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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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화장실의 세면대 자동센서는 오늘도 오작동이 잦다. 분명 손을 갖다대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물이 콸콸 흘러 나온다. 가끔은 파리 등의 날벌레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을 해서 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물을 쏟아 내어 귀신이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인간의 모든 것을 감지하여 반응하게 될 미래의 어느 날이 왠지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오작동 하여 인간들이 어려움을 겪게되는, 혹은 인간의 SF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마 이 모든 공상은 이번 주 책 '미래의 물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미래가 매우 궁금했던 아이였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을, 좀 커서는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좋아했었던 나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자서전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과 나를 동일시하며 이런 저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되돌아본 나의 모습은 내가 꿈꾸던 미래의 내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마 이렇게 현재의 내 모습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어쩌면 나의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이 커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나가는 나의 미래 모습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운명론자로 변한 나는 한 때는 점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의 미래 모습이 어찌될지 알면 그에 맞춰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시간이 날 때 마다 사주카페를 돌면서 나의 직업이 무엇이 될 지, 나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궁금해 하곤 했었다. 들리는 점쟁이들의 이야기에 일희일비 하기도 하고, 점쟁이가 한 이야기가 맞지 않았다며 돈을 아까워 하기도 하고, 실패한 일을 앞두고는 아! 그 때 점쟁이가 이야기한 것이 맞았나봐 라며 탄식을 내뱉기도 했었다. 결국 지금은 미신이라면 질색인 남편 덕분에, 또한 팔랑귀인 내가 괜히 나쁜 소리를 듣고 절망할까봐 관심을 끊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미래가 궁금하다.
금주의 책으로 ‘미래의 물결’을 읽으면서 나는 미래의 예언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미래가 궁금했기에 어찌 보면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크 아탈리가 그리는 미래는 유토피아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인류의 미래는 희망이 있어’ 라며 낙관 하다가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무시무시한 사회가 펼쳐지다니’ 하고 놀라기 일 수 였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미래 속에서 나는 하이퍼 유목민이 될 것인가, 혹은 정착민이 될 것인가’ 하며 혼자 공상에 빠진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보험과 오락산업이 뜬다하니 나도 이런 쪽으로 진출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놀라기도 했다. 미래의 모습을 아는 것은 궁금증이 풀리는 화끈함을 주기도 했지만, 미래의 모습은 여전히 구체적이지 않기에 그저 나에게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안겨 준 것이다.
최근 싱가폴에 위치한 구글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직원들로부터 1:1 상담을 받는가 하면, 사무실 곳곳을 둘러보면서, 나는 왠지 내가 일하던 회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나게 느껴졌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각종 스낵과 음료가 가득한 카페테리아와 마치 카페처럼 꾸며져 있는 엄청나게 많은 회의실들이었다. 노트북만 하나 들고 나와 회사 곳곳에 아무데나 쳐 박혀 일을 하는 모습은 왠지 생경하면서도 활기참을 느끼게 했다. 물론 다같이 사무실에 모여 함께 근무하는 우리네 사무실도 정겨운 모습이며, 서로 상의해서 일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러 직원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이야기는 바로 앞으로의 꿈이나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던 우리에게 자신도 잘 모르겠다던 한 직원의 대답이었다. 어차피 2년만 지나도 구글의 모습은 또 다르게 변해있을 것이고, 자신이 요구받는 역할도 달라질 것이기에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된다고 했다. 대신 바뀐 환경 아래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미래를 예측하여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대응책 없이 온 몸을 내던지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학교에서 진행되는 리더십 코스에서 미래의 이력서를 기술해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이미 지난 오프수업에서 미래 풍광을 그려봤기에 분명 술술 써내려 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왠지 모르게 한 동안 ‘멍’을 때릴 수 밖에 없었다. 버킷 리스트라면 300개 정도는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테지만, 여전히 직업적으로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풍광은 구체적으로 그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상충되는 가치들을 모두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쟁이이고 아직도 어느 가치를 포기해야 할 지, 혹은 그들을 모두 함께 가져갈 방안은 없는 것인지 끝까지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또 빼어나게 잘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하며 되고싶은 구체적인 모습이 없는 내가 당황스럽기만 했다.또 스스로의 탐색 기회가 부족했다며 다시 한 번 그 동안 읽었던 필살기나 파라슈트 등의 책을 면밀히 읽고 워크북 내용을 따라해봐야겠노라 다짐하고 있던 찰나 왠지 나는 구글러의 말이 떠오르면서 굳이 미래의 내 모습을 생생히 상상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바라는 꿈이 없어도 괜찮을것 같았다. 막연하게나마 세계를 누비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는 마치 초딩이나 꿈꿀법한 그 꿈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 충분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비록 안갯 속에 있는 듯 흐릿해보이더라도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자라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기에 말이다. 결국 그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 발표하자 모두들 뭔가 명확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갸웃갸웃 거렸지만 나는 왠지 '괜찮다'라는 자기최면과 함께 평정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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