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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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자궁경
개똥아, 산아,
동지인 오늘 새벽 눈발이 날렸다. 창을 열어보니 지금은 그쳤다. 건너편 공사장에는 드럼통에 불을 피워두었다. 귀를 덮는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미끄런 내리막길을 내려가느라 몸에 힘을 주고 살금살금 걷는다. 인제 한 시간 후면 나는 대구로 가는 KTX를 타고 있을 거란다. 오늘 자궁경 시술이 있거든. 아빠는 야간근무 퇴근을 한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 1시간짜리 쪽잠을 자려고 침실에 들어가셨어. 묵은지 소탕용으로 끓인 돼지등뼈탕의 알후추를 안 건져냈다며 말이 많았다. 나는 10시부터 금식이란다. 물도 마시지 말랬어. 아침을 넉넉히 먹어두었다. 좀 떨리는구나. 다른 걸 할 마음이 안 나고 서성이게 된다. 너희에게 짧은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병원에 가는 날은 아침마다 너희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구나. 기도로 마치는 편지쓰기가 내 마음을 안정시키곤 했다.
새로 이사온 집의 짐정리가 거의 끝이 났어. 결루 때문에 벽지를 벗겨내야 했던 방이 지금 내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작업실이다. 화이트 페인트로 잘 칠해졌어. 눈 앞에 생기있는 화분들이 나를 지켜본다. 고무나무 잎이 반들반들 윤이 나고, 금목서가 새로 꽃을 피우려고 하는 걸 보면 이 방이 마음에 드나보다.
오늘 대구에 가서 지난 번 라헬에서 진단내시경을 하면서 발견한 자궁의 폴립과 거미줄처럼 하얀 실을 제거하게 된단다. 자궁경을 하면 효과가 3달 정도 간다는구나. 자궁경 후에 시험관 성공률이 높다고 들었어. 할머니한테는 자궁을 깨끗이 청소하러 간다고 표현을 했어. 씨앗을 심기 전에 보습을 메고 밭을 갈러 출정하는 느낌이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날, 동지에 자궁경을 하러 가는구나. 자궁경까지 해야 하는 게 서글픈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동지에 희망을 심는 마음으로 나는 대구행 기차를 탄다. 인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해야겠다. 나의 벗은 몸을 보이며, 산부인과 진료 의자에 눕는 건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 잘 다녀올게.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자궁경을 하러 대구 가는 날, 편지를 한 통 쓰고서 나서려 합니다. 농사를 짓기 전 밭의 깊이갈이를 하듯 저의 자궁이 깨끗하게 잘 준비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새벽에 커다란 하얀 교실 꿈을 꾸었어요, 교실처럼 커다란 방에 벽과 천정 바닥이 모두 하얬어요. 그 안에 어떤 성인 남자가 굳건히 서 있었어요. 저의 자궁인가 하였어요. 개똥이와 산이를 만나러 가는 길 한 걸음치 잘 닦고 오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여 주세요. 저희 가족을 지켜주세요. 함께 하는 의료진 한 분 한 분, 함께 해주는 의료기기 하나하나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녀올께요. 떨리는 마음이지만 떨리는 마음을 안은 채 계속 걸어갈께요. ” 이런 기도를 했구나.
서울역에서 12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갔다. 편도 내 차비 42500원, 남편은 복지카드 때문에 30% 할인을 받았다. 눈길이 매우 미끄러웠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벌러덩 쿵 회항 할 수 있다고 말해서 깔깔 웃었어. 최근에 있었던 대한항공기 땅콩회항에 빗댄 우스개말이야.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어서 근처의 STX, LG U+, CJ에서 회사원들이 식당으로 쏟아져나오고 있었어. 검은 행렬이었어. 마라톤 하듯이 둘이서 뛰어서 기차를 탔어. 재미났어. 창가 자리에 앉은 그는 코를 골면서 잤어. 예전에는 그가 대중교통에서 코를 골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 지금은 하나도 안 그래. 야간출근을 했다가 밤새 일을 하고 퇴근해 쉬지도 못하고 나를 동행하는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간혹 기차에서 ‘코고는 소리가 어디서 나나?’ 추적해온 눈초리가 있었다만 난 개의치 않았어. 복도 쪽에 앉은 내가 병풍처럼 그를 지켰어.
대구 마리아는 동대구역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이었고, 걸어서 5분 걸렸다. 입주한 건물의 분양이나 입주가 아직 안 끝났는지 아래는 휑한데 8층과 7층을 마리아 난임병원에서 쓰고 있었어. 동대구역에서 가깝고 고속터미널과도 가까워서 전국에서 이 병원을 방문할 사람들에게는 편리해보였어. 흥미로운 건 대구의 고속터미널은 회사별로 3군데나 된다는 거였어. 여긴 나처럼 나이가 많거나, 난소기능저하가 있거나, 남편의 희소정자로 기회가 적거나 여하튼 특별한 여건의 부부들이 부모가 되려는 희망을 갖고 찾아가는 종착지 같은 병원으로 내게 다가온다. 20여년간 전국 난임병원 중 가장 많은 시술을 하고 있고, 성공률이 높고, 배양기술이 좋다고 이름났어. 삼신할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명의 이성구박사님이 계신 병원이지. 나도 그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있어. 올해 44살인 내겐 시간이 없다. 아직 폐경이 안 되었고, 단 5%만이라도 희망이 있을 때 나는 할 수 있는 자원을 다 동원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와 회한, 미련이 없을 듯 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난임병원에 혹시라도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으면 남편들이 자리를 일어나 주면 좋겠다고 말해두었어. 다행히 자리가 많았어. 이전한 후 넓어졌어. 태블릿이 설치된 기다리는 공간도 여기저기에 많고 초록과 자주색의 의자가 이쁘더라. 새집 냄새가 많이 나더라. 좀 눈이 맵고 공기가 텁텁했어.
점심시간이라 접수대만 사람이 있었어. 정면 접수대에 카드를 내어 접수했더니 1과로 가라고 했어. 통에 진료카드를 넣어두고 잠시 기다리니 사람이 왔어. "2시 30분에 자궁경 예약했어요." 2과로 가라네. 수술동의서를 한 장 쓰고 잠시 기다리다 선생님을 만났어. 라헬에서 떼어온 반복착상실패 검사 결과지를 냈어. "자궁입구를 벌리고 시술할 겁니다. 출혈이 있을 수 있고요 이틀 정도는 안정해야 합니다." 주사실에서 항생제 엉덩이 주사 한 대 맞고 7층으로 내려갔어. 떨리고 두려운 마음에 아빠와 포옹하고서 안으로 들어갔어. 밖에는 몇 명의 남편들이 대기하고 있었단다. 다 우리같은 마음이겠지. 탈의실에서 하의를 모두 탈의했어. 윗옷은 입고, 아래속옷은 가운 주머니에 넣으라길래 그렇게 했어. 양말은 발 시릴까봐 그냥 신고 있었어. 대기하는 침대에 누우니까 마취한다고 수액을 달아준다. 팔뚝에 알레르기반응 주사를 한 대 놓았어. 벌레 물린 듯 따끔하다. 곧 수술방으로 안내되었어. 수술방 한 가운데에 자주색 산부인과 의자가 있다. 거기에 누웠더니 양쪽 다리와 팔을 묶는다. 수술 중에 움직일까봐 그런다는데 아래를 탈의한 산부인과 진료 자세로 양팔과 양 다리를 묶이자니 슬픈 마음이 들었어. 흐려지는 눈물을 참으려고 천정을 올려다봤어. 거기에 그림이 있다! 아기 손을 잡는 엄마 손이다. 그림 옆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멀리 멀리서 찾아온 아가야, 마지막 벽을 넘어서 따뜻한 엄마 품으로 어서 오렴' 그 문구에 눈과 가슴이 먹먹하다. 이 자리에 눕는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좋은 응원이라고 생각했어. 고마웠어. 그 마지막 벽이 무엇이든 이 자리에 눕는 이들은 저 우주적인 만남을 위해 하나를 뛰어넘거나 격파하고 있는 중이겠지. 나 또한 이것이 너희와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는 장애물, 내가 넘어야할 벽이라면 기꺼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넘으리라 다짐했다. 잠시 후 2과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내 왼쪽의 간호사가 팔에다 마취주사를 놓았어. 마취과 선생님이 따로 없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오로용 길다란 패드를 대고 속옷을 입혀주길래 엉덩이를 살짝 들었어. 남이 속옷을 입히도록 엉덩이를 들면서 학교에서 만난 아이를 생각했어. 웃음이 매우 아름다워서 ‘베스트 스마일’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 아이는 인제 초등학교 6학년이겠네. 걷지 못하던 아이를 데리고 내가 기저귀를 갈러 화장실에 가서 세워두면 용을 써서 엉덩이를 벽에서 들어주었어. 그러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어.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곤 했지.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나 뒤늦게 여기서 만져진다. 눈이 젖는다.
걸어서 회복실로 다시 갔다. 구역질이 났어. 심한 배멀미나 차 멀미같았어. 토하거나 설사를 할 것 같은 니글울렁거리는 느낌에 괴로웠어. 니글거린다니까 눈이 크고 장신의 간호사가 옆으로 누우라고 베개를 등 뒤에 세우고 스텐레스 그릇을 하나 갖다 주며 혹 토가 나면 여기다 하라고 했어. 토는 나지 않았어. 계속 속이 니글거려서 숨을 짧게 끊어서 입으로 훅훅 내쉬고 있었어. 아까 건물 들어올 때 맡아지던 냄새, 눈 매운 느낌이 더 강하게 났어. 얼른 공기 좋은 데로 나가고 싶더라. 아래에서 생리 이틀째처럼 힘 줄 때마다 뜨끈한 것이 물컹물컹 나오고 있었어. ‘출혈이 있구나.’ 누운 채 밖에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매우 걸걸한 여자 목소리가 '내막이 괜찮다고 했으면 8미리 이상인 겁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구나. 배아 이식 후의 오리엔테이션인가봐. 여긴 이식환자가 많아서 한꺼번에 한다고 했어. 나도 1달 정도 후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나는 이성구박사님이 목소리가 들리려는 찰라 밖으로 나왔어. 수액이 끝났어. 그는 7층이 아니라 8층에 있었어. 늦은 오후라 그가 기다리는 곳에 다른 사람이 없었어. 나는 의자에 벌렁 드러누웠어. "메스꺼워요. 의자를 갖고 와서 내 손을 좀 잡아줘요. 그리고 다른 손으로 내 배 위에 얹어줘요." "마취 깨느라고 그래요." 아빠가 손을 내 배에 얹었어. 따뜻한 손바닥의 열감이 전해졌어. 마음이 훨씬 안정이 되고 몸이 이완되었어. 깊은 숨을 내쉬면서 웅크렸던 다리를 길게 폈어. 그가 함께 와주어 정말 다행이야.
2과 앞에서 잠시 기다렸어. 항생제, 자궁수축제, 진통제 5일치를 처방받았어. 1층 약국에서 사라는 설명을 들었어. 2과에 들어갔어. “폴립 1개를 제거했고, 내일까지 지금처럼 출혈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수술은 잘 되었어요.” 라고 했어. 혈소판이 127000이라니까 "그러면 괜찮을 거예요." 2과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이성구선생님이 이식 후에 오셔서 첫 번째로 불러서 들어갔어. 1월 2일이나 3일에 와서 장기 들어가자고 하셨어. 아르기닌을 1g을 하루 3개 먹으라고 용량을 올렸고 영양제 다른 것은 그대로 먹으라고 했어. 200만원 들여서 애써 해 간 반복착상실패검사 결과지를 2과 샘에게 드렸는데 1과 샘 진료 볼 때 없었어.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 집에 와서 보니 남편 검사 결과지는 드리지도 않았고, 내분비내과 진료 본 거 말씀드리는 걸 까먹었더구나. 이런이런. 두 선생님 진료방에 모두 동행해 내 옆에 앉아 있었던 아빠는 대구 마리아 선생님에 대해 '힘있다, 거침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는구나. 남편이 코레일 앱으로 기차표를 예매했어. 시간이 바빠서, 저녁은 못 먹고, 반월당 고로께와 초밥을 사들고 조금 뛰어서 KTX를 탔어. 기차에서 여러 번 그를 회식자리로 부르는 전화가 왔어. 나를 부르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어. 휴직을 하고 집에 있으니 인간관계가 너무 좁아졌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산걸까? 헌재에서 통진당 해산 판결이 난 후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뉴스가 기차 천정에 달린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었어. 기차에서 내린 후 그는 회사인지 다른 모임에서인지 회식장소로 갔어. 그도 고생했으니 한 잔 하면서 마음을 풀어야겠지. 나는 집으로 혼자 돌아왔어. 병원에서 해 준 커다란 오로용 패드를 제거하고 깨끗이 삶아 빨아서 바짝 말려 접어둔 내 면생리대를 꺼냈어. 왠지 마음이 쓸쓸하다. 나도 포도주를 한 잔 할까? 항생제를 먹고 있으니 안 되겠네. 혼자서 팥죽을 쑬까? 떡쌀을 좀 담글까? 이사 오고 나서 이웃들한테 아직 인사를 못했다. 떡을 해서 좀 돌려볼까? 곶감과 서리태콩을 듬뿍 넣은 마구설기가 좋을까? 떡국떡이 좋을까? 만만하긴 떡국떡이 낫지? 뜨끈뜨끈할 때 간장 찍어먹어도 되고, 굳혀서 떡국 끓여도 되고. 생각해봐도 여전히 쓸쓸하네.
해야지 해야지 하던 고무나무 분갈이를 시작했다. 자궁경 시술을 마치고 혼자 돌아와 잡히지 않는 쓸쓸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손으로 흙을 만지면서 식물을 대하면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환해진다. 보통 여자들은 하지 않는 자궁경을 나는 해야 했다는 게 쓸쓸함의 연유인 듯 하다. 폴립을 제거했지만 착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다 제거한 걸까? 이 일에만 매달려 고립되는 듯한 느낌도 있다. 분갈이를 마치고 진통제와 항생제, 자궁수축 관련된 약을 먹는다. 회복을 위해서는 5일간 항생제를 먹고 2주간 부부관계, 탕 목욕, 심한 운동을 금해야 한다. 특히 이틀간은 출혈을 관찰하고 안정하라고 했어. 채취 후에 금지하던 것과 똑같네. 자궁경 과정에서 생긴 상처의 감염을 막기 위한 조처야. 오늘은 동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시간. 그리고 인제 며칠만 있으면 나는 44살이 된다. 나의 밤도 동지처럼 길다.
동지는 12월 22일,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다. 크리스마스가 빛이 돌아온다는 잔치라고 한 걸 읽었어. 절에서 동지법회를 챙기는 이유는 팥죽보다 중요해. 인연을 짓는 의미때문이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 이후로는 낮이 조금씩 길어진다.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지는 그 낮이 쌓여 봄이 온다. 소한, 대한 제일 추운 날들이 동지 뒤에 오더라도 낮은 내일부터 길어진다. 오늘밤이 제일 길다. 그러니 가장 어둡고 추울 때 봄이 올 인연을 지어가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할거다. 지구는 엄정하고 성실하다. 조금씩 봄이 오는 쪽으로 자전하며 공전한다. 지구처럼 나도 빛과 어둠, 맑음과 탁함이 공존하는 하루하루, 조금씩 빛과 맑음을 늘이며 자전하면서 공전해 갈 거다.
개똥아, 산아, 오늘 멀리서 오고 있는 너희가 따뜻한 우리 품으로 안착하도록 내가 벽 하나를 넘었기를 바래본다. 너희에게 편지를 쓴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올해의 마지막 편지가 되겠구나. 너희와 몸과 마음 건강하게,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되길 기도드린다. 너희를 지키시는 님들이 너희를 안온히 안아주시길 기도드린다. 사랑을 보낸다. 잘 있거라. 2014.12.22.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작년 동지에도 가장 밤이 긴 날 희망을 가꿔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편지를 미래의 아이들에게 보냈던 기억이 나요. 같은 내용의 편지를 두 번째로 보내네요. 오늘은 푸념을 하고 싶은 날이예요. 아이들을 향해 편지를 쓸 때는 백마고지 소대장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했지만요 당신께로 향하니 징징거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아이들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아요. 이건 내가 그들의 부모인 한 평생을 두고, 죽어서도 가지게 될 자세일 겁니다. 내리사랑이니까요. 내 짐은 내가 지고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크게는 못 도와줘도요 이것은 하고 싶어요. 내가 듬뿍 사랑을 주고, 그걸 자신의 자녀들을 향해 베풀 수 있도록 사랑의 물줄기를 잘 흐르게 하고 싶어요. 나의 결핍은 저의 부모님, 남편, 그리고 기도와 힘을 주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가길 바래요. 아이에게 달라고 하는 건 학대이고 도둑질입니다.
한 해 동안 난임병원 2군데를 다니며, 인공수정 1번, 시험관 3번의 실패를 겪으며 쉼 없이 달려왔고 이제 대구까지 오면서 ‘쉽지 않구나’를 알았어요. 저한테는 시간의 낫을 휘두르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날 선 칼날이 슝슝 느껴져요. 성공확률 10%라는 게 10번하면 성공한다는 뜻이라면 기꺼이 10번 하겠어요.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닌걸요. 직장의 조선생님이 휴직하는 나에게 했던 말 “이 말 꼭 해주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몸을 만들지만 결국 생명은 하늘의 선물이더라구요. 이 말 권샘한테 할까말까 망설였어요.”을 상기해요. 왜 그가 이 말을 내게 하는 걸 망설였을까요? 내가 마치 휴직만 하면, 시험관만 하면, 올인해서 열심히 준비하기만 하면 아이를 마치 내가 따거나, 획득하는 것처럼 기대에 들뜬 걸 그가 읽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도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를 만났다고 했어요.
분갈이를 하고, 절에 다니는 동안 귀가 닳도록 들으며 저축해두었던 동지법문을 상기하며 좀 힘이 났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방하착하라는 말씀도 기억 났어요. 답답하네요. 어디 마음 시원해지는데 다녀오고 싶어요. 통영의 달아공원처럼 바다를 보면서 근심걱정을 다 털어버리는 곳이요. 프로스트의 시를 읽고 싶은 밤입니다. 밤은 길고 추운데 길은 멀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울 때는 당신께 기대어 앙앙 시원히 울어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울면서도 한 발씩 계속 걷고 있기를 바랍니다. 눈발이 날리고, 어두운 길, 느린 걸음일지라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저희 가족을 안온히 지키고 보아주세요. 새해에는 몸과 마음 건강하게 개똥이와 산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R.Frost)
노란 숲 속 두 갈래 길
나그네 한 몸으로
두 길 다 가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덤불 속 굽어든 길을
저 멀리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두 길 모두 아름다웠지만 풀이 밟히지 않은
길이 더 끌렸던 것일까요.
하기야 두 길 모두 사람들의 발길로
엇비슷하게 보였지만요.
그대도 그날 아침에는 두 길 모두
아무도 밟지 않은 낙엽에 묻혀 있었습니다.
아, 훗날을 위해 하나의 길을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법이라
되돌아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요.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말하겠지요.
어느 날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노라고.
The Road NOt Take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참고문헌 : <아가야,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 신현림 엮음. 걷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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