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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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 <위험> 엘리자베스 아펠
마침내 그 날이 왔습니다. 오늘은 3월 2일입니다. 많은 학교가 오늘 개학을 합니다. 직장인들은 삼일절 하루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바쁘게 출근을 하고 있겠네요. 아직은 추위가 여전하지만, 3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입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웅크렸던 새싹을 밀어 올리는 시기죠.
'시작하다'
설레는 말이죠.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처럼 파릇파릇한 것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봄은 단지 계절의 시작일 뿐입니다. 아침이 하루의 시작이듯이 말이죠. 그런식으로 시간의 차원을 미분하다보면 우리는 항상 시작이라는 시점에 서 있게 됩니다. 이것은 거꾸로 보면 끝이라는 시점에 서있는 것과도 같지요. 그래서 시작이라는 것은 꼭 어떠한 시간적 요소만으로는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계절이 순환하듯 일련의 과정속에서 우리는 단지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언제든 시작은 가능합니다.
아침에 깨어나서 매번 새로운 출발점에 서지만 우리는 거의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살고 잠자리에 듭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지만 그들이 새로 시작하는 방식은 작년에 그랬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익숙한 방식으로 시작하고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니겠지요. 법정스님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여건은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지만, 그 되풀이 속에서 심화가 이루어져야 평범한 삶에 생기가 돈다구요.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정스님 말씀대로 오늘은 오늘로서 새날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입니다. 매순간이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끝이기도 하지요. 이것은 모든 순간 순간이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완전체라는 뜻입니다. 한평생을 사는 것, 1년을 사는 것, 오늘 하루를 사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움직임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키네시스(kinesis)'입니다. 이 움직임의 특징은 시작과 끝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시작한 다음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움직임은 중단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 움직임에서는 완성과 미완성 두가지 상태 이외에 다른 상태는 없습니다. 키네시스에서는 과정이 무의미합니다. 움직이고 있는 그 상태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완성을 바라봅니다. 과정의 불완전함은 완성을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시련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에네르게이아(Energeia)'입니다. 이것은 순간 순간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 움직임이 바로 에네르게이아입니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은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춤을 추고 있는 순간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두 눈을 맞추고 함께 춤을 추는 그 순간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곧 끝이고, 과정은 무수한 시작의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지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 - '에네르게이아'적인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실천은 단순합니다.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하고, 일 할 땐 일하고, 놀 땐 신나게 놀면 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처럼 살면 됩니다. 흥이 나고 즐거우면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막춤을 추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아무나 못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나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것입니다. '에네르게이아'적인 삶의 실천, 이것이 진정한 삶의 시작이 아닐런지요? 여러분은 어떠한 시작의 지점에 서있나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작과 끝을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시작과 끝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것 이상의 시작은 결코 없었고,
지금 있는 것 이상의 젊음이나 늙음도 없었다.
지금 있는 것 이상의 완벽함은 결코 없을 것이며,
지금 있는 것 이상의 천국과 지옥도 없다.
- 월트 휘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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