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9년 2월 1일 21시 12분 등록

연구원 생활을 지내는 동안 나에게는 구라라는 별명이 생겼다. 칼럼으로 올라오는 내 픽션

아주 그럴듯하게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의미였다. 내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아주 높이 사준 동료 연구원들의 칭찬을 나는 그냥 넙죽 받아 챙겼다.

 

그런데, 요즘 내 책을 엮으려고 하면서 그 구라부분에서 문제가 생긴거다. 그림을 보고 구라를 풀어내는 능력을 한 번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 구라가 안 풀리니 미칠 지경이 되어갔다. 이 지경에 이르니 온갖 종류의 방황이 시도가 된다. 혼자서 방구들에 주구장창 앉아서 땅굴을 파기도 해보고,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괜찮을까 싶어서 신기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마음을 비워보면 괜찮을려나 싶어서 명상도 해 봤는데도 별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았다.

 

그 때쯤, ‘진짜 내가 구라쟁이인가?’ 라는 의문이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구라라는 칭찬을 덥썩 받아 챙기기는 했는데 내 스스로 어떤 종류의 구라인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구원 시절을 시작해서 칼럼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봤다. 예전에 썼던 칼럼들을 하나씩 다시 읽어 보니 무언가 집히는 게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 구라라고 여기며 재미있게 읽었던 글들이 사실은 구라-즉 거짓말이나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경험을 가지고 사람들을 상상의 세계라고 착각시킬 만큼의 글을 썼던 것이다.  

 

이쯤에서 고백컨대, 나는 절대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상상력으로만 구성된 허

구의 글을 잘 쓰는 인간이 못 되는 것이다. 대신, 나는 경험한 이야기를 신나고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은 확실히 있다고 믿는다. 뭔가를 끝까지 경험하고 그 경험한 이야기를 진짜 재미나

고 섹시하게 써 낼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왜 이제서야 깨달았단 말인가? 이제서야 구라쟁이의 정체가 명확히 밝혀

지는 것 같아서 속은 시원한데 뒷수습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를 어쩌나?

IP *.129.197.237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52 (33) 붉은 피 뚝뚝 떨어지는 동백 file [3] 이은미 2009.01.19 13715
4251 [37] 어설픈 시작 [2] 현웅 2009.01.20 3291
4250 (36)인터뷰3 :오선주 - 파티는 끝났다 [1] 소은 2009.01.20 4114
4249 [33]잠재력을 믿지 않는 너에게 file [2] 구라현정 2009.01.20 3650
4248 [34] 천국과 지옥은 똑같다, 다만 사람들이 다를 뿐 [1] 정산 2009.01.20 4524
4247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4246 (37) 콜라쥬를 해보세요 file 소은 2009.01.20 6368
4245 [36] 산티아고를 아시나요? 2 [1] 2009.01.24 3621
4244 [35] 일단 한 번 그려보자 최코치 2009.01.25 3074
4243 [37] 참 위대한 소심 - 어린시절 소심과 대면하다(1) file [3] 양재우 2009.01.26 3667
4242 (38)아침편지4 - 우리 둘째의 대학 합격 이야기 file [25] 소은 2009.01.27 4808
4241 [35] 인생은 일방통행 [3] 정산 2009.01.27 3824
4240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4239 [38] 어머니 [3] 현웅 2009.01.28 3577
4238 [화실일기] 시작이 미미해 보이는 것, 그밖에 여러가지 생각들 file [4] 한정화 2009.01.30 4087
4237 [36] 당신의 비전을 먼저 본 사람들 최코치 2009.02.01 3703
4236 [37]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거암 2009.02.01 3575
4235 [37] 살인의 추억 [1] 2009.02.01 3025
4234 [34]나는 누구일까?_수정고 file [3] 구라현정 2009.02.01 3448
» [34-1]어느 구라쟁이의 고백 구라현정 2009.02.01 3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