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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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않을 편지를 써요.
마음이 아파서 자꾸만 가슴이 저려요. 소설처럼 거짓말처럼 쓰려다가도 보태고 빼려다가도 그래도 거의가 사실이어서 자꾸 그대 모습이 떠올라요. 내게 사라지지 않는 사무침을 거센 파도처럼 다 풀어버리려고 했는데 편하지 않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쓰지 못하나 봐요.
봄을 알리는 비가와요. 가늘게 종일 내렸다죠? 나는 아주 늦게 슈퍼에 다녀오느라 잠깐 동안 비를 맞았어요. 비오는 날 좋아했죠? 아주 시원스레 죽죽 내리는 날 말에요.
산다는 게 글을 써야하는 건지, 말을 해야 하는 건지가 잠시 심드렁해지네요. 부질없게 느껴져서요.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나 봐요. 빨리 잊어버릴 걸. 아니 너무 늦게 알게 된 거죠. 좀 더 일찍 써야 했는데. 매일 천 번도 더 죽고 싶고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간절했는데 말에요.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고 처박아두어서 요괴가 되어버린 우스꽝스런 보따리.
내가 실패했어도 괜찮아요.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했어도 괜찮아요. 우리 행복하지 않았어도 괜찮아요. 그렇더라도 최선이었다는 것 알아요. 그것이면 됐어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대도 나에 대해 다 쓰세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쓰세요.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세요.
그대가 힘든 것 다 짊어져서 나 편해요.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내 줘서 그대 따라 억지로 끌려가며 살지 않고 그 점 힘들지 않게 살아요. 자유로워요. 그대도 그러길 바랄게요. 때로 욕하고 못되게 굴어도 진실은 정제되어 영롱하게 남을 거예요. 내 삶의 소중한 자원과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의 맑은 깨달음과 같은 깊고 참신한 명상冥想으로.
2008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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