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 조회 수 1995
- 댓글 수 6
- 추천 수 0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언어가 뜻을 온전하게 전할 수 없다.
11기 정승훈
여름휴가가 피크였던 7월말과 8월초, 생각지도 못한 광풍이 몰아쳤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오랜 기간 내가 활동해오고 있는 시민단체다. 그런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사이며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의 아들이 영재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불법, 고액 사교육을 했다는 것이 신문에 났다. 동아일보의 ‘아님말고식’ 추측성 보도였다. 고액은 200~500만원이고, 불법은 10시 이후 새벽 2시까지 수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마지막에 당사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기사를 맺었다.
단체에서 확인한 결과 서천석은 외국에 나가있었고 기자의 여러 번의 전화를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메시지조차 없어 이런 기사가 나간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서천석이 밝힌 내용은 수학을 잘한 아들이 영재학교를 진학하고 싶어 했고 1년 안 되는 기간 동안 사교육을 받은 건 사실이나 평균 80만 원 정도이며 수업은 10시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사직을 사직하고자 한다고 했다. 단체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글을 단체 카페에 올렸다. 말미에 “참고로 우리 단체는 지금껏 사교육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 상황에서 사교육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입시경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효과 없는 과도한 사교육은 자제하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입시 및 교육제도를 바로 잡자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단체입니다.” 라는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다른 신문사에서도 기사화했고 서천석의 답변이나 단체의 해명에도 “실망했다. 상처받았다. 사과하지 않고 변명만 하고 있다. 말장난이다.” 등의 댓글이 넘쳐났다. 언제부터 사자성어가 되었는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표현됐다. 회원들조차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분명 같은 상황에, 같은 글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을 하고 있다. 어떤 회원은 회원들의 서천석이나 단체의 지지조차 비판한다. 이러다 내부에서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그래서인지 [한시미학산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상근하며 일하기도 했고,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있는 단체의 일이라 책을 봐도 글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한 공자의 말이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왔다. 공자는 어떤 일을 겪고 이런 말을 남겼을까. 공자는 자신의 말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음을 힘들어 했었겠구나. 시대적으로 전혀 공감대가 없음에도 괜히 감정이입이 된다.
정치적인 세력이 있어 방해하려는 것인지, 그저 영유아 부모에겐 멘토처럼 여겨졌는데 배신감을 느낀 것인지, 결국 자기 자식은 하면서 다른 이에게 하지 말라고 한 이중성에 ‘그럼 그렇지’ 하는 것인지, 아님 이 모든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내가 그렇다 한들 뭐가 중요하겠는가. 불특정 다수의 서로 다른 생각을 한 가지로 명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설명이나 해명을 하면 할수록 원래의 취지와 진정성에서는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말로도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글로 어찌 뜻을 전할 수 있을까. 언어란 불완전한데 그 언어를 도구로 의사 전달을 하니 오해가 발생하고 시비가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기에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표현을 하느냐가 같은 글의 내용일지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때론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읽혀진다.
글에는 온도가 있어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때론 아프게 다가온다.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혹은, 글쓴이의 마음에 따라 가슴을 후벼 파는 칼이 되기도 하고 아픈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말은 비언어적인 표정과 몸짓을 담고 있기에 그로써 전달되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글은 비언어적인 표현도 배제되어 있기에 더욱 오해하기 쉽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글로 전하는 어려움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평소 나의 글은 따뜻함보다 건조함에 가깝다. 나의 글이 공감이나 위로의 글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칼이 되는 글은 아니기를 바란다.
오지랖이긴 한데 만약 나라면 어떤 글을 썼을까 생각해봤어요.
오해로 성이 잔뜩 나 있는 사람들한테 해명할 수 있는 수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글' 뿐이라고 할 때.
이성적인 해명은 뒤로 돌리고
도입부는 타이르든? 사과하는? 표현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낮은 자세로 엎드려 일단 흥분을 잠재운 후, 오해를 푸는 글.
물론 저더러 써보라면 못쓰겠지만
평소에 그런 글쓰기도 훈련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아닌가, 덤빌 작정을 하고 달려오는 사람들 앞에서 어차피 글은 무력한 건가.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귀를 열게 하는 '해명글'의 모범이 있는지 새삼 궁금.
이 밤에 갑자기 화두가 되었네요. 해명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