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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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Sai Gon)에 관하여
호찌민에 사는 사람이 물었다. “사이공이 어딘지 아세요?” 호찌민은 알아도 사이공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호찌민(Ho Chi Minh)과 사이공(Sai Gon)은 같은 도시 다른 이름이다. 길게 늘어선 베트남 땅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가 지금의 호찌민, 과거의 사이공이다. 사이공은 원래 베트남 땅이 아니었다. 오래전 사이공은 캄보디아 항구 도시였다. 종족간 내전을 피해 내려온 베트남 난민들에게 캄보디아는 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주민의 수가 증가하면서 캄보디아계 크메르인들을 압도했고 마침 세력이 약해진 캄보디아는 이 땅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이공은 베트남에 편입됐다.
베트남은 한때 프랑스 식민 지배하에 있었다. 1858년 라오스를 비롯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부분을 복속시킨다. 1954년까지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식민지배를 받으며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이 때문에 ‘동아시아의 진주’,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나뉘게 되었을 때 사이공은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남과 북이 하나의 베트남으로 통일된 이후 사이공은 수도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게 되고 도시 이름은 호찌민이라는 통일 영웅의 이름으로 갈아 입는다. (박지훈 저, ‘몽선생의 서공잡기 西貢雜記’를 참고함)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얇게 알아본다, 사이공. 누군가 ‘자기가 머무는 땅을 축복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땅에 머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축복해야 살 수 있다는 자격의 문제라면 나는 어디서도 머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머무는 땅’을 축복하는 일과 ‘자기가 머무는’ 곳의 징그러운 삶이 별개의 문제라면 나는 어디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지구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내가 저주하는 땅은 이 세상에 없지만, 어지러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부자유한 월급쟁이로서는 살 자격을 부여 받더라도 그곳이 어디든 축복해줄 용의는 없다. 스스로도 참 어렵게 산다 싶다.
한국에서, 그 땅의 축복은커녕 싫었던 적도 많았는데,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머물 자격’을 물어 결국 해외로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여기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낯선 땅에 살고 보니 한국을 축복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많이 들게 됐다. 향수병이다. 그러나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 40대와 50대 사망원인 2위를 차지했다는 오늘 자 통계청 발표는 나에게 향수병 백신을 놓는다. 자살을 택한 그들의 심정을 가늠하고 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고, 사이공 도시의 내력을 알아보는 일을 내려 놓았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어지러울 때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하고 죽는다’는 수구초심 首丘初心, 그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간다. 사이공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던 그냥 호모 사피엔스로 지구에 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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