며, 그것이 정해졌을 때는 묵묵히 정진하고 파고들어 결국엔 그 정점 – 그것이 외적이던 내적이던 – 에 올라서는 것, 아마도 그런 것일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잘 나가는 대학야구 투수인 칠봉이(유연석)와 그와 함께 ‘옵션’으로 들어와 만년 후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친구가 칠봉이를 질투하고 싫어한다. 그리고 실수로 칠봉이를 다치게 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그 친구에게 칠봉이 마누라(포수, 투수와 포수의 관계를 배터리라도고 한다)는 이렇게 말한다.
“칠봉이가 언제부터 주전이었냐? 그 녀석 고1까지는 만년 후보였다. 그런데, 그 녀석 묵묵히 훈련하더라. 제일 먼저 일어나 런닝 1시간, 오후 훈련 끝나면 혼자 쉐도우 500개, 그 훈련은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했어. 처음 야구 시작한 때부터 하루도 안 빼고. 독하지. 나도 그렇게 독한 놈 처음봤어. 쟤는 참 노력하는데 안 된다. 역시 야구는 타고나야 되나 했거든.
근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잘 하더라. 남들은 타고 난 줄 알지. 기사보니까 천재라고도 하고. 칠봉이 엄청 열심히 했어.너 걔만큼 했어? 칠봉이만큼 했냐고.”
주전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칠봉이의 실력이 단순히 타고난게 아닌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 열심히 산다는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명쾌한 장면이었다.
지원 과정까지 포함하면 연구원 공부를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책읽는 속도, 글쓰기 실력이 붙어야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게 맘처럼 되는 것 같지 않다. 언젠가 한번 말했던 것 처럼 요즘은 나사 몇 개 풀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열심히 산다는게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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