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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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원하다. 8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빗소리와 함께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노래한 약명시(藥名詩) 한 편을 소개한다. 더불어 시에 실린 약재 설명도 곁들여 본다.
<夏>
青皮蛙唱薄荷溏,竹叶从中小院凉 (청피와창박하탕,죽엽종중소원량)
村榭绿莲须带露,田园赤灼炙骄阳 (촌사녹연수대로,전원적약약교양)
荫苍树下挥蒲扇,琥珀杯中递酒浆 (음창수하휘포선,호박배종대주장)
栀子笑攀河岸柳,捕蝉衣湿汗汪汪
(치자소반하안류,포선이습한왕왕)
청개구리 연못가 진흙탕에서 개굴, 댓잎은 작은 뜰에서 쏴아.
시골집 초록 연잎 꽃술엔 이슬, 마을가 붉은 작약 뙤약볕 아래 이글.
푸른 그림자 나무 아래 너울대며, 호박잔 속에서 술을 건네네.
치자나무 웃으며 강가 버들에 손 흔들 제, 매미 잡는 옷에는 땀 자국 흠뻑.
(*전문가의 번역이 아니므로 너그러운 양해를 구함)
연못가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 스치는 바람에 댓잎 부대끼는 소리. 초록 연잎에 담긴 이슬 한 방울, 붉게 타는 적작약. 너울대는 나무 그림자는 부채를 부쳐주듯 시원한데, 나무 아래 호박잔에 비친 모습이 술 한 잔 권하는 손짓 같기도 하다. 강 건너까지 퍼지는 진한 치자향기. 땀으로 흠뻑 젖은 매미 잡이의 옷.
'여름'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여름의 소리, 향기, 빛깔이 담겨 뜨거운 여름철 시골의 생활정취를 드러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각 구절마다 박하, 죽엽, 연수, 적약(적작약), 창출, 호박, 치자, 선의 등의 약재명이 들어가 총 8가지 약재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약재가 친근했던 시대, 약재명이라는 제한을 두고 지은 약명시 중 하나다. 여기에서는 8가지 약재 중 죽여, 치자, 선이에 대해 소개해본다.
竹叶从中小院凉(죽엽종중조원량)
‘댓잎은 작은 뜰에서 쏴아.’ 대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댓잎들이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들린다. 후덥지근한 여름을 식혀주는 시원함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대나무의 서늘한 성질을 알고 있었던 조상들은 일찍이 한 여름 밤의 숙면을 위해 죽부인을 끌어 안고 자곤 했다. 대나무의 잎을 ‘죽엽’이라 하고, 대나무의 속껍질을 말린 것을 ‘죽여’라 한다.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죽엽은 위장에 열이 있어 생기는 구토와 소화불량 등에 사용된다. 죽여는 그 시원한 성질로 불면을 다스리는 처방에 쓰이기도 한다. 죽부인의 한약 버전인 셈이다.
불면의 원인은 ‘심비불화’(心脾不和)라 해서 '심장'과 '비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주로 생긴다. 불면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맥은 주로 심장에 화가 많고 비위가 약해서 소화불량, 속쓰림 등의 증상도 함께 보인다. 이러한 심비불화로 인한 불면증에는 주로 ‘귀비탕’ 처방을 쓰는데 귀비탕에는 모려, 연자육, 죽여 등의 약재를 포함한 17가지의 약재가 처방된다. 시에도 등장하는 '죽여'(정확히는 죽엽이나 여기서는 한 범주로 간주)는 화와 열을 식혀 편안한 수면을 유도한다. 이렇듯 불면을 다스리는 약재들은 굴의 껍질(모려), 연꽃의 씨(연자육), 대나무의 속껍질(죽여) 등 모두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다.
栀子笑攀河岸柳(치자소반하안류)
‘치자 나무 웃으며 강가 버들에 손 흔들 제.’ 중국이 원산지인 치자나무는 6~8월에 꽃이 피는 여름 꽃으로 여름을 노래하는 시에 알맞은 등장이라 하겠다. 치자꽃은 그 향이 진하고 좋아 강 건너 버들에게 손 흔든다는 표현에서는 바람을 타고 강 건너까지 퍼진 치자의 여름향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다.
약을 달이던 어느 날 약재의 빛깔이 고와 눈이 즐거운 때가 있었다. 치자(梔子)가 들어간 까닭이었다. ‘치잣물 들인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치자는 그 빛깔이 고와 예로부터 천연 염색의 용도로도 쓰였다. 약재로 쓰이는 것은 치자열매인데 붉은 빛깔을 띠고 심장의 형상을 하고 있다. 치자는 특히 홧병을 치료하는데 효과를 보인다. 한방에서 홧병은 말 그대로 가슴에 화가 많은 것, 심열(心熱, 심장에 열이 많다)이 있는 경우로 본다. 이에 더하여 ‘담음’(순환이 안될 때 쌓이는 찌꺼기)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슴에 화가 많아 그렇잖아도 답답한데 이에 더해 순환이 안되고 막혀 있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과민해진다. 심장에 火가 쌓이니 어떻게든 분출할 출구가 필요하게 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산을 상상해보면 되겠다. 이런 경우 처방의 핵심은 심장의 열을 식히고 속을 시원하게 ‘소통’시켜 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치자는 가슴에 있는 심한 열과 위(胃) 속에 있는 열, 그리고 속이 답답한 것을 낫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슴과 심장이 뜨거운 여름처럼 火의 기운이 가득할 때, 치자는 여름철 부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그 열을 식혀준다.
捕蝉衣湿汗汪汪 (포선이습한왕왕)
‘매미 잡는 옷에는 땀 자국 흠뻑.’ 에어컨 바람으로 건강한 땀 한 방울 흘리기 어려운 현대의 여름이다. 여름철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를 잡는 사람, 그의 땀으로 흠뻑 젖은 옷. 그 옛날 시골 여름날의 풍경이 매미소리와 함께 다가온다. 용케 잡히지 않고 여름 한 철 목청껏 울어댄 매미는 나무에 허물을 남겨두고 떠난다. ‘매미 잡는 옷’으로 풀이했으나 선의(蟬衣)는 바로 매미의 허물을 말하며 한약재로 쓰인다. 선퇴(蟬退)라고도 한다.
언젠가 우연히 약장을 열어보다 매미 허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 식겁하여 다시 닫아버린 적이 있다. 선의는 열을 제거하고 해독하는 효과가 있어 피부의 두드러기, 간지러움 등의 여러 피부질환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다른 약재와 함께 사용 시 항알러지 작용이 생겨 그로 인한 두드러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여름을 노래하는 시 한 편에서 뜨거움(火)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환과 그의 치유 약재 등을 살펴 보았다.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약재들은 각자의 성질과 특성에 맞는 역할을 다해 질환을 치료한다. 조상들은 일상에서 접하는 약재들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민간요법에 잘 활용하였다. 언어를 매만지는 시인도 약재명에 익숙하여 이처럼 詩作에 활용하였다. 약재명이 시어에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치유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지금보다는 일상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여름을 노래한 약명시 한 편을 통해 대나무, 치자꽃, 매미에서 자연 속 치유의 힘을 떠올려보자. 그렇게 무심코 지나친 동식물이 시를 통해 우리 몸의 치유자로 다가온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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