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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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구본형 선생님의 우편배달부 -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매년 봄이 되면, 저에게는 두 가지 두려움이 다가옵니다. 하나는 꽃가루 알레르기이고, 또 하나는 절두산의 아름다움입니다. 지난 4월 8일에는 절두산에서 구본형 선생님의 4주기 추모 미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미지는 늘 저에게 몽환적인 눈물 반, 콧물 반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둥글게 허공을 감싸 안은 민들레 꽃씨의 이미지는, 제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꽃씨들은 바람을 타고 흩어져 언덕을 가득 채우며 날아가서 언덕과 나무 밑, 그리고 온 세상에 노란 민들레를 틔우기 때문이죠. 이 모습은 선생님에게서 감화 받은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세상을 찾아 땅 끝까지 퍼져가는 모습과 꼭 닮기도 합니다. 절두산이 가톨릭 성지인 만큼 잘 조성되어있는 15처의 ‘십자가의 길’을 정성을 다해 걸으며 돌아가신 구본형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추모 미사를 마치고 11기 연구원의 장례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4년 전, 입관식에 들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11기 연구원들은 각자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자유를 찾겠노라고. 일상의 루틴 속에서 변화를 찾겠노라고. 정신의 자식, 사람을 남기는 일의 숭엄함에 새로운 눈물이 흘러 넘쳤습니다.
봄바람이 부는 절두산을 내려오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손에 쥐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다룬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시인은 사랑에 빠진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쳐주고, 그 사랑을 이루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새로운 삶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문학의 힘'을 노래합니다. 마치 구본형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인문학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책을 덮으면 봄바람을 따라 시 한편을 쓰고 싶어집니다. 당장에 칠레의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이 소설의 백미는 네루다의 부탁으로 우편배달부인 마리오가 칠레 곳곳의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또한 구본형 선생님께 우편배달부가 그랬던 것처럼 절두산의 바람소리를 녹음해서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작가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시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위트와 따스한 인간미가 넘치는 네루다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한 투쟁의 이야기를 비교적 덤덤하게,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체부 마리오처럼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네루다의 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외우던 작가에게 있어서 그의 우상에게 바치는 위대한 시인 네루다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인 셈입니다.
우체부 마리오는 이야기합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요. 이는 네루다의 시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 즉 한 사람의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시가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삶으로 뛰어든, 이 감동적 장면은 작가가 '시인 네루다'에게 표한 최고의 경의일 것입니다.
언젠가 저도 <네루다의 우편배발부>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처럼 구본형 선생님을 위한 책을 한편 쓸 수 있을까요?
마리오는 네루다를 뒤에서 안고 신들린 눈동자를 손으로 덮어주면서 말했다.
“제발, 죽지 마세요, 선생님.”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