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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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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4일 12시 51분 등록

아빠~~11번.

2015. 1. 4


“아빠~~11번 틀어 봐.” 작은 아이 전화다. 아이는 엄마, 이모와 함께 외가에 갔다. 녀석은 공감능력이 탁월하다. 아닌 척 하지만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펴 손길이 필요한 곳이 없는지 살핀다. 서재 방에 틀어박혀 자판 두들기고 있을 애비에게 아이는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즐겁게 좀 쉬라고 아이가 준 선물이니 할 게 태산이지만 보러가야지. 독한 술 한 병, 잔 하나 들고 TV가 있는 썽그런 안방으로 간다. 너른 집에 달랑 혼자다.


‘오~~오오오 오오오 워오워~~~ 뚜루뚜루둔뚠 둔뚠뚠 뚜루뚜루 둔둔뚠~~~너를 나만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거야 ~~~ ♪♬ ~~~.’ 가끔 보는 텔레비전에서 종국을 만나면 아직도 내 머릿속엔 이 멜로디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가 솔로로 활동하는 것도 예능인이 된 것도 생뚱맞다. 지난 주 아이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백 투더 90`s’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에겐 전성기였을 그 때, 추억이 저장된 테이프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제대를 하고 일주 일만에 택시를 탔다. 회사에서 가장 고물이었을 법 한 스텔라 택시를 배차 받아 나서는 첫 날, 파랗던 새벽의 긴장감은 훈련소 들어가는 것쯤은 비할 것도 없다. 운전실력 하나 믿고 나선 걸음이다. 어제 이력서 내러가서 미터기 조작하는 것 잠시 배운 것이 전부다. 그리곤 거리로 걷어찼다. 내가 만난 첫 세상이다. 사람들이 있을 만 한 곳으로 차를 몰아 나와야 했지만 차는 자꾸만 조용한 길로만 간다. 팔달교를 넘어서 시내로 접어 들려는 찰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 짧은 순간 약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쳤다. 갈까? 설까? 갈까? 설까? ... 덜덜덜 ... 몸은 생각과 달리 반응했다. 첫 손님이다. 머리카락이 쭈볏서고 척추에 땀이 고일 지경이다. 

“북부정류장”

“...”

하얗다. 머릿속에선 풍뎅이가 날아다닌다.


“아지야! 안가나?”

“아~~~예~~~”

.

.

.

“처음이제?”

“예? ~~~아~~~예”

“ㅎㅎㅎ. 몇 살이고?”

“스물 넷입미더”

“모리마(모르면) 물어 댕기라. 열심히 해래이~~~”

미터기를 언제 넣었는지 언제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손님은 마수라며 오천 원짜리 하나를 던지고 달아났다.


“아빠가 꼭 봐야 할 게 있어. 좋아할 거야!” 지난 주, 아이 손에 끌려 만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난 그때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저렇게 뛰고 난리부르슨데 난 왜 이렇게 찌~~이~~잉 한 거냐? 모자에 불을 밝히고 달리던 새벽이 몸살 나게 화~~악 살아났다. 


그렇게 택시를 시작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제법 괜찮은 차를 받았다. 게다가 사납금을 조금만 더 내면 하루 종일 끌고 다녀도 된단다. 배려인지 족쇄인지 아무튼 어수룩한 놈이 꼬박꼬박 사납금을 맞춰내는 것이 괜찮다 싶었던 모양이다. 좀 더 잡아두려는 속셈이었을 거다. 나는 주로 밤에 다녔다. 늦은 오후에 나와서 다음 날 출근시간이 지나면 그제서야 집에 갔다. 낮에 막히는 길도, 택시 간에 경쟁도, 출퇴근 시간에 합승경쟁도 싫었다. 바짝 버는 대신 길게 버는 편이 내 방식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대략 13시간에서 15시간 정도 차를 탔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 차에서 내릴 때쯤이면 아랫도리는 내 것이 아니다. 손으로 다리를 들어 옮기고 피가 다시 돌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다리구실을 하는 거다. 엉거주춤 기어 들어가면 걱정하실 테니 뚝방길을 한참 걷다가 뛰다가 했다. 지금은 도시고속도로 때문에 사라지고 없는 그 길엔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뛰다가 걷다가 때때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시는 어머니를 뵈었다. 멕여서 재우실 요량으로 시간 맞춰 상차리러 들어오시는 길이다. 모자는 그렇게 새벽을 달려 아침을 맞았다.


축제의 피날레는 건모다. 그가 마지막 멘트를 한다. “마지막 곡은 슬픈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랬다. 그때 이 노래가 난 그렇게 슬프더라.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 그 어느날 너와 내가 심하게 다툰 그 날 이후로 너와 내 친구는 연락도 없고 날 피하는 것 같아~~~ ♪♬ ~~~’ 


모자에 불을 밝히고 달리는 새벽은 나쁘지 않다. 봉덕동 어느 골목 앞에 차를 잠시 세우고 오늘 찍은 금액을 맞춰본다. 사납금을 맞추고 몇 천원이 남는다. 앞으로 한 다섯 시간쯤 더 탈거니까 사만 원쯤 더 벌어질거다. 잠시 우동이나 콩국 한 그릇 먹어도 좋을 날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볼륨을 한껏 올린다. 차는 텅 빈 거리를 질주한다. 질주다. 

대명동이나 수성 못으로 가야한다. 그곳에서 가서 우동이나 콩국 한 그릇 말아 먹고 나면 환락의 밤을 보내고 늦은 귀갓길에 오르는 예쁜 언니들을 태울 수 있을 것이다. 매번 빽판을 사서 듣다가 이번에 김건모는 정품으로 샀다. 테잎을 밀어넣는다. 찰카닥! 데크에 걸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정품이어서 그럴 거다.


8개월쯤 그렇게 길을 누비고 다녔다. 다시 봄이 왔을 때 전무는 차를 줄 테니 학교 다니면서 하란다. 학기 중에도 때때로 택시를 탔다. 방학 땐 어김없이 택시기사였다. 복학할 때까지만 하려던 택시운전을 졸업할 때까지 했다. 


그때가 왜 이렇게 찡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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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5 15:43:37 *.53.209.142

아, 나까지 찡함...  90년대는 어찌 되었던 우리 세대의 청춘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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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5 15:59:42 *.70.47.227
자칭 아티스트한 운전 솜씨가 이때부터 생긴거네요. 오도리 가는 길에 자부심이 잔뜩 배어나더만 역사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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