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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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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5일 15시 47분 등록

사이공(Sai Gon)에 관하여

 

호찌민에 사는 사람이 물었다. “사이공이 어딘지 아세요?” 호찌민은 알아도 사이공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호찌민(Ho Chi Minh)과 사이공(Sai Gon)은 같은 도시 다른 이름이다. 길게 늘어선 베트남 땅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가 지금의 호찌민, 과거의 사이공이다. 사이공은 원래 베트남 땅이 아니었다. 오래전 사이공은 캄보디아 항구 도시였다. 종족간 내전을 피해 내려온 베트남 난민들에게 캄보디아는 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주민의 수가 증가하면서 캄보디아계 크메르인들을 압도했고 마침 세력이 약해진 캄보디아는 이 땅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이공은 베트남에 편입됐다.

 

베트남은 한때 프랑스 식민 지배하에 있었다. 1858년 라오스를 비롯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부분을 복속시킨다. 1954년까지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식민지배를 받으며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이 때문에 동아시아의 진주’,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나뉘게 되었을 때 사이공은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남과 북이 하나의 베트남으로 통일된 이후 사이공은 수도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게 되고 도시 이름은 호찌민이라는 통일 영웅의 이름으로 갈아 입는다. (박지훈 저, ‘몽선생의 서공잡기 西貢雜記를 참고함)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얇게 알아본다, 사이공.  누군가 자기가 머무는 땅을 축복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땅에 머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축복해야 살 수 있다는 자격의 문제라면 나는 어디서도 머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머무는 땅을 축복하는 일과 자기가 머무는곳의 징그러운 삶이 별개의 문제라면 나는 어디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지구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내가 저주하는 땅은 이 세상에 없지만, 어지러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부자유한 월급쟁이로서는 살 자격을 부여 받더라도 그곳이 어디든 축복해줄 용의는 없다. 스스로도 참 어렵게 산다 싶다.

 

한국에서, 그 땅의 축복은커녕 싫었던 적도 많았는데,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머물 자격을 물어 결국 해외로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여기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낯선 땅에 살고 보니 한국을 축복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많이 들게 됐다. 향수병이다. 그러나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 40대와 50대 사망원인 2위를 차지했다는 오늘 자 통계청 발표는 나에게 향수병 백신을 놓는다. 자살을 택한 그들의 심정을 가늠하고 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고, 사이공 도시의 내력을 알아보는 일을 내려 놓았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어지러울 때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하고 죽는다는 수구초심 首丘初心, 그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간다. 사이공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던 그냥 호모 사피엔스로 지구에 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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