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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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벚꽃이 좋아요. 확 폈을 때 절정에 도달하는 뭔가 그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잖아. 물론 그 꽃이 한꺼번에 확 지지만은....그런데 한꺼번에 확 지는 것도 좋아.
EBS <고전읽기> ‘할아버지의 기도’ 녹취록 중에서
그 때도 벚꽃이 한창이었다. 그리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며칠이고 병원을 드나들며 눈물을 뿌리던 그 때, 꽃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케일로 슬픔을 뿌려대고 있었다. 생전에 그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나는 왜 피어있는 꽃이 아니라 지는 꽃을 보고 ‘한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걸까?
그가 떠나고도 계절은 세 번이나 바뀌어 겨울. 그 화려하던 벚꽃나무도 눈의 힘을 빌려서나 겨우 제 몸 치장을 할 수 있는 계절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심지어는 첫눈을 몇 번이나 새로 맞을 때까지 이상하게 내 머리 위에선 꽃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몽환이었으며 환상이었다. 무엇의 절정인지 알 수 없으나 매 순간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었고, 좌절이었으며, 희열이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절정의 체험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깨고 싶지 않았기에 이불 끝을 붙잡고 근근히 이어가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짝 한쪽 눈을 떠 보니 여전히 얇디 얇은 봄 차림새 그대로 거리에 서있는 내가 있다. 꿈에 취해 느끼지 못하던 한기가 한꺼번에 온 몸을 파고 든다. 두터운 외투를 챙겨입고도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 거리며 재빠르게 추위를 피해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새삼 아프다.
<고전읽기> 작업이 이제 막바지다. 오로지 스승에 대한 ‘그리움’ 하나만으로 가진 것 모두를 걸었던 이 무모한 모험도 이제 끝이다. 어쩌면 길은 여전히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나 숨 쉴 기력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써버렸으니 어찌 더 이상을 욕심낼 수 있을까.
너는 피가 달라, 유난히 삶이 빨간 너구나. 아마 네 책은 화산 같을 것이다. 천 장을 쓰고 백 장을 가려내 터진 그리움으로 날리는 벚꽃잎을 만들어 내도록 해라.
구본형 칼럼 <유끼 수료증> 중에서
화산 같고 벚꽃잎 같은 책이 어떤 책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화산이고 벚꽃잎인 삶’이 무엇인지는 알 것도 같다. 인간이 살아있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증명하는 존재고, 책이 그 사람의 삶을 담는 것이라면 내 피를 먹고 자란 책이 화산이 아니고 벚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 수 있단 말인가?
이젠 꿈에 스승을 만나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분명히 말하리라. ‘사부님, 이제 저 졸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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