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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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10기 김정은
스티브 잡스, 민음사, 월터 아이작슨/안진환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월터 아이작슨(1952~)
1952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문 사립 이시도어 뉴먼 스쿨을 졸업한 뒤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다. 하버드 재학 시절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명문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아이작슨이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런던에 있는 ‘선데이 타임스’에서다. 이어 1978년 시사주간 ‘타임’의 워싱턴 지국으로 자리를 옮겨 로널드 레이건 시절 백악관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타임에서 그의 이름을 달고 나간 기사는 218건에 이른다. 그는 타임에서 고속 승진하며 미국 담당 에디터를 거쳐 1996년 편집인에 임명됐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주말이면 헨리 키신저 전 외무장관 전기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타임 편집인을 맡은 아이작슨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도 인력 확충에 나섰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금세기의 인물’ 등 굵직굵직한 기획물을 만들어냈다.
아이작슨은 뉴미디어에도 관심이 많았다. 1990년대 초반 타임 기사를 AOL에 공급하고 1994년 웹포털 패스파인더를 출범시켰다. 패스파인더는 타임워너의 대표적인 포털로 자리잡게 됐다. 아이작슨은 2001년 CNN 회장 겸 CEO로 자리를 옮겼지만 2년 동안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2003년 비영리 두뇌집단인 아스펜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명예직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뉴올리언스 소재 툴레인 대학, 유나이티드항공, 초당적인 국가 정책을 개발하는 싱크탱크 BPC의 이사이자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교육 연계 프로그램인 ‘터치 포 아메리카’의 회장도 맡고 있다.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를 ‘미국-팔레스타인 관민 합작’ 의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잡스의 전기는 그가 쓰는 네 번째 전기다. 1992년 키신저 전기에 이어 2003년 프랭클린, 2007년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집필했다. 2009년에는 ‘미국 스케치: 위대한 지도자들, 창의적인 사상가들, 그리고 허리케인의 영웅들’을 펴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 (Steven aul ‘Steve’ Jobs, 1955~2011)
기업인, 애플 공동 창업자
6개 산업 부문에서 놀라운 혁명을 일으킨 창조적 기업가이자 기술과의 소통 방식을 바꾼 미디어 혁명가, 기술의 대중 친화력을 중시한 기술의 미니멀리스트이자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시킨 디지털 철학가
왜 위대한가?
끝없는 열정에 미친 남자, 스티브 잡스가 사랑하고 꿈꾸고 열망한 모든 것이 녹아있는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스티브 잡스 전기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두께감에 눌린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그것보다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처럼 소위 천재라 불리는 무언가 한 가지에 꽂혀 그것에 매진해서 결과물을 도출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천재들의 삶에 관심이 없나. 아니, 주변에 자기 아들을 스티브 잡스처럼 키우기 위해 어릴 적부터 온갖 선행학습을 다 시키는 열혈엄마들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900페이지가 넘어 어른이 들고 다니기에도 무거운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를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있다. 초딩의 열정인가? 엄마의 욕심인가? 잡스가 만든 아이~ 시리즈 없이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문제없다. 난 솔직히 그가 왜 위대한지 잘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C 시대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영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최근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구입하였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되어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한편 그는 2004년 무렵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하여 2011년 8월 24일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키로 했으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IT분야의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참조: 위키백과, 아시아경제 ‘잡스의 공식 전기작가 아이작슨은 누구인가’
2. 내가 저자라면
- 책의 핵심을 몇 줄로 요약할 것.
(책의 핵심 메시지와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명확하게 소개한다는 기분으로 쓸 것)
스티브 잡스의 유일한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온 위대한 제품에 대한 이야기, 그 제품을 만들었던 위대한 조직에 대한 이야기, 그 조직을 이끌었던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잡스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전기를 써 주길 요청했다. 그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는 CNN의 전 최고 경영자이자 《타임》 전 편집장인 월터 아이작슨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완성되었다. 그의 전 생애와 우리 모두의 디지털 삶을 바꾼 혁신의 핵심 원천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로 도출해볼 것.
(이 책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 책이 다른 책과 뭐가 다른가?)
이 책이 다른 잡스 전기와 다른 점은 잡스의 요청으로 전기 작가 아이작슨의 철저한 조사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저자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2년간 잡스와 함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며 그를 40여 차례 집중 인터뷰했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감을 가진 인물이나 라이벌까지 포함하여 100여 명의 인물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를 비롯하여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핵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그리고 애플의 후계자 팀 쿡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IT의 영웅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 특히 감동적인 장절과 해석, 그 구절에 꽂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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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매킨토시 개발 팀은 단지 수익을 올리는 제품이 아닌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잡스의 열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계 팀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했어요.” 허츠펠드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심지어 팀을 데리고 루이스 티파니의 유리 제품 전시회를 보러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적도 있었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출하는 티파니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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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열정적인 장인 정신의 특징은 숨어 있는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철저를 기하는 것임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 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 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인쇄 회로 기판을 심미학적인 토대로 비평하기 시작했다.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 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 중 한 명이 끼어들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 하는 겁니다. C 회로 기판을 들여다볼 소비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잡스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몇 년 후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나서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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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885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 붙어야 한다. 밥 딜런은 그저 저항 가요나 계속 불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발전을 꾀해야 했고, 그리하여 1965년에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시도해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1966년 유럽 투어는 그의 가장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그는 공연 때마다 먼저 일련의 어쿠스틱 기타 곡들을 들려주었다.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면 그는 훗날 ‘더 밴드’가 되는 백 밴드를 소개했고 그들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냈다. 한번은 그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을 부르려고 하는데 청중석에서 누군가가 “유다 같은 배신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딜런은 말했다. “열라 크게 연주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비틀스도 똑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의 예술을 갈고 닦았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논할 것.
(탄탄한가? 일관성이 있는가? 신선한가?)
스티브 잡스의 모든 것이 담긴 책
죽기 며칠 전 아이작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전기작가 아이작슨에게 이 책을 쓰게 한 이유가 자신의 아이들 때문이라는 말에 가슴이 찡해진다.
양부모 집의 조그마한 차고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애플의 성장 이야기, 애플 I에서 시작해 매킨토시와 토이 스토리를 거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는 혁신적 제품들의 탄생 비화, 그리고 애플의 CEO 사임
이후 두 달여에 걸친 그 마지막 순간까지 처음 공개되는 온갖 이야기들과 함께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에서 극도의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경영 비법까지 공개되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개인적인 일화부터 공식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까지, 그의 괴팍한 채식주의 믿음과 선불교로부터 받은 영향,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일, 픽사에서의 비전, 애플의 혁신 정신 등 잡스의 개인사 전체가 담겨 있다. 잡스는 아이작슨이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약속 받은 대로,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으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0장과 40장에는 그의 복잡한 가족사와 연애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생모와 친여동생을 만나게 된 일화, 나중에 인정한 딸 리사와의 관계, 그가 만난 여인들, 그리고 죽기 전까지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사실은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 등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 내 책을 쓸 때의 참고사항을 기술할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할 것.
잡스의 삶보다, 인터뷰한 결과를 가지고 이렇게 실감나게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 기법을 내 글쓰기에 적용해야겠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애플의 1997년 광고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
1. 어린 시절 ― 버려지고 선택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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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 이러한 개념들은 잡스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모종의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동료인 델 요캄의 말이다. “그는 주위 환경을 조종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개발하는 제품을 자기 자신의 확장으로 간주합니다.” 대학 졸업 직후 잡스와 친해진 그레그 칼훈은 또 다른 영향에 대해 얘기한다. “스티브는 버림받은 것과 그것이 자기에게 안겨 준 고통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그게 스티브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비유하자면 그는 다른 드러머의 비트를 따라간 셈인데,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3. 자퇴 ― 환각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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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불교, 특히 선불교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단지 한때의 흥미나 젊은 시절의 취미가 아니었다. 그는 특유의 열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고, 결국 자신의 인성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스티브는 선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 받은 영향이 더욱 깊어진 거지요.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순전한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얻은 겁니다.” 잡스는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잡스의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극단적 열성 탓에 진정한 열반을 성취하기는 어려웠다. 선을 통한 그의 자각은 내면의 평정이나 마음의 평안, 대인 관계의 원숙함 등을 충분히 수반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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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선불교, 명성과 영성, 환각과 록 음악. 잡스는 이 모든 것을 흥분된 상태로 넘나들며, 깨달음을 구하는 당대 캠퍼스 하위문화의 특징이라 할 다중 충동을 채우려 애썼다. 그리고 리드에서는 거의 탐닉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혼 저변에는 전자공학 괴짜 기질이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 나머지 모든 면모들과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게 될 그 기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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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들랜드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극단적인 열성이었습니다. 무엇에든 흥미만 느끼며 그는 불합리할 정도의 극단으로 그것을 밀어붙였습니다. 잡스는 이미 응시와 침묵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기술을 갈고 닦은 상태였다.
79
캘리그라피 수강은 잡스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기술에다 멋진 디자인과 외양, 느낌, 품위, 인간미, 심지어 로맨스가지 결합하려 애썼다. 또한 친근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창출하려는 노력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캘리그라피 수강은 이런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제가 만약 대학 시절에 그 수업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맥은 그렇게 다양한 활자체와 비율에 맞게 공간이 할애된 폰트를 결코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더욱이 윈도는 그저 맥을 모방한 것뿐이니까 어떤 퍼스널 컴퓨터에도 그러한 다양성이 담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아타리와 인도 ― 게임 설계 기술과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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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과 힌두교, 선불교, 깨달음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단순히 열아홉 청춘이 잠시 보인 객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후 평생에 걸쳐 그는 동양 사상이 많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애쓴다. 그런 개념들 중 하나가 반야로서, 이는 정신의 집중을 통해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근원적 지혜를 의미한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며 서구 문명이 이루어 낸 훌륭한 성취이기도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성 못지않게 가치가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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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탐구와 깨달음을 향한 강박에 가까운 열정으로 인해 잡스는 프라이멀 요법(유아기에 억압된 감정을 해소함으로써 심신을 회복하는 치유법)도 경험하기에 이른다. 이 요법은 로스앤젤러스의 심리 전문가 아서 야노프가 개발하여 널리 알려졌다. 내면에 억눌려 있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고통이 성인이 되어 겪는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한 치료법이었다. 야노프는 유년기의 경험을 재현하고 억눌려 있던 고통을 겉으로 표출함으로써(때로는 소리 지르른 행위를 통해) 심리적 문제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잡스는 이것이 상당히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적 분석이 아니라 직관적 감정과 감성적 행위를 활용하는 요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그건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뭔가를 직접 행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내면으로 뛰어든 다음, 한 차원 높은 통찰력을 얻어 나오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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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 탐구에 많은 시간을 매달렸고, 그에 대해서 제게도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칼훈의 얘기다. ”프라이멀 요법, 디톡스 식생활, 이런 것들 모두가 스스로를 정화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좌절감에 더욱 깊이 파고들어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깊이 분노한다고 얘기한 적도 있습니다.“
5. 애플 Ⅰ ― 켜고 부팅하고 교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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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문화적 흐름의 또 다른 물줄기를 형성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의 비트 세대를 주축으로 일어난 히피 운동, 그리고 버클리 대학교의 언론 자유 운동을 발판 삼은 저항적 정치 운동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깨달음과 자유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다양한 움직임도 공존했다. 선불교와 힌두교, 명상과 요가, 프라이멀 요법, 감각 차단을 통한 깨달음 얻기, 에설런 협회의 인간 잠재력 계발 운동 등이 그것이다. 1960년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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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잡스는 악마의 조종을 받는 사람처럼 독한 면을 드러냈지만, 위즈는 천사의 조종을 받는 순진한 청년처럼 보였다. 잡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허세도 부릴 줄 알았고 가끔은 사람들을 조종하기 했다. 넘치는 카리스마로 상대를 매료하기도 했지만, 냉정하고 혹독한 모습도 보였다. 반면 위즈는 부끄럼을 타고 사교성이 부족해서 가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잡스는 위즈의 공학적 천재성을 존경했고, 위즈는 잡스의 비즈니스 감각을 존중했다.
6 애플 Ⅱ ― 새로운 시대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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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 11가 위즈의 창조물로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을 부릴 수 있는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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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쿨라는 잡스에게 마케팅과 세일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잡스는 말한다. “마이크는 제게 보호막 같은 존재였어요. 저와 가치관도 굉장히 비슷했고요. 그는 절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차려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오래도록 생명력을 지닐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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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쿨라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종이 한 쪽으로 정리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공감’이었다. 즉 고객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고객의 욕구를 진정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해 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칙은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와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이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197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7. 크리스앤과 리사 ―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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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완전히 몰두하다가도, 또 어느새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오싹할 만큼 냉정한 면이 있는 친구였지요.“
8. 제록스와 리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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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 센터의 선구적 인물 가운데 앨런 케이가 있었다. 그는 잡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다음 두 격언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166~167
애플이 ARC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 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잡스는 때때로 그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요약하면,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지요.” 언젠가 잡스는 말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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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킨슨은 회상한다. “모르고 덤비는 도전이 지닌 힘을 깨달았어요. 불가능하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거지요.”
9 기업공개 ―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남자
177~178
벼락부자가 되기 전이나 후에도, 그리고 재정적 궁지에 몰리거나 엄청난 부를 누린 시기를 포함해 그의 삶 전체에서, 부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태도는 상당히 이중적이었다. 그는 반물질주의를 지향하는 히피였지만, 설계한 기계를 무료로 나눠 주고 싶어 하는 친구의 고안물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했다. 또 선불교 신봉자로서 인도 순례 여행에도 다녀왔지만 그 후엔 사업체를 설립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모든 태도와 가관들이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한데 얽혀서 잡스라는 인물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10. 맥의 탄생 ―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189
“스티브는 ‘뛰어내려라’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곧바로 자기 앞에서 뛰어내리길 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신뢰도 안 갔고요. 또 자신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치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마치 후광이 비치는 사람을 보듯 자신을 숭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로도, 친구로도, 배우자로도, 상사로도, 최악
디스크의 극단적 D형
11. 현실 왜곡장 ― 자신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보스
200
물론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왜곡한다. 잡스의 경우, 그것은 종종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술책에 능한 잡스와 달리 선천적으로 정직했던 워즈는 잡스의 그러한 능력이 발휘하는 효과에 대해 늘 놀라워했다. “미래의 일과 관련해 비논리적인 비전을 품을 때 그는 현실을 왜곡하곤 하지요. 브레이크 아웃 게임을 단 며칠 안에 설계할 수 있다고 저한테 거듭 강조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걸 저도 알았지만, 어쨌든 스티브의 주장에 끌려갔고 그걸 해냈잖아요.”
204
그의 개인 생활과 회사 모두를 돌아보면 그와 친한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아부에 능한 사람이 아닌 강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맥 팀은 이 점을 간파했다. 1981년부터 그들은 매년 잡스에게 가장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상을 수여했다. 물론 반은 장난이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진짜 상이기도 했다. 잡스는 그 상에 대해 알고는 마음에 들어 했다.
206
잡스의 과민한 행동 방식의 일부는 그의 완벽주의에서, 그리고 제품을 시간 및 예산에 맞춰 완성하기 위해 실용적인(심지어는 현명한) 타협을 하는 사람들을 용인하지 못하는 그의 성향에서 비롯했다.
206
하루는 잡스가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던 엔지니어 래리 케니언의 작업 공간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부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케니언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잡스는 그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부팅 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가?" 그가 물었다. 케니언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잡스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만약 맥 사용자가 500만명인데 컴퓨터를 부팅하는데 매일 10초를 덜 사용한다면 그들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연간 3억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100명의 사람들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래리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몇 주 후에 보니 부팅 시간을 28초나 앞당겨 놓았어요" 앳킨스는 회상한다."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207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계 팀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했어요" 허츠펠드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심지어 팀을 데리고 루이스 티파니의 유리 제품 전시회를 보러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적도 있었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출하는 티파니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루이스 티파니가 제품을 손수 제작하는 대신 어떻게 자신의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버드 트리블은 회상한다. "스스로 이런 다짐들을 했어요. '어차피 뭔가를 만들 거라면 이왕이면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215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느낌을 줘야 해. 폭스바겐의 비틀처럼 말이야. 위대한 예술품은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키지."
217~218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소!” 잡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을 내며 말했다. “이 방 안을 둘러보라고!” 그는 화이트보드와 테이블 위, 그리고 모서리가 둥근 다른 직사각형의 물체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바깥을 내다보면 더 있소. 거의 보는 곳마다 다 있다고!” 그는 앳킨슨을 이끌고 산책을 하며 자동차 창문과 게시판, 거리의 표지판 등을 보여 주었다. “세 블록 왔는데 열일곱 가지 예를 찾았어요.” 잡스가 말한다. “그가 완전히 납득할 때까지 여기저기에서 다 찾아냈지요.” “그가 마침내 주차 금지 표지판에 다가갔을 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네, 회장님 말씀이 옳아요. 제가 졌습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을 기본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허츠펠드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빌은 다음 날 오후 만면에 웃음을 띠고 텍사코 타워스로 돌아왔어요. 그의 데모는 이제 모서리가 둥근 아름다운 직사각형들을 굉장한 속도로 그릴 수 있게 되었지요.” 리사와 맥, 그리고 이후 거의 모든 컴퓨터의 대화 상자와 창 들은 둥근 모서리를 가지게 되었다.
222
잡스는 열정적인 장인 정신의 특징은 숨어 있는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철저를 기하는 것임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 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 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인쇄 회로 기판을 심미학적인 토대로 비평하기 시작했다.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 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 중 한 명이 끼어들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 하는 겁니다. C 회로 기판을 들여다볼 소비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잡스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몇 년 후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나서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223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잡스는 매킨토시 팀을 모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그가 말했다. 그러곤 제도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했다. 그들의 서명은 모든 매킨토시 내부에 새겨질 것이었다. 내부를 들여다볼 일이 있는 수리공이 아니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서명이 컴퓨터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회로 기판이 최대한 아름답게 설계되었음을 알듯이 말이다. 잡스는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호명했다. 베럴 스미스가 먼저였다. 잡스는 45명의 차례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종이의 정중앙에 여백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소문자로 근사하게 휘갈겼다. 그러고 나서 샴페인으로 건배를 제안했다. 앳킨슨은 말한다. "바로 그런 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한 겁니다."
13. 맥 만들기 ―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227
잡스는 경력 전체에 걸쳐 스스로를 사악한 제국에 맞서는 깬 반항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둠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제다이 전사 혹은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말이다.
229~230
잡스가 맥을 리사의 아키텍처와 호환되게 만들길 꺼려한 이유는 단지 경쟁의식이나 복수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통제에 집착하는 그의 성향과 관련된 철학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컴퓨터가 진정 위대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들에서도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들에 문호를 개방하면 결국 고유한 기능성 이부를 희생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230
“잡스는 고집이 센 엘리트주의 예술가이며, 자신의 창작물이 형편없는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제멋대로 수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디넷>의 편집자 댄 피버는 이렇게 썼다. “그에게 그것은 마치 거리의 누군가가 피카소 그림에 붓질을 몇 차례 더하거나 밥 딜런의 노랫말을 임의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237
잡스는 직원 채용 과정에도 통제권을 행사했다. 그의 목표는 창의적이고 지독하게 똑똑하며 약간은 반항적인 사람들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14. 스컬리를 영입하다 ― 펩시 챌린지
260
매킨토시 출시 및 마케팅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스컬리는 맥 가격을 500달러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케팅 비용이 생산비 못지않게 들어갈 것이므로 그 비용도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잡스는 강하게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지향하던 신념이 완전히 깨집니다. 나는 맥으로 이윤을 짜내고 싶은 게 아니라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거라고요.”
16.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 두 궤도의 교차
285
천문학에서는 두 별이 중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궤도가 서로 얽히는 것을 가리켜 연성계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궤도를 선회하는 두 거성 간의 관계와 경쟁의식으로 한 시대가 형성되는, 연성계와 유사한 상황을 간간히 볼 수 있다. 20세기 물리학 세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또는 초기 미국 정계의 토머스 제퍼슨과 알렌산더 해밀턴을 예로 들 수 있다.
285
게이츠는 잡스와 달리 컴퓨터 코딩을 이해했다. 그의 사고방식은 잡스보다 더 실용적이고 질서 정연했으며, 분석적 처리 능력이 풍부했다. 반대로 잡스는 직관적이고 낭만적이었다. 그는 기술을 유용하게 만들고 디자인에 매력을 불어넣으며 인터페이스를 친화적으로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다.
17. 이카로스 ― 올라가는 것은……
314~315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면 너무 자주 뒤돌아보면 안 됩니다. 그 동안 무엇을 해 왔든,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바깥세상이 당신에게 '이게 바로 너'라는 식으로 모종의 이미지를 강요할수록 예술가는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지요. "안녕, 나 이제 가야 돼. 나 미칠 거 같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그러고는 어딘가로 가서 은둔해 버립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약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요.
18. 넥스트 ―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374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경쟁심(그리고 가끔 마지못해 보이는 존중)의 이면에는 사업 철학과 관련된 근본적인 차이도 존재했다.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엔드투엔드 방식을 선호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반면 게이츠는 여러 회사들이 서로 호환이 가능한 제품들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으며 또 그런 관점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19. 픽사 ― 기술과 예술의 만남
397
스미스는 잡스가 지나친 카리스마와 자존심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복음 전도사 같았어요.” 스미스는 말한다. “매사에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거나 굴복하질 않았지요. 그래서 충돌한 겁니다. 에드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타입이었고요.” 잡스는 종종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부당하거나 사실이 아닌 말을 던짐으로써 자신이 우월함을 확인하려 했다. 스미스는 그런 잡스를 지적하기를 좋아했으며, 항상 커다란 웃음소리와 능글맞은 미소를 덧붙였다. 잡스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 보통 남자 ― 사랑이라는 두 글자
419
하지만 언제나 달콤하고 화창한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잡스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딸에게도 변덕을 부렸다. 포용과 유기가 모종의 주기처럼 반복되었다. 하루는 장난을 치며 놀다가도 그 다음 날은 차가워지거나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
잡스는 아버지로서 가장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 좋은 태도든 나쁜 태도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24
훗날 그녀(레지)는 그토록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사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지 술회했다. 배려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깊이 배려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이다.
21. 토이 스토리 ― 버즈와 우디 구조대
451
월트 디즈니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잡스가 지향하는 유의 태도이기도 했다. 잡스는 디테일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즈니의 철학을 존경했고, 픽사와 디즈니 영화 스튜디오가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무언가를 공유한다고 느꼈다.
23. 부활 ― 지금의 패자는 훗날 승자가 되리니
485
그에게는 엘리슨의 과다한 소비 욕구도, 빌 게이츠의 박애주의적 충동도,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서 순위 경쟁을 벌이려는 욕심도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자아 욕구와 개인적인 동기들로 인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유산을 창출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는 에드윈 랜드와 빌 휼렛, 데이비드 패커드 등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애플에 복귀하여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 것이었다.
24. 다른 것을 생각하라 ― iCEO 잡스
520
“다른 것을 생각하라”라는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우리 앞에 나타난 순간을 떠올리면 말입니다. 이따금 영혼과 사랑의 순수함은 제 안으로 파고들어와 저를 사로잡았지요.
521~522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잇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529
잡스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한 가지는 바로 오랜 세월 존속하는 영속성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10대 시절 여름방학 동안 H에서 일하면서, 창의적인 사람 한 명보다 체계를 갖춘 훌륭한 기업이 훨씬 더 커다란 혁신을 일궈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32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제품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27. CEO ―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별난
569~570
잡스는 자신이 입을 유니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편리할 뿐 아니라(이것이 그가 주장한 이유였다.)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세이에게 제가 맘에 들어 하던 그의 검은색 터틀넥을 몇 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옷을 100벌 정도 만들어 주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내가 놀라는 걸 본 잡스는 옷장에 쌓여 있는 검은색 터틀넥을 보여 주었다. “이게 제가 입는 옷입니다. 죽을 때까지 입어도 될 만큼 있지요.”
574~575
잡스의 제품 출시 쇼는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그는 청바지와 터틀넥을 입고 생수병을 든 채 무대를 느긋하게 거닐었다. 객석은 지지자들로 가득했다. 행사장 분위기는 기업의 제품 발표회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의 부흥회와 비슷했다. 기자들 자리는 객석 중앙에 마련되었다. 잡스는 슬라이드에 들어갈 내용과 연설의 요점을 직접 작성하고 수정한 다음, 그것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동료들과 함께 심사숙고하며 개선해 나갔다. “그는 각각의 슬라이드를 예닐곱 번씩 수정해요. 프레젠테이션 전날 밤늦게까지 슬라이드를 점검하는 동안 저도 그의 곁에 함께 있곤 한답니다.”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의 말이다. 잡스는 그녀에게 슬라이드 세 가지 버전을 보여 주고 어느 것이 가장 나은지 묻곤 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심하게 집착하는 편이에요. 발표 예행연습을 한 차례 한 다음, 한두 가지 단어를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예행연습을 한다니까요.”
576
“그는 제가 더 열심히 하도록 몰아 붙였고 결국 저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미친 중요한 영향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는 탁월한 수준이 되지 못하면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29. 디지털 허브 ― 아이튠스에서 아이팟까지
620
결국 아이팟은 곧 애플이 지향하는 모든 것의 정수가 되었다. 시와 공학의 결합, 예술 및 창의성과 기술의 교차,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30. 아이튠스 스토어 ― 피리 부는 사나이
643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준이 시시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또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한다면 결코 게으름을 피우며 대충대충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뭔가를 할 때는 특별히 더 노력하거나, 주말에 일을 하거나, 현재 상태에 과감히 도전하려 애쓰지 않겠지요.
32. 픽사의 친구들 ― ……그리고 적들
683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혹은 어쩌면 그것의 고립 가능성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잡스는 직접적인 만남을 열렬히 신봉했다. 그는 말했다. “이런 네트워크 시대에는 이메일이나 아이챗을 통해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에서 나오는 겁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일의 진행 상황을 묻고 진심 어린 반응을 보여 주다 보면 곧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로 요리를 하게 되지요.”
689
존 래시터는 디즈니와의 결별 가능성에 경악했다. 그는 회상했다. "내 자식들이 걱정됐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만든 캐릭터들을 어떻게 망쳐놓을지 걱정된 겁니다. 그건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그는 픽사 회의실에서 고위 임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스튜디오 안뜰에 800여 명의 픽사 직원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면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소중한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고 어린이 성추행 전과범에게 입양시키는 것 같군요"
34. 1라운드 ― 메멘토 모리
721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35. 아이폰 ― 혁신 제품 세 가지를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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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같이 둘러 앉아서 각자의 전화기가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얘기를 나눴지요. 너무 복잡하더군요. 전화번호부를 포함해서 기능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무슨 미로를 헤치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변호사 조지 라일리는 법적 현안들을 논의하는 미팅에서 잡스가 따분해하며 라일리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그것이 왜 얼간이 같은지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잡스와 그의 팀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싶은 전화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점차 흥분을 고조시켜 갔다. 훗날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동기부여라 할 수 있지요."
37. 아이패드 ― 포스트 C 시대로
782 잡스는 마이클 노어가 포브스닷컴에 올린 일화를 읽고 감동을 받아 내게 전달했다. 노어가 콜롬비아의 보고타 북부 시골 지역에 있는 어느 낙농장에 머무르고 있을 때 겪은 일이었다. 그가 아이패드로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있는데 마구간을 청소하는 가난한 여섯 살짜리 소년이 다가왔다. 호기심이 생긴 노어는 소년에게 아이패드를 건네주었다. 전에 컴퓨터를 본 적도 없는 이 소년은 설명서도 없이 본능적으로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화면을 밀고 앱들을 작동해 보더니 핀볼 게임을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여섯 살짜리 문맹 소년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컴퓨터를 설계했다. 그것이 마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가 쓴 글이다.
38. 새로운 전투들 ― 그리고 예전 전투들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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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휴대전화가 완벽하지 않다고 대놓고 선언함으로써 잡스는 논란의 여지없는 명백한 단언으로 논쟁의 정황을 바꿔 놓았다. “만약 잡스가 아이폰 4에서 모든 스마트폰으로 정황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나는 인간의 손에 닿으면 작동이 안 되는 형편없는 제품을 희롱하는 유쾌한 연재만화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스마트폰이 문제를 갖고 있다.’로 정황이 바뀌는 순간 그런 유머의 기회는 사라졌다. 일반적이고 따분한 진실처럼 유머를 죽이는 것은 없으니까.
39. 무한대를 향해 ― 클라우드, 우주선 그리고 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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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구가 찍어 준 결혼식 사진들을 찾아 두꺼운 종이 판지에 크게 출력해 우아한 상자에 넣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폰을 뒤져 그 상자에 넣으려고 쓴 편지를 찾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20년 전에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요. 우린 그저 직감에 끌렸어요. 당신은 나를 황홀하게 했어요. 아와니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눈이 내렸지요. 수년이 지나 아이들이 태어났고, 행복한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빴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의 사랑과 존경은 점점 더 커졌지요.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이렇게 20년 전에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왔네요. 좀 더 늙고 좀 더 현명해지고 얼굴과 가슴에 주름도 늘었지요.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40. 3라운드 ― 말기의 분투
850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많은 위인들이 그렇듯이 그도 모든 영역에서 비범하진 않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거나 하는 사회적 배려는 없어요. 그 대신 인류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일이나 인류의 진보, 인간의 손에 훌륭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에 깊이 관심을 쏟죠." 경제 및 정치의 안타까운 상태로 화제가 바뀌자 그는 전 세계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두세 가지 예리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말했다. "오바마한테 실망했습니다. 그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화를 내는 일을 주저해요. 그래서 적절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고는 내 생각을 읽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시인했다. "그래요. 난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죠."
867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질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
41. 유산 ― 가장 밝게 빛나는 창조력의 천국
873
잡스가 만든 제품들에는 그의 성격이 반영되었다. 1984년 원조 매킨토시부터 한 세대 후의 아이패드에 이르는 모든 제품에서 애플의 핵심 철학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엔드투엔드 통합이었듯이, 스티브 잡스 자신의 철학도 그러했다. 그의 성격과 열정, 즉 완벽주의, 비범한 재능, 열망, 예술성, 악마성, 통제에 대한 집착은 그의 비즈니스 접근 방식 및 거기에 기인한 혁신적인 제품들과 얽혀 있다.
880
그가 똑똑했던 것일까? 아니다. 예외적으로 똑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천재였다. 그의 상상력은 직관적이고 예측 불가하며 때로는 마법처럼 도약했다. 실제로 그는 수학자 마크 카츠가 불쑥불쑥 통찰력이 쏟아져 나와 단순한 정신적 처리 능력보다는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한, 이른바 '마법사 천재'의 전형이었다. 그는 마치 탐험가처럼 정보를 흡수하고 냄새를 느끼며 앞에 펼쳐진 것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885~886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 붙어야 한다. 밥 딜런은 그저 저항 가요나 계속 불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발전을 꾀해야 했고, 그리하여 1965년에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시도해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1966년 유럽 투어는 그의 가장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그는 공연 때마다 먼저 일련의 어쿠스틱 기타 곡들을 들려주었다.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면 그는 훗날 ‘더 밴드’가 되는 백 밴드를 소개했고 그들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냈다. 한번은 그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을 부르려고 하는데 청중석에서 누군가가 “유다 같은 배신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딜런은 말했다. “열라 크게 연주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비틀스도 똑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의 예술을 갈고 닦았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886~887
“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50대 50입니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 대부분에 거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하니 내세를 믿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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