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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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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2일 09시 38분 등록

현정, 그대가 유모차 끄는 아버지들을 보았다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지금 내가 와 있어.
그대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걸 나도 그대로 느껴.
오늘 새로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거기가 세계합창심포지엄의 메인 베뉴거든)로 가는 66번 버스를 기다리며 크리스찬스하벤이라는 광장에 서 있었는데
내가 동양여자라서 그런지 거지들이 나에게 자꾸만 다가오더군,
거지 아저씨들 보니까 버스 정류장 옆에 자리를 틀고 앉아서 주어온 담배꽁초를 나눠피고 있더라고...
모든 게 너무 선진화되어있고, 사회보장이 그 어느 곳보다 잘되어있는 이 나라에서 거지를 떼로 보는 기분이 좀 그렇더군.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자전거 인파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아빠들을 보았는데 10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다양한 유모차와 자전거를 보았는지 몰라, 무척 실용적이더군.
좁은 길에 자전거 도로까지 기능적으로 만들어둔 덕에 차가 붐부지 않아서 좋고, 그것말고도 얼마나 세심하게 사람들 생활을 배려한 것이 많은 지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크더군..
나는 오늘 2개의 워크샵과 3개의 콘서트를 보고 들어와서
오랜만에 핫배스를 하고(그라츠 호텔에는 샤워부스만 있고 배스텁이 없었거든), 집에 통화하고, 이제 자려고 하는 중이야.
내일 2개 콘서트와, 미술관 하나, 성 하나를 돌고 모래는 이제 집에 가는 비행기를 탈거야. 그동안 나를 위한 시간도 없이 너무 바빠서 어제 여기 온 이후로 좀 나를 돌보고 있는 중인데,
심포지엄 프로그램이 워낙 다양해서 조금 욕심을 냈더니
어제는 밤새 기침하느라 다시 잠을 못잤어.
오늘은 비가 간간히 내리는데다가, 바람까지 많이 불어서 북유럽에 와있다는 걸 완전 실감하게 해주더군. 덕분에 많이 떨었어. 기침이 더 악화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글로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시간과 함께 생각들이 다 흘러가 버릴까봐 너무 안타까워.
오늘 본 합창 콘서트들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그것데 대해서도 쓰고 싶은데..
아쉽군, 여기 오자마자 숙제하려고 랩탑을 펼칠 순 없었어.
경험하려고 온 일들을 미루고 숙제를 하려고 하니 가장 미련한 짓 같더라구..
다시 이런 기회로 여기 올 수 있는 기회는 없는데,
코펜하겐도 노르웨이 가는 길에 이틀 묶은 기억 밖에 없는데...
이번 행사는 멋진 성당들을 포함, 14곳의 각기 다른 연주홀에서 연주회와 워크샵, 마스터클라스가 일주일 내내 펼쳐지거든, 그중에 내게 허용된 건 이틀 반뿐이거든.
그래도 밀린 숙제는 가서 다 할거야. 책은 읽었고 메모도 조금씩 해두었거든.
우리가 놀러갈 뉴질랜드에서도 한 하이스쿨 합창단이 초대되어 왔는데,
오늘 그 콘서트에 가보니 단원 35명 중에 6명이나 한국에서 이민간 아이들이고 단장이라는 친구도 김소미라는 한국 학생인거야. 너무 반가워서 콘서트 끝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
점심은 오랫만에 만난 친구 컨덕터가 한턱 내는 바람에 미슐랭에 소개된
근사한 이태리 레스토랑(Era-Ora)에서
정말 맛있는 화이트 와인과 안티파스티로 노르웨지안 랍스터와,
세콘도로 퀘일(메추리) 요리를 먹었어.
접시 장식이 예술이었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내가 내는 건 아니지만)
돈이 너무 아깝더라고..
그래도 음식이 맛있고, 메뉴에 쉐프이름과 서브하는 웨이터 이름까지 올려놓고 무척 존중받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 사람들이 주머니를 열고도 만족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10시 반에 콘서트장을 나서며 그제서야 어두워지는 유럽의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내가 이렇게 혼자 존재한다는 게 실감이 안나는거야.
티볼리 공원을 지나, 중앙역에서 E라인 기차를 타고 호텔이 있는 오스터포트까지 혼자 오면서, 그리고 배가 고파 야채 샐러드 하나를 호텔에 주문해 먹으면서, 처음으로 쓸쓸하고 충만한 여행 기분을 느껴 보는 날이네...
돌아갈 집이 있어서 여행이 좋은 것이지.
모두 참 보고 싶네.
사진은 오늘 커피 한 잔 마시러 들렀던 니하벤항구야.
안녕
IP *.239.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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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7.22 10:22:12 *.193.194.22
스웨던 사람 레나 마리아의 노래[코펜하겐]이 머릿속에서 흘러
다니기 시작한다.

there's a silence around me...
in this peaceful winter night

유틀란트반도의 깜찍한 엄지공주
덴마크 사람들은 언어의 귀재들..
대개의 사람들이 4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터키왕의 하렘을 지나
화려한 야생 투우립 타일의 방에서
만난 유모차를 밀면서 여행하는
젊은 덴마크부부의
유쾌한 인사.. 짧은 대화속에서
(아가엄마 여자형제중 하나가 필리핀에서
살고 있다면서 동양여자인 내게 아무런
벽을 치지 않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이물없이 말하는 아가엄마의 눈빛과
아이처럼 볼을 발그레하고 빙글 웃던 아가아빠
수국차와 검은깨강정을 건네는 나

무엇보다도 실연에 실연을 겪은 이 겨울나라를 떠나
이태리로 떠나면서 스케치와 연애소설을 쓴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나라..
[즉흥시인]은 연애에 맘 아픈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의 스케치는
건축가의 아이디어 밑그림 같다.

언젠가 실야라인을 타고 항구를 통해서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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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7.22 13:23:35 *.97.37.242
사진 속 도시 참 멋지네요.
구경 잘하고 재미난 공연 마니 보고 맛난 거 마니마니 먹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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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22 14:42:49 *.36.210.11
정산 형아가 순신 형아처럼 메모해 놓은 것을 가지고 글을 잘 쓰고 있더라고. 그대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 좋겠네. 터질 듯한 가슴에 묻어두고 쓰려고 안타까워 해골박 미쳐버리지 말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온몸에 쥐가 날 것 같은 그대의 감흥이 예까지 뻗친다. 잘 먹고 건강히 귀환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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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7.22 15:40:52 *.122.143.151
칼 잘 갈고 계시져?
품고 가신 칼, 잘 다듬어서 꼭 보여주세여.
이야기꾼 당신의 줄줄이 에피소드들을 몽땅 꺼내놓고
이것저것 맛보고 싶네여. 어여 와여~ 몸 건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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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6:02:51 *.41.62.203

먼저 부럽삼. 글구 몸성히 곧 보삼.
그대의 멋진 경험담. 기대만땅, 기대만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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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7.22 16:08:22 *.128.98.93
아~ 또 여행가고 싶게 만드시는구나..우리 한숙 언니가..
또 멀리멀리 달아났다 돌아오고 싶구나...

엉뚱한 제 꿈 중 하나는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 한국 음식점 하는 거,

전 코펜하겐 가본 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그 때 역 뒤에 숙소 예약하고 찾아가다가 이상한 sex shop들이 너무 많아서 도망쳤고..
구질구질한 2층 침대에서 하루밤 묶었고 구질구질해도 아침은 진수 성찬이라 그거 먹다 기차 놓칠 뻔 했고
너무도 쬐만한 인어공주 보고 놀라 자빠지고
기다란 멋진 덴마크 청년들을 보다 침 흘리고
배(ship) 속으로 들어가는 신기한 열차타고 오덴세라는 안데르센 마을도 다녀오고

왜 이런 것들이 기억이 날까요? 쓰다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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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2008.07.22 17:02:12 *.110.86.68
아~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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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8.07.22 18:25:19 *.253.249.72
북~리뷰에 소은의 글이 없어서 이제 그만 두었구나 하고 생각한 나를 어리석게 만드는 사진과 기행문이구먼
85년에 북유럽을 여행한적이 있었는데 자네처럼 멋있는 레스토랑은 구경도 못하고 케스트하우스에서 주는 딱딱한 독일 빵을 씹던 기억밖에 없는데 자넨 최고의 음악과 음식에 좋은 친구들, 돌아오는 길도 영광스런 서울의환객들이 있으니 좀 불평등한 생각이난다.

자네의 글을 못읽으니 섭섭했다.
이제 다시 변화하는 붓끝의 향취를 맛을 수 있겠구먼

뒷날 큰 작가가 되면 멋있는 양식 요리집이 한번 초대해주면 이 늙은이는 아마 까무라질 꺼야... 허 ㅎ ㅎ

잘 다녀 오시게!
한번도 글의 화두를 놓지 않해야 할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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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4 14:53:48 *.244.220.254
빨리 돌아오시길~ 오매불망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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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24 14:59:15 *.117.68.202
강물과 구름, 그사이에 낀듯 서있는 고풍스런 건물과 흔들리는 배
근데 언제 오셔요...^^ 무지무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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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7.26 03:39:56 *.240.107.157
초아선생님, 큰 작가가 안되어도 선생님 맛난 식사는 언제든 사드릴 수 있습니다. 서울 오시면 연락주세요, 맛있는 이태리 식당에서 한 번 모실게요. 제 붓끝이 무디어진 건 사실이예요. 일년의 반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니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나이만큼 시간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더 크게 그것을 느끼시겠지요. 저는 어제 잘 귀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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