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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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을 공부하며_구달칼럼#39
“참고도서만큼 책이다.” 또는 “자료조사가 책 쓰기의 8할이다.”이런 말들은 책 쓰기에 있어 참고문헌이나 자료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책의 콘셉트를 잡으면 자료조사에 돌입하게 되는데 자료를 수집하면서 책의 목차를 잡고 한 꼭지 식 씨앗글을 써 나가라고 <쓰는 만큼 이루어진다>의 저자 한명석 선생은 조언한다. 쓰면서 생각하기는 손끝에서 글이 나오는 원리를 잘 이용한 행동파다운 비법이다.
또 한선생은 말하길, 문장 하나에 생각 하나를 담듯이 책 한 권에도 하나의 생각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윤석철 저자도 <삶의 정도>에서 삶을 단순화 하는 것이 잘사는 비결이라고 했는데 어떤 분야이든 경지에 오른 대가들은 단순명료란 공통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한 가지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어떻게 풀어 놓을 것인가가 관건이긴 하지만.
나는 자전거 여행으로 인생 전환한 중년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하고 <두 바퀴로 인생역전>이란 가제목을 붙여 봤다. 초기에는 자전거 관련 책들만 참고도서로 골라 보았지만 이젠 범위를 넓혀 인생 전환의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행가들의 에세이를 대거 포함시켜 여행과 인생이란 폭넓은 세계를 조망하면서 자전거와 전환이란 핵심코드를 향해 이야기를 어떻게 수렴시킬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제일 먼저 펼쳐 든 책이 구본형 선생의 <떠남과 만남>이다.
“회사를 나온 후에도 한동안 나는 여전히 월급쟁이였다. 평일 낮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면 알 수 없는 곳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듯 불안했다. 내 속에 숨어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끄집어 내는 나만의 의식이 절박했다.”
선생은 이런 절박한 필요에서 여행을 시작했지만 한 달 보름에 이르는 남도여행을 마친 뒤에는 당당하게 낮술을 즐기는 건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이렇듯 여행은 불안에 쫓기는 인간을 치유하며 야성을 회복시키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다. 나의 자전거 여행도 야성의 회복이란 공통의 사명에 공명한다. 내 안의 이리를 불러내는 것은 홀로서기의 삶에서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이지상의 <언제나 여행처럼>은 여행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는데 교장샘의 추천서답다. 제목처럼 일상의 여행자로 살아가려는 저자의 사유와 상상이 깃든 여행기로 봐도 무방하겠다. 여행기로서는 드물게 여행과 삶에 대해 저자가 인문학적 태도로 접근하여 여행의 의미를 찾는 사색적, 철학적 성격이 짙은 책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직장을 박차고 나와 20여 년간 세계를 주유했다. 저자는 자신은 여행을 하지 않으면 제 명에 못살 것 같은 천생의 방랑자라 했다. 그래서 그는 운명처럼 길 위에 썼다. 권태로운 직장을 뛰쳐나와 오랜 세월을 길 위에서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 떠돌았다. 그런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놀랍게도 권태는 방랑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딜레마였다. 하나 저자는 지혜롭게도 시간 속의 여행을 생각해 내었다. 우리 모두는 떠나지 않아도 시간을 타고 삶이라는 바다를 여행하고 있는 시간여행자라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에 이른 것이다. 시간여행자가 되면 매일 똑 같은 아침을 맞아도 가슴 설레며, 하늘과 바람과 구름, 꽃과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도 여행이 가능한 일상의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공간여행자에서 시간여행자로 전환함으로써 권태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내가 꿈속에서도 바라던 일상 생활이 곧 여행이 되는 생활여행자의 모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저자는 단지 사유와 상상을 통하여 그의 인식의 틀을 살짝 바꿈으로써 간단히 생활여행자가 되었다. 역시 고수는 다르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단순히 상상의 힘으로 전혀 새로운 여행방식을 창안해 내는 현장을 목격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전혀 새로운 여행 패턴이 탄생한 것이다.
김남희의 2009년 작 에세이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따듯한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애틋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가파른 삶의 길을 가는 외로운 순례자들이었다. 길 위에서 만나, 길 위에서 마음을 열고, 길 위에서 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존재가 결국은 꽃이라는 것을. 참 이상하다. 길 위에서 사람들은 어찌 그리 넓어지는 걸까? 세상에 태어나 내가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방 빼고 적금 깨 여행을 떠난 일이었다.”
김남희에게 여행은 곧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허긴 여행기에 사람이야기 빼면 무얼 쓰겠는가? 저자가 일전에 까탈스럽고 소심하고 겁 많다고 본인을 묘사했는데 그건 전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이며 용감했다. 어찌 소심하고 겁 많은 여자가 방 빼서 세계일주를 떠날 수 있겠는가? 거듭된 여행은 그를 더욱 담대하고 통 큰 여행체질로 만들었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숙이 더해져서 그의 글을 더욱 깊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친근한 대화체가 많고 문장이 짧고 간결하면서 바로 핵심을 찔러 시원시원했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들, 아웃사이더 여행자들의 이야기들이 신선하다. <카오산로드>의 박준이 여행자들을 취재하면서 쓴 현장감 있는 여행기를 연상시키듯 김남희가 만난 사람들은 그의 손끝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살아있는 글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는 것이란 깨달음에 이르렀다.
2002년에 읽은 바 있는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을 꺼내 들었다. 왜 이 책이 10년도 넘은 세월 속에서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는 걸까?
“나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 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파도와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 꽃처럼 발 밑에 쌓이고 갈매기들의 비상은 색종이처럼 머리 위에 쏟아진다.”
이는 아마도 10년의 세월을 넘어 나의 심금을 울려온 시인의 감성을 포구라는 절묘한 여행지를 순례하면서 길러 오고픈 나의 오래된 갈망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해안 일주 자전거 순례를 고집하는 이유가 오래 묵은 욕망의 해갈을 위한 것임을 오늘 새삼 깨달았다.
책을 쓰기까지 앞으로 더 많은 참고문헌을 읽어 나가겠지만 모든 책들이 고이 품고 있는 한 가지 생각에 접속하는 것 또한 한량없는 기쁨일 것이다. 얼마 전 참치와 한 카페에서 3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면서 생각했다. 대화는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이렇게 시간을 잊고 술술 끝없이 이어갈 수 있는데 왜 글쓰기만 하면 꽉 막혀서 꼼짝달싹 못하다가 마감이 임박해서야 겨우 한 두 장 글도 아닌 글을 작품이라고 내놓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던 기억이 난다. 떠오른 한 생각을 참치와 수다 떨 듯 시원하게 풀어놓을 수는 없을까? 우리의 화제가 주로 가족과 글쓰기, 책 읽기 등 우리의 관심사와 생활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몸으로 기억하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여행의 경험을 몸에 새겼다가 글로 풀어놓는 여행기를 글쓰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잘한 일 같다. 다만 수많은 조각 이야기들을 한가지 주제로 메뚜기 꿰듯 꿰어 가는 솜씨를 참고 도서들을 통하여 배우고자 애쓸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참고문헌이 좋다고 할지라도 결국 책 쓰기를 가장 잘 배우는 길은 책을 직접 써 보는 것이란 깨달음 또한 참고도서를 통해 얻은 귀한 전리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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