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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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 세상
10기 김정은
암울하고 우울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기가 망설여지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찰스 키핑의 <창너머>다.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회색 얼굴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한 소년이 커튼 사이로 창 밖의 짙고 푸른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이 소년, 갇혀 지내는 아이 같다. 이 책 읽어줘도 될까?
“엄마 읽어줘. 이거 읽어줘.”
글보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둘째 수린이가 졸랐다. 한 장 한 장 읽어주며 아이 표정을 살핀다. 호기심 가득했던 아이 표정이 금새 어두워 진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닥, <바늘땀>의 데이비드 스몰 등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작품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창 너머> 역시 키핑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아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병약했던 키핑을 걱정한 아버지는 아들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했고, 키핑은 자신의 이층 방에서 창을 내다보며 이웃 사람들과 오가는 말들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창 너머>의 무섭게 질주하는 말들엔 그가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본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제이콥은 거실 창가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래층에, 누나는 학교에 있었습니다. 제이콥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제이콥이 내다보고 있는 이 길은 제이콥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이콥에게는 이 길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엄마, 이 애는 왜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
두 아이가 물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제이콥에게는 창문을 통해 보는 거리의 모습이 세상의 전부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 양조장의 말들, 비쩍 말라 가죽만 남은 때묻은 개와 함께 사는 할머니 '쭈그렁탱이', 제이콥이 좋아하는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위레트'씨와 사람들에게 침을 뱉어서 제이콥이 싫어하는 '조지'. 양조장을 뛰쳐나온 말들은 거리를 질주하고, 개들은 싸운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 제이콥이 창문에 그린 그림엔,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죽은 개를 안고 서 있다.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창문을 통해 관찰만 해야 하는 제이콥은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조지를 싫어하면서도 과자를 파는 '알프네 가게'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조지를 부러워한다. 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양조장을 뛰쳐나왔는지 자세히 볼 수 있는 조지가 부러우면서도, 밖에 나가고 싶어하지만 나갈 수 없고 나가기에 세상이 너무 두려운 제이콥은 자신은 2층에 있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제이콥이 몸이 너무 약해서 아빠가 밖에 못 나가게 했대.”
“아빠가?”
“응. 달리는 말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고, 쭈그렁탱이의 개처럼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지.”
“너무 했다. 그럼 과자가게도 못 가잖아.”
“제이콥이 나갔으면 좋겠어?”
“응!”
우리 집 두 아이들은 병약한 제이콥이 2층 방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조지처럼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럼, 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300페이지가 넘는 청소년 문고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꺼냈다. 그 두께감에 눌려 ‘다음에 읽어줘’라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예상과 달리 얼른 읽어달라는 눈치다.
“엄마, 제이콥이 창문 밖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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