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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일 09시 12분 등록
나이지리아를 떠나며

나이지리아에 온지 5주가 지났다. 한 4주가 지나면서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4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동그란 창문 밖을 살핀다. 오늘 날씨가 어떨지 궁금해서다. 요즘 들어 비가 자주 온다. 이곳에서는 멀리서 비가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틈엔가 그 비는 내가 서있는 머리 위를 뒤덮는다. 정말 빠르다. 그러면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겨야 한다. 당연히 작업은 할 수 없게 된다. 며칠 동안 이놈에 비 때문에 작업 진도는 제자리 걸음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예상은 또 빗나갔다. 이놈은 참 질긴 놈이다. 이제 고개를 쑥일 때도 되었는데 끝내 버티고 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 방법은 쓰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모든 작업 준비를 끝내고 우린 잠자리에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창밖은 심상치 않았다. 먼동이 트기 직전의 빛깔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소나기가 쏟아지기 직적의 그 어두컴컴한 하늘이 나를 맞아줬다.

한국에 나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번 주에는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 해둔 터라 그 하늘이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오늘(5/28일)은 비가와도 작업을 강행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 작업 또한 며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체조가 끝나고 작업허가서를 받아 든 그 틈을 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구름은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바람에 묻어나는 냄새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작업을 중단할 수 없었다. 오늘은 어쨌든 실마리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과장님과 나는 사다리를 올랐다. 작업 준비를 다 마치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나중에 합류한 손대리가 빨리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전등에 불도 꺼졌다. 이곳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가 고장 났단다. 비바람은 각오를 하고 올라왔다. 그러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그라인더를 쓸 수가 없다. 공압 그라인더를 작동하는 콤푸레샤(공기압축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린 어쩔 수 없이 올라간 사다리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비를 피해있었다. 발전기가 다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이곳 관계자에게 발전기가 살아나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의 말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은 다 지나야 한단다. 이런~~~ 된장........ 그러나 우린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혹시 발전기가 빨리 살아날지도 모를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이다. 몇 분이 지났을까. 초조한 마음에 시계바늘의 초침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반장님께 발전기가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어봤다. 그 반장님 왈~~~ “어 발전기 돌아가는 것 같은데....... 밖에 소리 안 들려요” 헉~~ 우린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길로 다시 문제의 기계와의 한판 승부를 벌이러 발을 옮겼다.

그 큰 FPSO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 비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나보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빗방울의 내리는 각도를 보면 그놈의 세기를 대략 알 수 있다. 빗방울이 거의 수평으로 내리고 있으니 센 놈임에 틀림없다. 직접 공구를 들고 작업하는 김과장님께 최대한 비가 덜 떨어지도록 위층에 비닐이라도 쳐달라고 손대리에게 부탁하고 나는 김과장님의 작업을 보조했다. 작업방법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꽤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크레인에 매달려야 한다. 작업할 수 있는 위치가 좋지 않아서 손을 제대로 대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팔을 꼬아가며 그라인더를 크레인 휠로 접근시켜 갈아야 했다. 우리가 택한 방법은 크레인의 휠을 갈아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법 말고는 크레인을 때 내서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크레인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설치하는 것 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다. 그런 방법을 쓰기 위해 나이지리아에 온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에서 크레인을 정상 구동시켜야 한다.

우린 이 전에 빔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전보다 크레인은 더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좌우의 평형은 최대한 맞췄지만 용접으로 인한 위아래의 변형이 발생한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었는데 우리가 이놈을 너무 쉽게 본 것 이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제대로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았던 것이다. 낙담이 심했다. 분명히 가능하리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후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날씨마저 우리를 가혹한 환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세찬 비바람에 입술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김과장님은 계속해서 그라인더를 멈추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한쪽 새들의 작업을 어느 정도 끝냈다고 생각했을 때,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작업을 멈추고 지정된 곳으로 집합해야한다. 비상 사이렌은 응급상황을 대비하는 훈련이 대부분인데 일주일에 몇 번 울린다. 하필이면 이렇게 심각할 때 비상 훈련을 하다니.......

이렇게 오전 시간을 끝마쳤다. 우리는 오후 시간에 반대쪽 새들로 올랐다. 다시 휠을 갈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었다. 휠을 갈아 수평을 강제로 맞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작업을 시작한지 몇 시간이 더 흘렀다. 김과장님은 한번 움직여 보자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2미터를 움직일 수 있을까? 나는 좀더 갈아보자고 이야기했다. 다시 한 시간을 더 작업했다. 그동안 작업한 효과가 있는지 시운전을 남겨두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지 5주일이 넘게 흐른 터였고, 생각했던 것 보다 문제가 더 심각했기 때문에 마지막 희망마저 낙담할 수 없었다. 크레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의 구간 앞에 왔을 때 나는 정말 긴장했었다. 버튼을 누르고 있던 내 손가락은 그 순간을 지속하지 못하고 버튼에서 손을 때고 말았다. 다시 한숨을 들이쉬고는 이내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 구간을 크레인은 거짓말처럼 벗어났다. 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뿐이었다. 갈 때는 문제없던 크레인이 오면서 다시 헛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 문제의 원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 겪고 있는 터다.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김과장님은 크레인 위에 타고 있어서 내려오지도 못했다. 지난번처럼 크레인을 강제로 탈출 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그라인더로 문제의 구간을 좀더 수정했다.

한 시간을 더 작업하고는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문제의 구간으로 크레인을 이동했다. 그때는 멈추지 않고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순간 거짓말처럼 문제의 구간을 크레인이 움직였다. 갈 때 문제가 없었고 올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걱정을 많이 했긴 했었나 보다. 순간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 방법마저 소용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이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8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마무리 작업만 남았다. 김과장님과 나는 서로 바라보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이제 나이지리아를 떠날 일정을 협의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그보다 우리 기계를 이용해서 그동안 지체되었던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짐을 조금은 풀었다.

나이지리아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우리의 룸메이트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진영철.......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와의 만남은 사뭇 까칠했다. 낯선 옵쇼어에 처음 도착해서 숙소를 배정 받았다. 우리 숙소는 6인실이었는데 그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족히 두 세 명은 쓰고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어리둥절하게 방에 짐을 다 풀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숙소에서 기거하는 듯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이곳에 배치 받았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사업부 사무실로 가서 왜 이곳에 사람을 배치했냐며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우리도 그곳에 있기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에서 이틀을 보냈다. 사업부에도 다른 방을 알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업부에서는 지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으니 잘 이야기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는 짐을 다시 그 방으로 옮겼다.

사람과의 관계는 첫인상만으로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그 후 그도 우리에게 한 말이 내심 신경이 쓰였는지 그전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서로가 낯설었던 상황에서의 일이어서 우리는 그 뒤 그 일을 잊었다. 그렇게 함께 묻어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와 며칠을 있으면서 나는 그가 이곳에서 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 7시가 되면 이곳은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쉰다. 그런데 그는 저녁을 먹고 이내 땀에 쩔은 작업복을 갈아입고는 다시 숙소를 나가는 날이 많았다. 그는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여러 명의 몫을 혼자 묵묵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있을 때 그는 15시간 이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옵쇼어 생활이 낯선 우리에게 그 만의 방법으로 많은 신경을 써줬다. 함께 하기 시작한 며칠 후 소주가 생각나지 않느냐며 사실 이곳에서는 금지되어 귀하디 귀한 소주를 우리에게 선 듯 내주었다. 한잔하자며 건내 온 그의 한마디로 그동안의 속 좁은 내 편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날아갔다.

오늘(6/1일) 그가 귀국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며 그동안 모아온 소주를 다시 풀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소주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떠날 룸메이트를 위해 며칠 전부터 한 병씩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며 모아 두고 있었던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소주가 마시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함께 지낸 그 정을 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제고 거제도에 가서 그와 단 둘이 쏘주 잔을 기울일 날을 기대해 본다.

이제 3일 후면 이곳 나이지리아를 떠난다. 문제가 되었던 기계가 정상 작동하게 되어 기쁘고 정말 좋은 룸메이트를 만난 행운에 감사한다. 그리고 안락한 가정을 떠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인류의 변화 발전은 한사람의 큰 걸음 보다 열 사람의 작은 걸음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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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웅
2008.06.02 09:23:05 *.117.4.35
그동안 머나먼 나이지리아에로 뜬금없이 날아온 홍스를 응원해 주신 동료 연구원님들과 변경연 식구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곳 날짜로 6월 4일수요일 아침 옵쇼어를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문제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귀국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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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6.02 09:42:28 *.161.251.192
쇼생크 탈출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홍스님 탈출을 축하합니다.
무사귀환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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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12:23:22 *.41.62.236
그냥 장하다는 말이 떠 오른다, 마치 금메달을 따 면류관을 쓰고 돌아 오는 듯, 공항나가 형, 누이들이 좀 흔들어 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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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2 12:44:34 *.244.220.254
영웅(?)의 화려한 귀환(歸還)을 축하합니다~
올 때 나이지리아산 '코끼리' 한 마리만 사다 줘요~ ^^
(얼마전 '술취한 코기리 길들이기'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걸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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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6.03 15:04:09 *.97.37.242
홍스, 고생 많았네.
다음 오프 모임 때는 홍스 귀국환영회를 겸해서
소주 파티를 해야겠군. 성공적인 귀환 축하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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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2008.06.03 21:45:12 *.234.78.45
형..드뎌 오는구나..우리(몽치스)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어?
5월중순까진 까페에 글도 남기고해서 걱정을 덜했는데 그 후 온다고 했던 5월26일이 지나고부턴 내가 형 핸드폰으로 몇번 전화했는데 계속 꺼져있더라구...피부가 검게 그을렸겠는걸? 살도 많이 빠져있을것 같고..한국에 돌아와서도 무지 바쁘겠다..사부님과 연구원분들한테도 인사드려야하고 회사와 집과 친척분들..그리고 친구들에게 다 인사하고 그래도 조금 시간이 남거든 우리한테도 시간을 좀 나눠줘..건강히 그리고 무사히 나이지리아를 떠나 고국으로 오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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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6.03 21:57:06 *.117.4.35
은미님 고마워요... 알고보니 우린 동갑일세그려..친구하자고^)^
앤누이 항상 신경써줘 너무 고마워요.. 도착하거들랑 연락드릴께요.
거암 내 커다란 물고기 보여줄께..ㅋㅋ
정산형님 감사합니다. 삼겹살에 소주가 그립습니다..^^
범용아 이곳 인터넷이 점점 문제가 생기더니 그날 이후 카페에는 접속이 안되었다. 내 도착하자마자 전화하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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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5 15:09:30 *.36.210.11
멀리 나이지리아까지 뽀얀 볼살과 탱탱한 엉덩이로 날아가 삶의 현장 인간 드라마를 가슴에 찍고 돌아오며 글까지 남기니 이게 왠 복이야? 사부님께서는 어찌 알고 예상에도 각본에도 없는 연출을 보시며 흐뭇해 하실까? 신이 내리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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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15:35:27 *.64.21.2
엉덩이 탱탱한건 어떻게 알았지???
홍스가 나한테만 보여준게 아니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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