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44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 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들을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 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 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 치며 웃기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2006년 가을호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44 | [시인은 말한다]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 정야 | 2020.09.21 | 2353 |
243 |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 정야 | 2021.11.22 | 2312 |
242 |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 정야 | 2019.07.05 | 2220 |
241 | [시인은 말한다]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 정야 | 2020.10.05 | 1997 |
240 | [시인은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 정야 | 2019.04.08 | 1961 |
239 | [시인은 말한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 정야 | 2019.09.23 | 1886 |
238 | [시인은 말한다] 은는이가 / 정끝별 | 정야 | 2021.09.06 | 1880 |
237 |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 정야 | 2020.11.02 | 1858 |
236 | [시인은 말한다] 그대에게 물 한잔 / 박철 | 정야 | 2020.11.16 | 1853 |
235 | [시인은 말한다] 픔 / 김은지 | 정야 | 2020.12.28 | 1825 |
234 | [리멤버 구사부] 마흔이 저물 때쯤의 추석이면 | 정야 | 2020.09.28 | 1820 |
233 | [시인은 말한다] 영원 / 백은선 | 정야 | 2021.07.12 | 1811 |
232 | [시인은 말한다] 벽 / 정호승 | 정야 | 2019.02.11 | 1800 |
231 | [시인은 말한다] 함께 있다는 것 / 법정 | 정야 | 2021.08.09 | 1797 |
230 | [시인은 말한다] 봄밤 / 김수영 | 정야 | 2019.05.20 | 1779 |
229 |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 정야 | 2021.12.13 | 1761 |
228 |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 정야 | 2022.01.03 | 1760 |
227 |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 정야 | 2021.12.13 | 1748 |
226 |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 정야 | 2021.12.20 | 1744 |
225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17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