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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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기다리는 것. 다른 하나는 줄 서는 것.
맛집도 그래서 가지 않습니다. 제겐 어떤 요리도 기다려서 먹을 만큼의 가치가 없거든요. 뭔가를 기다려서 해야한다면 아예 하지 않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천천히 진득하게 하기보다, 가진 걸 모두 쏟아부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해내는 걸 선호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걸음도 빠르고, 먹는 속도도 빠르고, 자전거도 빨리 타고 뭐든 빨리빨리 합니다. (그런데 말은 느릿느릿하군요) 이처럼 무엇을 하든 '즉시 실행하고, 빠르게 해내는'걸 매우 좋아하다보니, 번아웃이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게는 게으름보다는 조급증에 대한 문제가 더 큽니다. 평상시에는 그래도 이런 성향을 '추진력, 강한 실행력'으로 쓸 수 있는데, 이런 조급증이 평상시보다 더 심해지면 마음이 시뻘겋게 달구어집니다. 이런 때는 뭘 해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아무리해도 충분치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부족해보입니다. 마음이 점점 급해지면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일이 더 안되는 거지요.
문득, 오늘 이런 조급증을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한번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으면 폭주하게 될 테니까요. 사실 이게 꼭 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대한민국은 전세계가 알아주는 '급한' 민족입니다. 조금만 느려져도 속터져 하고 무슨 일이든 일사천리로 해치워버립니다. "빨리 빨리"가 대한민국의 공식 만트라일 정도로 말이죠.
우리는, 저는 대체 왜 이렇게 조급한 걸까요?
일단 제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언제라도 죽겠구나 하는 생각은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열심히 살고 싶어집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덕분에 후회없이 열심히 살기는 했는데, 한편으로 그 생각이 조급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 가능하면 빨리 해내야 한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성취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이런 조급증은 지난 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던 겁니다. 그런데 조급해한다고 일이 더 잘되거나 빨리 되지 않는다는게 또 함정이죠. 실은 작년부터 책을 쓰려고 했는데, 빨리 쓰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더 못쓰게 되더군요. 급한 마음에 집중을 더 하지 못했고요. 서두를 수록 일이 꼬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성급함 때문에 당하는 큰 손해 중 하나는 우습게도 무척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G.K.체스터톤) 는 재미난 말도 있습니다.
조급해한다고 되는 일이 없다면, 조급함이 구름처럼 몰려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래전
본 일본영화 <안경>이 생각납니다. 거기에 기가 막힌 팥빙수를 만들던 주인공 할매가 있었습니다. 그 할매는 모든 일에 집중, 초집중을 하며 정성들여 만들어냅니다. 하루는 빙수에 넣을 팥을 졸이다가, 할매가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 초조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조급해한다고 팥이 더 빨리 끓지 않으니 여유를 가지고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저같은 조급증 환자에게 해준 말같았지요.
이와 비슷하게 <기획의 정석> 의 저자 박신영이 해준 말도 떠오릅니다. 그는 무엇을 하든 절대량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일단 100번은
해본다고 합니다. 절대량을 쌓기 전까지는, 실망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반복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무엇이든 절대량을 쌓아야 질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잘 하기
전에 많이 해보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익숙함은 편함을 낳고 편함은 잘 하기 위한 초석을 닦아줍니다. 중요한 건 그 전까지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게 중요합니다. 이쯤에서 생각해보니, '시간이 한정돼 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제게 '조급함'을 계속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워 질 땐 심호흡이 직빵입니다. 가슴을 부풀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배를 조여 깊게 숨을 내뱉으며 심호흡을 하다보면, 생각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들끓던 생각이 가라앉으면, 시뻘겋게 달구어졌던 마음이 조금씩 차갑게 식어갑니다. 그러면 조급해야할 이유가 사실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죠. 혼자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어떻게든 될 일은 될 것이다. 내게는
여전히 충분한 시간이 있다.' 우주가 내 편이라는 믿음으로 하루씩만 살며 꾸준히 해나간다면….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만 계속 하다보면 반드시 되어 갈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때가 오겠죠. 안오면, 말고요.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뒤로는 가지 않는다.” - 에이브러햄 링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댓글드립니다. 생업으로 바빴다는 뻔한 핑계를 하게 되네요. 고백컨데 저도 '조급증 환자'랍니다. 글리님 같이 "걸음도 빠르고, 먹는 속도도 빠르고..."... 저의 경우엔 여기에 '엄청'이라는 부사까지 추가됩니다. 오늘 아침 읽은 책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지음)에 마침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구나 한 번뿐인, 그것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사는 유한한 존재라 마음이 급해지기 쉽지요. 뭔가 의미있는 것을 빨리 이루어 내야한다는 강박같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네요. 그런데 정작 이룬 것은 없고... 작은 습관부터 고치려해도 쉽지 않더군요. 말씀처럼 여유를 가지고 노력해야죠. 담백한 글 잘 읽었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내용중 "빨리 빨리"는 대한민국의 공식 만트라니까요!"에서 '만트'가 어떤 말인지 궁금합니다.
전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이 제한된 시간 안에 결과를 얻지 못하면 삶이 바뀌는 그런 대표팀( 사실 대표팀은 선수들이 하나의 팀소속이 아니고 시합과 평가전을 통해 일시적으로 구성되어지는 유령팀 같은 거죠) 지도자 생활을 아주 오래 살아서 많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대만에서 총감독으로 국가 대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대표선수들이 내게서 가장 먼저 배운 한국말이 "빨리 빨리 안해 !!"였습니다.
녀석들이 지시한 후 쳐다보면 "빨리빨리 안 해! " 하고 장난치면서 막 도망갔거든요...
지금은 어떻지 모르지만 만만디의 중국문화에서 ( 慢慢地 :천천히) 한국인 지도자 몇몇의 성향은 모두 좀 비슷했지요 !^^
선수들에게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하도록 코치한 지도자들은 A급 지도자로 분류하고 계약과 생활에서의 대우가 달랐습니다. 양궁, 태권도, 그리고 펜싱에서 저, 모두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 지도경력을 가졌죠, 그리고 성향도 ...
그들이 말하는 '만만디' 는 '과유불급' 같은 의미로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알맞게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노력해도 안 될일을 안 되고 매달리지 않아도 적당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느꼈었습니다. 크고 오랜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풍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표현만 다르지 우리도 같은 셈이죠,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 환경이 만든 생존방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죠 , 그들은 때가 되면 하겠다 고 우리는 때가 되게 만들겠다는 거죠 !
왜냐면 저의 견해로는 어떤 일이나 상황이 때가 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식과 경험의 한계 내에서의 판단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경험과 지식의 차이, 그리고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저의 대안은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행동하고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는 기다리는 승부가 아닌 현재의 임계를 넘어 가능성에 도전하는 정면승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다른 한국 분들과 소통이 잘 되기도 했지만 국적을 떠나서 유능한 지도자들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