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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일요일 하루 동안 저는 바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주중에 비하자면 안 바쁜 것 같고,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요. 토요일은 보통 나가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합니다. 병원에 다녀온다든가, 장을 본다든가, 모처럼 친구를 만난다든가 하죠. 이렇게 주중에 바빠서 처리하지 못한 바깥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삼시세끼를 찍습니다. 주중에도 적어도 매일 한 두끼는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이건만, 며칠 굶은 사람처럼 기대에 차서 점심은 모야, 저녁은 뭐 먹을꺼야를 묻는 아들들 앞에 딴 일들은 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죠.
‘아침은 간단하게’라지만 설거지감은 말처럼 먹는 두 아들들을 한 끼만 먹여도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아침 먹은 걸 치우고 대충 씻은 다음 바깥 일을 보고 오면 점심 때를 놓쳐 또 배가 고프다네요. 조금 늦은 점심을 차리고 먹고 또 치우고 나면 밀린 빨래를 돌리고, 폭탄 맞은 듯 먹고 놔둔 과자봉투며 마스크 포장 껍데기에 소파, 의자를 막론하고 앉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벗어 놓은 옷들이 널려 있고 고냥이 털들이 사방을 날아다니는 거실을 대강 치운 후 분리수거도 안 된 쓰레기가 산을 이룬 베란다를 정리하고 저녁을 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손도 못 댄 체 지쳐 철수하는 시각이 대략 9시. 주말이 왜 이리 피곤하지? 싶은 데 딱히 뭘 했나 물어보면…음… 밥 하다 하루 갔다고 밖엔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늦잠에서 깨어난 일요일은 역시 삼시세끼의 반복과 빨래 정리하기, 한 주간 방치된 고냥이 식기며, 변기, 이런 저런 것들을 치우고 또 비우고… 저질체력인 저는 금새 지쳐서 방으로 철수, 잠깐 방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싶은데 어느새 바깥은 어둑어둑. 하루 종일 운동은 커녕 신발 신고 현관문 나설 시간도 없었는데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옵니다… ㅜㅠ; 이렇게 딱히 뭘 했는지 모르게 가버린 주말 때문에 허무가 절정에 달할 때 제가 하는 일은 역시, TV를 켜는 것이지요. 그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아서, 웬만하면 리모컨도 안 눌러요. 아시지요? 기가G니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로 시킵니다.
이리 저리 채널을 둘러봐도 딱히 볼 만한 것이 없을 때, 또는 볼 게 있더라도 느지막한 일요일 저녁의할 일이란 역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것입니다. 주말의 끝을 잡고 허무+우울 모드로 마감을 하기는 너무 억울하니까, 잠시라도 걱정-프리한 망각 모드에 들어가기에 코미디 프로그램 만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인가봐요. 방송사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전량 폐지하고 뜨뜻미지근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황금 같은 주말 48시간을 채워 놓는 와중에서도 일요일 밤에 딱 하나씩은, 그러니까 거대 유람선에 구명정 하나 달랑 비치하듯 남겨놓는 건가 봅니다.
한때 전국민의 일요일 밤을 책임지던 개그콘서트의 20년 전설과 대항마 웃찾사가 허무하게 스러지고 나서 이런 저런 시도들이 있었지만, 제 생각에 이제 남은 ‘순수한’ 코미디물은 tvN의 코미디빅리그 뿐입니다. 아 참, 개승자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최근에 시작했다는데 이건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네요. 분발하겠습니다.^^; 여하튼 저는 이런 본격 코미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합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미국판 SNL(Saturday Night Live)을 찾아보던 시절도 있었어요. 당시엔 열혈 영문학도로서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핑계였으나, 절대로 CNN news 따위를 찾아볼 노력은 하지 않았으니 목적은 오로지 영어로도 웃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말도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냐고요? 무슨 소리. 몸개그는 국경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냥 얼굴 표정만 봐도 웃기는 사람들 있잖아요. 솔직히 하는 말은 20%나 알아들을까 말까 한데도, 빵빵 터졌습니다.
이제는 외국계 기업에서만 20여 년, 영어로 일하는 일상이 어지간히 몸에 배었다고 생각하는 요즘도 사실 코미디에서 쓰이는 영어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요. 간신히 이해는 해도 그 찰나의 속도와 타이밍이 좌우하는 코미디를 언어로 접근하면 즐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위기와 표정과 말투 만으로도 코미디 천재들은 웃기더라고요. 최강 고수의 내공은 언어도 초월하는 법인가 싶어, 늘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래도 어디 내 안방에서 가족들과 다 같이 낄낄댈 수 있는 K-코미디만 하겠습니까. 어디 보자. 제 최애 코미디언은요. 코빅의 캐스트 중에서는 황제성과 양세찬과 양세형과 이진수, 이용진입니다. 이전에는 강유미와 안영미의 미친 케미를 사랑했고,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최상위의 과거로 올라가면 최양락과 임하룡, 전유성과 김미화, 그리고 그 사이에 등장했던 박미선의 스탠드업 코미디와 신동엽의 기차 안 미치광이 연기, 씨름선수에서 코미디언으로 변신한 강호동의 완전 초짜 시절 코미디도 무척 좋아했지요. 가슴 속에 숨겨둔 개그 본능을 실현할 재능이 없어 늘 아쉽던 저에게, 코미디언들이란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로서 늘 부러움과 감탄,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철 지난 프로그램이긴 한데, 한때 제가 엄청 애정하던 제리 사인펠드가 진행하는 좀 특이한 프로그램을 발견했어요.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라는 제목인데 원제는 ‘Comedians in the Car Getting Coffee’입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예요. 사인펠드가 동료나 선후배 코미디언을 한 명 섭외한 다음, 그 사람 이미지에 맞는 클래식카를 끌고 가서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가 맛있는 커피집에서 수다를 떠는 게 전부입니다.
이 프로그램 자체는 사실 코미디 프로그램이라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진짜 쟁쟁한 코미디언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두 직업인이 만나 자기들끼리 아는 애환, 팁, 경험을 나누는 시간인 건데, 워낙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들이 많은 사람들이라 재미도 재미지만, 묘하게 직업인으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요.
어떤 부분이 그런가 하면요. 여기 나올 정도의 인물이면 사실 이미 그 분야의 전설이고 백만장자이고, 지금 너무 너무 잘 나가는 지미 팰런 같은 진짜 핫한 코미디언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소소한 수다를 통해 이 냥반들이 10년, 20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자기 이름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순간이 오기까지 기울였던 노력과 희생, 쓰디쓴 모멸과 좌절의 순간마저 웃음의 소재로 삼으려는 집념과 광기의 순간들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조금씩 엿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게 다른 분야의 진행자가 아니라 동료 코미디언을 대상으로 나누는 대화이다보니 필터 없이 더 생생하게 전달이 돼요.
화려하게만 보였던 이 직업의 민낯을 들여다보면서, 20~30년씩 한 직장에서 혹은 한 직업을 가지고 직업인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두 다 즐겁고 영광스럽기만 할 순 없잖아요. 사실은 아주 아주 오랜 훈련과 인내를 통해 일상적인 갑질과 직업병과 경제적인 문제 등등 예상치 못한 복병들을 죄다 견뎌내면서 완성된 그들의 코미디 내공에 마냥 해맑은 웃음만 들어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의 일도 그렇지 않나요. 일이나 삶이나 참 단순치가 않아서 말예요. 그냥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상황보다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거나, 힘들어도 웃어 넘겨야 하거나, 아, 맞아요! 웃픈 상황들. 정말이지 웃픈 상황이 어찌나 많은지.
슬픈데, 속상한데,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데 그 와중에도 소소하고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들이 있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상황들. 지나고 나니 웃어 넘길 수 있게 된, 친구들에게 이걸 또 어떻게 웃기게 각색해서 말해주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제 일상에 자꾸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땐 모든 게 심각해서, 어려운 상황에선 정말 웃음이 나오질 않았어요. 신입사원 주제에 지금 내가 이걸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회사가 나 때문에 망할 것 같고, 유치원에서 아이가 한글로 이름을 쓰지 못하면 내 아이 인생이 뒤쳐질까봐 두렵고, 뭐든지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일들이 그렇게 엄청난 일들도 아니고, 아니 지금은 그럴 수 있지만 나중엔 더 큰 파도가 닥쳐와서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조금씩 이런 힘든 일들을 한 발짝 떨어져 웃음의 소재로, 내 아들에게 후일담으로 들려줄 해프닝으로 그려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웃어 넘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현실의 가차없음과 막막함에 대해, 이제 우리도 좀 알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 일요일밤의 정답은 역시, 코미디인 겁니다. 출근과 함께 시작될 또 한 주 만큼의 부담과 일상의 무게로 축 늘어진 배낭에 덧댈, 어깨 패드 같은 존재랄까요? 개콘과 웃찾사를 넘어, 코빅으로 계승되는 주말 밤의 주인공을 한 번 만나 보시죠. 취향이 아니시라고요? 흠, 그렇담 스트레스를 풀고 싶으실 때, 주말에 몰아 보실 만한 코미디 시리즈 몇 개를 더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최신 드라마와 구닥다리 시리즈가 뒤죽박죽이지만 재미는 보장하지요.
제 맘대로 뽑아본 Top 5 코미디 시리즈, 시간 날 때 야금야금 보셔도 무방하고 무해할 코미디 시리즈입니다. 음....그런데 아직 화요일이네요. 머나먼 주말을 기다리며 그럼 다들 화이팅입니다! ^^;
내 맘대로 Top 5 코미디 시리즈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 컬렉션 1~6
스페이스 포스 시즌 1~2
브루클린 나인나인 시즌 1~7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1~4
오피스 1~9
"이제 겨우 화요일, 다같이 홧팅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