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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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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일 06시 54분 등록

앞으로 계속 쓰게 될 칼럼이 연구원 누구에게나 압박일 것이다. 나 역시 나를 대변할 어떤 주제, 그것을 하나 정해서 일관된 칼럼을 쓰고 싶지만 아직 명확한 주제를 잡지 못해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제를 모색하는 이 과정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주제는 아직 못 정했다 해도 글의 형식은 자유롭게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연구원 과정은 실험과 모색의 시간이니까, 그 어떤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인터뷰를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시간과 공간, 비용의 문제로 직접 취재가 어려울 경우는 메일로라도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다. 완벽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오히려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어떤 방향으로 튀게될지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진행되어 가든 무심히 따라가 볼 작정이다. 완벽한 세팅 안에서 기대된 답을 만들어가는 것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실수와 조정을 거쳐 제 길을 찾아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인터뷰는 이전에 잡지 만들며 많이 해 보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하는 일’에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건 참지 않고 물어야 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니, 인터뷰가 내게는 맞는 일인 게 분명하다. 이번 주는 먼저 얼마 전에 내가 만났던 한 인물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그와 정식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다. 잠깐 스치듯 만났고, 몇 마디 질문을 주고 받은 것이 전부지만 그를 보며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그를 한 번 더 만나러 갈 것이다. 이번 글은 그와의 본격적인 인터뷰 서언쯤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자, 그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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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워(Heat)>란 책이 있다. 뉴욕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밥보(Babbo)’의 주방 뒷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요리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더 목적인 책이다. 그곳에 보면 마리오 바탈리라는 유명한 요리사가 나온다. 그는 밥보의 수석 셰프다. 그는 27세에 캘리포니아 포시즌즈 호텔 수석 쉐프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젊은 요리사였지만 어느날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3년간 이탈리아 시골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배운다. 얼마 전, 압구정의 르 삐에(Le Pied)라는 레스토랑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오너 겸 세프, 권수영씨는 마리오 바탈리를 생각나게 했다.

그곳은 와인 모임 때문에 갔다. 비정기적으로 모이는 우리들은 그날, 미국 와인을 주제로 마셔보기로 했다. 와인은 음식과의 마리아주도 중요한데, 그곳은 음식이 특별했다. 그곳은 무엇보다도 코키지 차지가 없었다. 와인을 가져가 마시면 보통 분위기가 있는 음식점은 병당 1만 5천원에서 많게는 5만원까지 코키지 차지를 물린다. 그것은 와인 잔과 서비스를 제공받고, 또 와인으로 그곳의 매상을 올려주지 못하는 데 대한 댓가이다. 문을 연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그토록 입소문을 타고 번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모임에 일찍 나갔다. 마침 그 근처에서 일을 보게 되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끝났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직원(그분이 사장이자 셰프였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책을 읽으며 기다리겠노라고. 그는 얼굴이 맑고 겸손해보였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먼저 한 잔 드시는 게 어떠세요.’
‘나야 좋죠.’
그는 이내 커피를 손수 들고 나타났다. 아직 식당은 한산했다. 순간, 식당에 대한 내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나는 읽으려던 책을 덮고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사장님, 저랑 잠깐만 데이트를 하시죠?’
그렇게 우리는 짧은 데이트를 했다.

그와의 짧은 대화와 르삐에 관한 인터넷 정보를 종합해보면 그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대학교 때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어찌어찌해서 아예 그곳에 정착을 했고 12년 동안 프랑스 지방의 소타운들을 돌며 지방 음식 레서피를 손수 모으고 배웠다. 요리를 좋아하는 자신 안의 ‘바탕’을 발견하고 그것을 평생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었으니 그는 행운아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 ‘르 삐에’는 불어로 ‘발’이라는 뜻이다. 속어로는 요리가 아주 맛있을 때 쓰이는 감탄사이기도 하다.(‘C’est Le Pied(최고야)!’) 이 이름에는 ‘최고의 블란서 돼지족(발) 요리집’ 이라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레스토랑 간판에는 귀여운 돼지 가족 3마리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고, 그 밑에 ‘시골음식(Cuisine Campagnarde)이라고 써있다.

이곳은 노르망디식 돼지족요리(‘피에 드 꾸숑’ : 사과, 오렌지로 재운 뒤 꿀을 발라 구운 것. 원래는 껍질만 먹는 음식이지만 한국사람들은 살을 좋아해 살이 있는 족을 사용한다고.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다)와 뚤루즈식 돼지족요리(뚤루즈식 족요리는 족발을 삶아서 껍질과 살을 분리한 뒤 양파, 마늘, 머스터드 등으로 감싼다. 뚤루즈는 마늘이 유명해 거의 모든 요리에 마늘이 들어간다고)가 유명하지만 주인장의 내공이 들어간 프랑스 시골의 여러요리들이 메뉴에 들어 있다. 예컨대 병아리콩, 소시지, 닭고기 등을 넣고 끓인 ‘까슐레’(내용물을 어느 정도 먹은 뒤에는 우리네 조밥과 비슷한 ‘쿠스쿠스’를 비벼서 먹는다), 오리 자체의 기름을 이용하여 전통적으로 만든 ‘오리 콩피’, 프랑스 오픈 샌드위치 ‘탁틴’, 알자스식 훈제 요리인 ‘슈크르트’, 프로방스산 진한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해물요리 ‘어부의 스튜’, 닭고기를 와인으로 조려낸 ‘꼬꼬뱅’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와인을 10병 이상 따는 동안, 그 만큼의 안주를 골고루 시켰다. 고급 요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집 음식들은 빛난다. 수수하지만 정성과 시간을 충분히 들인 음식들이다.

그가 프랑스 시골 요리를 어느 요리 학원에서 배웠다면 아마 이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먼저 성신여대 앞에 ‘마미 인 더 키친’을 내서 빠른 시간 안에 명성을 확보했고 그에 힘입어 이곳에 식당을 냈다. 그리고 다음 달 분당점을 오픈한다고 한다.

‘뚤루즈’란 음식에는 스토리가 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할머니들로부터 요리를 배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인심이 야박해서인지 레시피를 잘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하세요.’

고생하면서 배운 때문인지 요리마다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그 이야길 가능한 한 많이 듣고 싶다.

아, 이 집은 확실한 블루 오션이다. 사람들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그 음식들이다. 이 곳의 음식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유명 호텔 출신 셰프의 정교한 음식이 아니라 프랑스 시골 맛을 옮겨놓은 음식들, 그런 음식에는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맛을 통해 딸려 나오는 기억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 음식을 잊지 못하는지 모른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선천적인 비즈니스맨이다. 그러나 그가 12년을 프랑스 시골 할머니들에게 김치를 담가주며 배워온 레서피라면, 그는 분명히 그 레서피에 자손들을 맛있게 먹이고 싶어하던 할머니들의 그 정성과 사랑까지 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유러피안 레스토랑들의 그 어느 셰프보다 그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마리오 바탈리 역시 요리 이전에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정신을 깨우치고자 노력한 훌륭한 요리사였다. 꼬르동 블루 같은 유명 요리학교를 나오진 않았지만 그들이 재현하는 맛은 그 어느 수료증보다 빛나고 아름답다.

아, 이 식당에서는 영화 ‘라따투이’에 나왔던 그 음식, ‘라따투이’도 맛볼 수 있다. 기억하는가. <라따뚜이>의 주인공은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생쥐 ‘레미’이고, 음식 ‘라따뚜이’는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혹독한 요리 비평가 안톤 이고의 테이블에 오른 음식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안톤 이고는 레미가 요리해낸, 정말 보잘 것 없는 시골음식인 ‘라따뚜이’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자신이 감동받은 요리를 만든 이가 바로 생쥐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구스토 생전의 모토인 Anyone can cook! 이라는 말을 기억해 낸 안톤 이고의 결론은 바로 이 것이다.
"Everyone can not become a Great artist, but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세상 사람 모두가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는 없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세상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는 것.

요리도 이 집 주인장처럼 하면 예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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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 압구정동 씨네시티 골목으로 들어가서 크라제버거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르 삐에 주황색 간판이 바로 보인다. 전화는 02)51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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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2 11:04:24 *.84.240.105
우왕~ 맛있겠다.

어쩜, 저도 인터뷰를 한 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찌찌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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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2 12:39:10 *.244.220.254
제게 여동생이 떠오르는군요.
그녀는 주로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로 일하고 있답니다.
제 여동생은 여행과 일(work)이 함께 가더군요. 일 = 놀이, 놀이 =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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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6.03 14:12:12 *.97.37.242
사진보니 맛있어 보이네요.
그치만 족발 하면 모니모니 해도 장충동 할매족발이죠.
새우젓에 콕 찍고 김치에 싸서 마늘하나, 고추 한조각 넣고 쌈장을 위에 듬뿍 바르고 입안에 쏙 넣어서 씹으면 입안에 퍼지는 그 맛!! 느낌!
거기다가 보쌈을 하나 곁들이면 금상 첨화고... 쩝 쩝, 먹고잡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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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6.03 16:06:01 *.122.143.151

환상적인 리포팅이군여~!!

실제 전문 리포터들이 쓰는 것보다 더 좋은걸여~!!

한수기누나, 솔직히 말해 바바..

이 글 쓰고 얼마 받기로 계약한거얌? 아님 VIP 대접 받기루?

궁금,궁금 마구마구 궁금해진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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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04 11:16:02 *.248.75.18
그러게, 괜찮은 글들을 좀 써서, 섭외할 때 기본 자료로 쓰고..
그러면 공짜밥 먹으며 취재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공짜밥을 먹으면
글이 굽을까봐 그건 생각해봐야겠는 걸.
조중동 음식기자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자부심을 가지고 쓰라고 한다면? 우스운 일일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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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5 23:09:12 *.36.210.11
한국 전통 시골 밥상 차림과 테이블 세팅에 관하여 한희주님께서 대단한 솜씨와 일가견이 있으신데 언제 둘이 만나면 서로에게 뻑 가 서로에게 대단히 멋진 작품의 탄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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