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 조회 수 245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해를 뜨게 하는 방법
일출을 보러 두 바닷가에 갔다. 포항 영일만, 제주도 광치기 해변. 화투패 삼팔광땡을 떠올리게 하는 광치기해변은 제주섬의 동쪽,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사이다. 한 가지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내 왕국의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있는 영일만
포항 영일만은 변경연 10기 연구원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갔다. 올해 수업에 거의 매달 참여해왔다. 첫 책을 내는 과제를 패스하지 못해서 펜스에 앉아 관람하는 옵저버다. 묵언 수행, 참여관찰을 하면서 내 수업을 복습한다. 구본형선생님의 개인 대학원인 연구원 3년차를 보내고 있다. 개인사를 20쪽 보내서 선발하는 특이하고 재미난 방식이었다. 일종의 통과의례를 치르러 연구원에 왔었다. 작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삶의 혁명을 위해서였다. 내가 이해하는 구본형의 자기혁명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거였다. 그런 자기혁명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계경(鷄經)의 의미가 첫 책이다. 졸업논문, 완주증이다. 구본형사부님은 돌아가셨지만 1주에 1권씩 동서양 고전을 읽고 칼럼을 하나씩 쓰는 1년의 자기탐색 후에,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분야에서 첫 책을 2년 이내에 쓰겠다는 그 분과의 약속, 나와의 약속은 살아 있다.데드라인, 또는 마감은 2015년 4월 30일이다. 수업에 가는 건 생존전략이다. 뿌리나 가지에 붙어있으려는 발버둥이다. 장소가 포항 시내인 줄만 알았는데, 픽업나온 경상도 사나이의 스틱 자동차가 영일만(迎日灣) 항구를 돌아 도구해수욕장을 스친다. 우리가 묵는 펜션은 오도(烏島)리에 있었다. 머리 속에 전구가 켜졌다. 동시성에 환호했다. 선물처럼 생각되었다. 영일은 한자어로 뜻을 풀었을 때 해를 맞는 고장이다. 수업 장소가 영일만이어서 기뻤다.
우리가 묵은 펜션은 바다를 면했고 파도소리가 들렸다. 벽에 영일만의 일출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나는 수업시간 중에서 그 사진에 몰래몰래 눈을 맞추며 빙글빙글 웃었다. 내일 아침에 상봉할 일출에 대한 기대에 설렜다. 해를 맞이하는 곳에 내가 있다. 나를 포함해 여기 온 이들은자신의 왕국 하나를 건설하고, 그 나라에 해를 뜨게 하려고 모였다. 자기 왕국의 왕, 여왕 후보생들이다. 이번 달 수업 주제는 미래 트렌드와 관련된 자기의 강점, 그리고 5가지 미래 풍광, 미래 직업 네이밍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전문가, 또는 스스로를 고용하는 1인 기업가의 영역, 광합성을 하는 나무의 삶을 줄 지도 모를, 아직은 지도에 없는 나라들의 이름이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들의 첫 책은 그 나라의 주춧돌이나 입헌의회의 헌장, 또는 전국에 영향을 끼치는 인프라 중 하나가 되리라. 영일만은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의 장소다. 삼국유사 기이편을 읽어보자.
신라 제 8대 아달라왕이 즉위한 지 4년은 정유년(157년)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해조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연오랑을 등에 업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며 세워서 왕을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 이상해서 바닷가에 나가서 찾아보았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이 있었다.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그 바위는 이전처럼 세오녀를 태워서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고 이상하여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이리하여 부부가 서로 만나 그녀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에 광채가 없었다. 일자(해를 보고 길흉을 점치는 사람)가 왕께 아뢰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왕이 사자를 보내서 두 사람을 찾아오게 했다. 연오랑이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비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비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을 보고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그런 뒤에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아졌다. 이에 그 바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고 삼으니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한다. 또 하늘에 제사지낸 곳은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한다. (삼국유사 제 1편 기이 제1)
연오랑과 세오녀의 ‘오’는 까마귀 ‘오(烏)’자다. 태양의 신 아폴론의 신조가 까마귀였다. 갈마귀가 해를 훔쳐서 입에 물고 도망 오다가 검댕에 그을려서 까매졌다는 건 북태평양 인디언 신화에서다. 두 사람 모두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거나 일관의 직무를 맡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일식과 관련된 헤프닝을 다뤘다고 이 이야기를 읽기도 한다. 해를 뜨게 하려면 세오녀의 베가 필요했다. 어째서 세오녀의 베는 해를 뜨게 하는 힘이 있었을까? 그건 무엇일까? 일단 베는 길쌈의 결과물이다.
길쌈과 물레질
길쌈은 예로부터 성스러운 여신이나 귀한 여인들의 일이었다. 아테나여신은 아라크네와 길쌈 경쟁을 벌인다.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 칼립소, 헬렌, 페넬로페이아도 베틀에서 길쌈을 한다. 동북아신화에서 길쌈하는 여신들과 하늘의 관련성이 부각된다. 일본의 창조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도 길쌈하는여신이다. 한국에도 있다. 바로 오작교에서 견우와 만나던 직녀다. 중국 설화에는 길쌈하는 여인에 대한 재미난 설화가 있다. 그건 삼형제를 두 어머니가 길쌈을 하는 동안 두 아들은 어머니를 구박했지만 셋째 아들은 어머니가 마음놓고 작업할 수 있도록 의식주를 책임진다. 어머니가 짠 비단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늘의 선녀들이 탐을 내어 가져가버릴 정도다. 막내가 하늘로 가서 어머니의 비단을 찾아오는 모험을 한다. 비단을 되찾아 왔을 때 그 비단에 그려진 곳이 너무나 아름다워 거기서 살고 싶어 자신의 모습을 몰래 수놓아 넣었던 하늘의 선녀가 한 명 따라내려온다. 그녀는 자신을 그 비단에 새김으로써 그 비단의 주술의 대상이 되었다. 막내는 선녀와 혼인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단다. 중국의 비단이야기에서는 어머니의 길쌈이 ‘창조’의 의미로 사용된다. (시공주니어 김서정) 그리고 직조된 직물 안에 그림을 넣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청사진 역할을 한다. 인간이면서 제우스신의 딸인 아테나여신에게 도전했던 아라크네 이야기에서는 무늬를 통해 그들의 정신을 드러낸다. 아테나여신은 제우스신을 찬양하는 내용을 짠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제우스신의 난봉질을 주제로 테피스트리를 짠다.
심리학적으로 길쌈은 ‘다른 두 요소의 분화 혹은 구분’을 뜻한다. 분석심리학자 아니엘라 야페는 하나의 사실을 둘 혹은 그 이상의 측면으로 구분해내거나 내포된 의미의 대극을 찾는 것이 의식적인 깨달음의 선결과제라 설명한다. 신화적인 표현이 훨씬 단순하다. 대부분의 창조신화에는 칼, 화살, 도끼 등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나누고 분화하고, 구별하는 분할과 분류의 상징이다. 이것은 이성의 비유다.
길쌈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레질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을 만드는 게 물레질이고 만들어진 실을 씨실과 날줄로 걸어서 천을 짜는게 길쌈이다. 시벨레 버크하우저는 물레질을 정신 활동과 연관지었다. 창조의 과정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짱구를 굴리고(spin fantasy), 두뇌를 회전시키고(spin wheels) 생각을 풀어내(spin tales) 무의식에서 뭔가를 끌어내는 작업은 물레질로 형상화할 수 있다. 세계의 신화와 민담에는 물레를 돌리는 여신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여신 바바야가의 집은 물레가락 위에 놓여 있어서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간다.
길쌈은 씨줄과 날줄을 교차해서 직물을 짜는 거다. 거기 새겨지는 무늬는 먼저 머리 속 심상으로 존재했다. 그걸 실현해가는 게 길쌈이다. 미리 예측하고 실의 색깔을 바꿔가면서 짜야한다. 베는 베틀에 앉아 한 줄씩 짜올리는 실제적인 노동과 시간의 투여를 필요로 한다. 이건 개인의 신화를 실현시키려는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나바호족 인디언처럼 해 뜨는 동쪽을 향해 달리기
10기 연구원의 수업은 12시에 끝이 났다. 3시까지 이어졌다는 뒷풀이에 참석하지 않고 자러 갔다. 초저녁잠이 많고, 많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에는 쉬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나에게는 자정을 넘어 이어지는 뒷풀이는 곤욕스럽다. 자정까지 버틴 것만 해도 선방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사회성부족, 부적격을 고함으로 고발하는 자아비판은 내 안에서 쾅쾅 울린다. 한편 내 마음은 은밀한 콩밭에 가 있었다. 인가의 아침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나 새벽푸른빛 속에서 일과를 하고 영일만의 해돋이를 청명한 정신으로 보러 나가고 싶었다.
3시 반 경에 일어났다. 늘어놓은 과메기 술상을 밀었다. 내 할미꽃잔에 커피를 만들었다. 매일 쓰는 내 커피와 할미꽃잔, 그리고 다포를 가지고 포항행 기차를 탔었다. 나는 혹시나 다른 이가 새벽에 같이 일어나 있을까 해서 사부님 사진을 넣어갔었다. 주황색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덥석부리 여행자의 모습이다. 내 책상 오른쪽에 늘 있다. 그 분과 함께 했던 첫번째 1박2일 수업은 강원도 홍천의 한옥 팬션이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해, 매일 새벽에 4시에 일어나 아침 노을이 올라올 때까지 글을 써서 1년에 1권 이상씩 책을 내어온 이와 같이 새벽을 보냈다. 입학 전의 면접 여행이 있었던 여우숲에서도 같이 보냈다. 그 두 번의 새벽이 내가 그와 보낸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다. 나는 말하거나 어울린 것보다 그의 핵심에 가까운 장소에서 같이 보낸 시간으로 상대를 사귀거나 배우는 사람인 듯 하다. 연구원 여행으로 시칠리아를 10일간 여행할 때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저는 여행 기간 동안 사부님 옆에서 새벽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래도 되나요?"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두 2인실이었지만 그는 1인실이었다. 말했다면 그는 “그래” 했을까? 나는 실행할 용기를 못 냈다. 아니 다음에 기회가 있으리라 미루었다. 다음은 없었다.
막 모닝페이지를 시작하려는데, 나를 그 공부모임에 초대했던 선배가 들어오면서 한 잔 하자 한다.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생깐다. 미안하다. 나의 첫 시간은 ‘관계’를 다룰 수 없다. 남편은 그 시간에 내가 지나치게 사납거나 예민하거나 침울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고, 건드리면 물리거나 냉골스럽다는 걸 안다. 모닝페이지를 하고 절을 하는 동안 나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거절한 게 선배가 아니라, 제일 좋아하는 새벽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중요한 걸 안 하고 다른 걸 하면서 보내는 거였다는 걸 변명한다. 채 20분이 안되어, 바다에 갔던 이들이 들어온다. 아뿔사. 다 자는 줄 알았더니. 한 사람이 '쓸데없이 성실하다'고 한 마디 했다. 당사자도 잊어버린 말이 내 등에 꽂혔다. 사람들은 부시럭거리면서 잠들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등에 꽂힌 말과 싸우며 모닝페이지를 했다. 의족을 끼는 마음이었으나 일과를 다 하는 사이에 모든 것은 순화되고 순전한 기쁨이 차올랐다.
만족스런 마음으로 해를 맞이하러 바닷가에 나갔다. 평생 새벽을 이렇게 보내며 살고 싶다. 새벽푸른빛 동안 내 정체성에 맞는 일을 하고서 자연 속에서 아침 노을을 보고 싶다. 자연은 바다도 좋고 산도 좋다. 하늘을 한참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멍하니 앉아 할 일 없이 하늘 보는 걸 사랑했다. 그중 장엄한 광경은 저녁노을이 지거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는 거, 또 대열을 지어 하늘 길을 나는 새떼를 보는 거였다. 어릴 적 살던 집은 동쪽과 서쪽으로 문이 난 집이었다. 엄마아버지는 밥을 차려서 같이 먹고 나면 일찌감치 들에 가셨다. 형제들은 어정거리다가 알아서 제 친구들과 학교를 갔다. 아무도 없는 방에 아침햇살이 무대조명처럼 직사하는 걸 보았다. 방 안의 먼지들이 반짝거렸다. 해질녘에는 서쪽으로 난 마루에 앉아 꼼짝없이 앉아 오랫동안 석양을 보았다.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을 매일 보면서 자란 셈이다. 내가 새벽을 보내는 방은 동쪽의 해를 보는 곳이길 바란다. 이건 그런 집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인류이기 때문에 동굴에서 살던 시절의 기억이 내장되어서 일테다.
일상사진가 P씨가 바닷가에 선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그는 날밤을 까고 막 잠들려는 찰라 1톤짜리 선잠에서 끌려나와, 새벽차로 서울로 올라가는 이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오는 길이었다. 쾡한 눈으로, 낯선 동네의 목욕탕 평상에서 안자고 온 걸 후회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난 이가 두 사람이어서 그에게 해 뜨는 동쪽으로 달리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인디언 성인식 어쩌고저쩌고 우물거렸던 나를 받아준 그에게 감사하다. 나라면 그렇게 못한다. 커피음용후 콸콸 돌던 카페인이 나에게 술처럼 용기를 부었나보다. 해변을 잠깐 달렸다. 내가 통과의례 중인 나바호족의 여인이 된 기분이었다.
미국의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에 살던 나바호족의 인디언들은 4박 5일간 성인식을 치러낸다. 나흘 밤낮으로 마을에서 나이든 여인들은 내내 노래와 주문을 외우며 통과의례의 주인공, 열 다섯이나 열 여섯 여자아이의 몸을 마사지한다. 이것을 빚는다고 한다. 소녀는 집안에서 옥수수를 갈아 자신의 부지런함을 증명했다. 5일째 되는 날 모두가 달려들어 소녀를 변화의 여신처럼 장식한다. 갓 태어난 여인은 실제로 그 부족의 변화의 여신이 되는 것이다. 변화의 여신이란 호조를 관장하는 여신인데 호조는 나바호 말로 아름다움과 조화, 그리고 비옥함과 풍요로움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새로 빚어진 여인은 동쪽으로 난 문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리기를 한다. 자신이 건강하고 힘이 있다는 걸 달리기로 증명한다.
발이 제일 잘 안다는 말은 사실인 듯 하다. 영일만에서 해를 향해 달리기를 하면서 그 장소가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개인의 신화를 실현하고, 자기 왕국에 해를 뜨게 하려는 자는 스스로 베를 짜야한다. 나만의 성소, 베틀에 앉아 내 몫의 베를 매일 길쌈해야 한다. 씨실과 날실 두 개의 시선을 교차하고, 머리 속의 이미지를 선명히 하여 베에 그린다. 그러자면 무의식에서 물레질을 해서 실을 뽑아내야 한다. 자신이 ’변화의 (여)신‘이 될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옥수수를 갈고, 해를 향해 달리는 구체적인 행위로 증명했던 나바호족 인디언의 달리기와 베짜기는 비슷할지 모른다.
설문대할망의 길쌈과 제주도 성산일출봉의 일출
두 번째 일출 여행은 남편과 같이 떠났다. 시험관 4차를 시작하기 전의 일종의 기원여행이었다. "성산 일출봉과 섭지코지에 가고 싶어요. 최근에 읽은 설문대할망신화에서 성상일출봉을 등경대로 삼아 할망이 길쌈을 해서 제주를 창조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섭지코지는 제주 최대의 어장인데요, 거기에서 하루방이 음경으로 몬 고기를 할망이 음문으로 잡아올렸대요. 제주에서 섭지코지가 가장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곳이니까 거기 가고 싶어요.“ 성산 일출봉 근처에서 해 떠오르는 걸 보면서 ‘해를 뜨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부부가 해를 삼키고, 섭지코지에서 풍요를 비는 게 나의 여행목적이었다. 일종의 독서 후 답사여행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라산을 등반하고 싶어했다. 나는 한라산에 간다면 산신기도를 가는 만신처럼 정상의 백록담에 올라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 갖기를 빌고 좋은 기운을 담아 오고 싶었다. 이번에는 발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궁금했다.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거인신이며 창조여신이다. ‘위대한 여신’ 원형이 한국에서 드러난 모습이다. 하루방의 배우자다. 태초에 할망이 있었고, 할망이 하루방을 포함해 제주의 만물을 만들었다. 할망은 연발 설사탄으로 360개의 오름을 만든다. 속옷을 지어주면 육지로 향하는 다리는 놓아주겠다고 제안했다. 할망의 덩치가 너무 커서 옷감을 짓지 못했다. 제주 근처 바다의 깊이를 재다가 한라산 물장오름에 빠져 죽었다. 할망은 성상일출봉을 등경대 삼아서 길쌈을 했다. 그 길쌈의 결과 제주 자연이 창조되었다. 해를 뜨게 하기 위해서는 세오녀의 베가 필요하다는 것과 등경대에 불을 밝히고 길쌈을 한다는 것은 비슷하면서, 선행사건과 후행사건이 뒤바뀌어 있다. 문명의 시작은 '불'과 관련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에게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많은 신화에서는 벌새나 코요테들이 불을 훔친다. 또 할머니의 손톱 10개를 빼서 불을 전달한 손자도 있었다. 불을 가지고 오는 데는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 만큼 희생, 댓가가 따른다. 그건 자발적 희생과도 관련된다. 모든 창조신화에는 불이 등장한다. 불 또는 등불은 언제나 의식의 밝힘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과연 '개인의 신화'에서 문명의 건설의 가져오는 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틀을 광치기해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덕분에 성산일출봉 배경의 일출을 두 번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둘이서 보았고, 한 번은 각자 보았다. 바다로 가기 전에 멋진 새벽을 보냈다. 게스트하우스 관리동의 우리 방에서 나와서 랜턴을 켜들고 모닝페이지를 하고, 절을 하고 노트북에 글을 썼다. 행복감이 말할 수 없었다. 첫째날 일기예보에는 일출이 7시 17분이라고 했다. 기모 달린 두꺼운 옷을 아래위로 껴입고서 해를 맞으러 둘이서 해변으로 나갔다. 도미토리에서 잔 많은 20대의 여행객들이 나와 있었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사이의 해변에서 해가 떠올랐다. 해를 우린 보고 마셨다. 해를 삼키며 아이를 잉태할 수 있기를 빌었다. 포항 영일만에서의 일출은 연오랑세오녀의 길쌈과 베를 생각하며 혼자서 본 일출이었다. 주로 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나의 왕국을 건설할까? 어떻게 하면 그 왕국에 해를 모셔올까 궁리했다. 성산일출봉의 일출은 설문대할망 신화의 불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일출이었다. 가족에게 새 날이 밝길 기원했다.
성산일출봉의 오라클, 철새떼
둘째 날 나는 일출시간에 맞춰 혼자 바다로 나갔다. 그는 좀 전에 비를 맞으러 성산일출봉으로 떠났다. 비가 와서인지 오늘은 일출을 구경온 사람들이 적다. 내 앞에서 새떼들이 가득 하늘을 가로지른다. 한 무리가 아니라 여러 무리가 연달아, 일출을 보러 나간 나의 앞에서 거듭거듭 날아간다. 저 새들은 겨울을 보내러 남쪽으로 가는 걸까? 그게 일종의 오라클처럼 생각되었다. 고혜경선생님은 신화를 전공하는 자로서 설문대할망신화를 살려내는 답사여행에서 우도를 방문했다. 그 배에서 돌고래를 보았다고 했다. 그게 그녀에겐 그녀가 하고 있는 작업을 긍정하는 오라클처럼 생각되었다. 돌고래는 그녀에게 무척 특별한 동물이다. 나에게는 철새들이 매우 중요한 아이콘이다. 나는 '콩두'라는 닉넴을 사용한다. 서른다섯살 즈음, 중년기전환 초입에서 나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다. 이름을 스스로 짓는다는 건 아버지나 스승님이 주시는 이름을 받을 때만큼 의미있다. 부모처럼 나를 낳고, 스승처럼 나를 기르겠다는 선언이었다. 동음이의어인 이 이름에는 뜻이 여럿 있다. '콩쥐의 두꺼비,' '콩닥콩닥 두근두근(follow your bliss!)', '콩豆' 와 함께 네번째 뜻은 '두번째 콩새'다. 콩새는 참새와 닮은 작은 새지만 철새기 때문에 자신의 하늘길을 날아서 멀리 다녀온다. 철새들은 V자 편대를 이뤄 무리로 이동한다. 이 대열은 앞의 새의 날개짓 덕분에 생기는 상승기류를 이용할 수 있고, 바람의 저항도 줄이는 매우 경제적인 방식이다. 함께 가면 멀리갈 수 있는 이유다. 선두에 선 새가 가장 위험에 많이 노출되고 바람의 저항도 세게 받는다. 콩두라고 이름을 지을 때 나는 선두에 선 새가 아니라 두번째 새가 되겠다는 거였다. 이 말은 어쨎든 무리로 이동하면서 내 동아리 안에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철새들의 선두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리 안의 새들이 교대로 맡는다. 바닷가 일출을 배경으로 내 앞에서 날아가는 새떼를 보면서 '콩두'라는 내 이름을 생각했다. 선발대이든, 후발대인든, 본대든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할 거다. 중요한 건 계속 자신의 하늘길을 날아가는 거였다. 언뜻 변경연에서 사부님이 나에게 했던 당부 '모두가 일정한 속도와 보폭으로 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라'는 게 떠올랐다. 나는 '1주 1책 1칼럼, 새벽 4시 무렵의 두 시간 글쓰기, 1일 1문장'을 목표로 한다. 그건 매일 읽고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어느 새 나는 놓치고 있었다. 같이 가는 이들이 없다는 핑게였다. 다시 돌아가리라. 감동을 잘하는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해를 향해 두 팔을 아주 번쩍 쳐들었다. 입을 벌려 해를 삼키고 해가 나를 안도록 가슴을 열었다. 소심쟁이인 나는 뒤에선 남들이 뭐랄까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렇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창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길쌈법
세오녀처럼, 설문대할망처럼 나도 나의 길쌈을 해야겠다. 직업에서 나의 왕국을 만들고, 거기에 해를 불러 오는 것에도 길쌈이 필요하고 아이 낳는 일에도 길쌈이 필요하다. 모두 창조의 영역이며, 마음이 미리 본 것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더 공부해봐야겠지만 어렴풋이 이건 미래를 미리 선명하게 꿈꾸면서 하루하루 일정한 시간을 들여 준비해 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이건 1만 시간의 법칙, 양질전환의 법칙이 가동하게 할 매일의 실천과 관련되지 않을까? 무조건 1만 시간을 들인다고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벌써 16년 이 직업에서 일했지만 스스로를 전문가로 부르기에 부끄럼이 있다. 적합한 것에 대한 적합한 방식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엇일까? 이미 지나치게 칼럼이 길어졌으니 이 질문은 다음 숙제로 넘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472 | 1월 오프 수업 후기 - 최고의 자기 계발은 책쓰기다_찰나 | 찰나 | 2015.01.11 | 2004 |
» | 3-36. 해를 뜨게 하는 방법 | 콩두 | 2015.01.10 | 2457 |
4470 | 3-35. 늦게 낳아 어떻게 키우려고요? [2] | 콩두 | 2015.01.08 | 2898 |
4469 | 1월오프수업_두바퀴로인생역전_구달칼럼#40 [2]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1.08 | 2351 |
4468 | 3-34. 동지에 자궁경 [1] | 콩두 | 2015.01.08 | 3222 |
4467 | 3-33. 갈림길에 선 그대에게 | 콩두 | 2015.01.08 | 2240 |
4466 | 귤 까 드세요 [2] | 에움길~ | 2015.01.05 | 2370 |
4465 | 핫케익뎐 [3] | 종종 | 2015.01.05 | 2004 |
4464 |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잘 쓰여집니다_찰나칼럼#37 [2] | 찰나 | 2015.01.05 | 2137 |
4463 | 적과의 동행 [4] | 왕참치 | 2015.01.05 | 1901 |
4462 |
인간답게 산다는 것 ![]() | 앨리스 | 2015.01.05 | 2474 |
4461 | 글쓰기 한 걸음 [3] | 녕이~ | 2015.01.05 | 2049 |
4460 | 참고문헌을 공부하며_구달칼럼#39 [2]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1.05 | 2011 |
4459 | 새해의 건강법 [6] | 어니언 | 2015.01.05 | 1935 |
4458 | #37 - 문지방을 넘어서 - 이동희 [1] | 희동이 | 2015.01.04 | 2446 |
4457 | #37 아빠 11번!_정수일 [2] | 정수일 | 2015.01.04 | 2055 |
4456 | 내년도 연말에는 [5] | 녕이~ | 2014.12.29 | 2501 |
4455 | 주인의 에너지 [8] | 어니언 | 2014.12.29 | 2560 |
4454 | 좋은 추억은 그리움을 낳고 [9] | 왕참치 | 2014.12.29 | 2403 |
4453 | 평화의 날 [6] | 종종 | 2014.12.29 |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