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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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졌는가, 문득 삶이 버거울 때 마음 터놓을 수 있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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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인류 최고의 스승을 만나 용기를 얻고, 조용한 독서의 한 가운데에서 각박한 일상의 완충대를 마련하고, 더 깊고 근본적이고 원시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고전의 또 다른 이름은 좋은 만큼 깊어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일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생선을 발라주듯 먹기 좋게, 이해할 수 있게 고전과 일상과의 접점을 품위 있는 문체로 써내려 간 것이 이 책의 가장 커다란 장점이다. 그리고 강렬하고 생생한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는 책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늘을 더 깊게 파고들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 답을 찾아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당신이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해 강력하고 확고하게 '써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성에 따라 세우십시오. 그런 다음 자연에 다가가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말로 표현해 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충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P20, 마지막 수업
나는 특히 니체의 책, 그 중에서도 니체의 이 글귀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한다. 니체는 모호하게 다가왔던 삶의 일부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확신들을 정확하고 부드러운 시인의 언어로 말해주었다.
내가 자기 인생에 스스로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4년 전이었다. 아주 청명하고 서늘했던 여름 밤이었다. 보름달이 뜨고 뒷뜰 가득한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에 따라 댓잎이 사각거리는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먼 산에서는 고라니가 울었다. 그 때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늦게까지 뜬 눈으로 누워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마음을 괴롭히던 자잘한 문제들이 슬픔에 씻겨나가고 가장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슬쩍슬쩍 체험했던 아주 사소한 경험일지라도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돌이켜보게 되었다. 방정리를 하듯 낡은 서랍 깊숙이 들어있던 기억들을 끄집어 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던 것들 사이에서 그 답은 무척 확실하고 단순했다. 다만 나는 아직 그 확실한 답에도 내 전부를 걸만큼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의 자신이 상상하던 것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에 맞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선택의 순간에 그에 합당한 용기를 냈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쟁취해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용기의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인지하게 되니,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이 책을 통해 각박한 일상의 완충대를 마련할 수 있음을 들 수 있다. 연구원 과제의 양이 무척 많아 평일에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통근 지하철에서, 자투리 점심시간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뒤 나의 모든 자유시간과 시간의 여백들은 이 책으로 채워졌다. 여러 고전들은 때론 나를 올림푸스 산 꼭대기 신들의 세계에서 세계를 내려다보게 했고, 조르바와 함께 배를 땅에 대고 살게 했다. 다른 차원의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 마치 백 개의 눈이 달린 아르고스처럼 나는 다양한 높이의 시선들을 갖게 되었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좀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과 상황을 분리시켜 일상의 완충대로 작용했다.
또한 이것은 내가 어딘가 푹 빠져있는 지평을 넓혀주어 밥벌이를 위한 일들도 신선하고 더 깊은 수준까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한 가지 과목만 공부하라고 학생들을 종용하는 것보다 두 세가지 과목을 번갈아 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능률이 좋다. 또한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나를 한 분야에서 캐어다 쓰는 연습을 자꾸 하면 그만큼 다른 과목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 같다. 빡세게 한 분야에 대해 훈련 받은 경험이 사람을 다음 레벨로 성장시키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인간이 더 깊고 근본적이고 원시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비인간적이다. 일은 너무 차갑고, 돈은 무척 지독하다. 밥은 숨이 막힌다. 더 끔찍한 일은 이런 모서리들에 갇혀 있는 인간에게 비인간적인 특징들이 옮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불행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나라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었던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졌던 것 같다. 또한 조금 더 유식해진 것 같다. 니체와 조르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다산, 베르테르, 라스콜리니코프, 에리히 프롬, 오디세우스, 허클베리 핀, 데카메론과 향연과 삼국유사와 탈무드와 함께 했던 시간만큼 행복했고, 울고 웃었다. 아직 이 고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삶에 적용시키는 단계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워할 수 있는 인간의 고향을 알게 되었다.
심장을 온통 뒤흔들어버리는 강렬한 경험들. 글을 통해 눈앞에 스쳐 지나갔던 비범한 잔상들. 그런 것들은 한 번 보고 잊어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혼의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나는 오디세우스처럼 그 고향, 이타카를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내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어, 서두르지 않고 늙고 나서야 그 섬에 일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길 위에서 풍요로운 마음을 안고 쉬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