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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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7 - 죽음 만세 !
약속을 한 마지막 칼럼을 차일피일 하더니 마감이 임박해서야 겨우 발동이 걸립니다. 앞당겨 다녀 온 졸업여행은 마치 너무 일찍 터뜨려버린 샴페인처럼 사람을 헤롱헤롱 하게 하더니 급기야 숨은 바람기마저 끌어올려 잘도 잘도 돌아다녔습니다. 참 오랜만에 자유를 누리며 해방된 민족임을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녔지요. 실컷 놀고 나니, 이제는 스스로 책상 앞으로 돌아오고 싶어졌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프리 북페어를 할 때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오프수업에서 충분히 토론을 했던 내용이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니 긴장이 되었지요. 자료를 그럴 사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들의 손을 빌었더니 잘난 척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며칠을 손바닥을 비비며 비위를 맞추었는데 집을 나서기 직전에야 겨우 마무리를 지어주니 점심도 못 먹고 후다닥 달려가서 긴 시간을 내내 서있었습니다. 자료를 먼저 읽어 주십사고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니 선생님은 자료를 포장하는 것보다 이 글을 쓸 만한 사람이 썼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끝에 <죽음 만세!> 라고 마침표가 달린 답장이 왔어요. 죽음 만세! 이 말은 우습기도하고 의미가 심장하기도 하여 묘한 여운을 남기며 계속 따라 다닙니다. 그러니 정말 <죽음 만세!> 입니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평생 써오신 글을 이제 모두 마무리하라 유언하셨으니 스님의 책은 동이 났고 무소유 초판본은 100배 오른 값으로 거래가 되기도 한답니다. 스님을 길상사에서 우연히 뵈었지요. 스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마주쳐서 더 할 수 없이 자애로운 눈매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니 스님의 모든 삶과 죽음의 현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그 분을 추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도서관에 앉아서 <오두막 편지>를 읽었습니다. 물론 그날도 책 스무 권을 쌓아놓고 읽다가 잠시 눈을 쉬려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내려서 눈꺼플을 올려주느라고 힘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기침이 콜록거려서 더 이상 강원도 산골에 계시지 못하고 바닷가로 떠나 겨울을 지내려 하셨습니다. 떠나기 전에 산골짝이 쩌렁 울리도록 큰소리로 작별을 고하셨답니다. "겨울철 잘 지내고 돌아올 테니 다들 잘 있거라" 하고.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어대더니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더군요. 마음이 어수선해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 공부가 안됩니다.”
“왜요? 날씨 탓인가요 법정스님 열반 탓인가요? 반야심경 일독을 권합니다. 매일이 여여하시길”
문자를 받은 보살들은 법정스님 다비식에 가기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랜 술친구였던 처사는 매우 논리적인 완벽한 대답을 보내 왔습니다. 나는 이렇게라도 씹어대지 않으면 그 처사의 답글 처사가 참 쓸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답글을 길상사에서 차담할 때 다시 꺼내놓았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함께 즐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격변하는 시대의 강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디딤돌이 되어주셨던 어른들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험난한 세월에 소설처럼 굴곡이 많은 인생 길을 살아내셨지만 마무리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서로 이해하고 왕래하셨던 어른들의 삶과 죽음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보도되었기에 한창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한번은 멈춰서서 자신이 서있는 곳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제와 통영으로 갔던 졸업여행 중에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를 참배했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머물렀던 곳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한밤중에 환한 달빛을 받으며 우리는 함께 묘소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땅에 엎어져 큰 절을 하고 마음속에 간직했던 말을 은밀히 전하고 달빛에 취해 노래도 불러드렸습니다. 젊은이들이 젊은 기운으로 춤을 추어 보려고 하였지만 머뭇거리며 가락을 생각하는 동안 그만 흥취가 사라지고 이성이 재빠르게 제자리를 찾아와 천천히 되돌아 내려 왔습니다. 그러나 달빛에 흔들리며 춤추듯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혼자서 묘소에 다시 올라가봤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돌에 새긴 그분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새벽의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산새가 찾아드는 적막한 무덤가에 아침이슬을 맞아 촉촉이 젖어있던 풀들을 쓰다듬으며 그분께 다시 조용히 마음을 건넸습니다. 혼자 서 있다는 것이 어떤 때는 보다 영혼과 친해지기 쉬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짐을 차에 싣고 난 후 마지막 인사를 하러 또 한번 묘소로 올라갔습니다. 삼고초려입니다. 이번에는 산길을 따라 덤불이 우거진 곳을 헤치며 올라 가 보았습니다. 무언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두고오는 것 같아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가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서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박경리 선생님,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
또 다시 산길로 되돌아 나오니 차는 떠나 버렸고 핸드폰 문자를 따라 내려가니 백산이 나를 찾아 다시 묘소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군자가 아니라 대로로 걸어 내려오지 않아서 그만 우리의 무사 백산을 고생시켰습니다. 그는 씩씩하게 곧 돌아왔고 우리는 섬진강으로 나아갔습니다.
눈먼 말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히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그렇게 하시더군요. 미처 읽지 못한 토지 후속편들을 찾아 이제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나는 봄이 오면 별당아씨가 구천의 등에 업혀 죽어가며 하던 그 말이 잊히지가 않아요. “진달래 화전이 먹고 싶어요.....” 그 옛날에는 화전이 무엇인지 잘 몰랐었지만 오랫동안 가슴 아프게 각인되어 있던 음식이었습니다. 지난 해에 드디어 진달래꽃에 매화꽃도 함께 부쳐 화전을 직접 구웠던 생각이 납니다.
죽음을 생각하니 삶이 항상 꼭 달라 붙습니다. 우리의 오랜 풍속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음을 말하는 것을 금기시 해 왔지만 어떤 계기로든 우리의 운명은 죽음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오지만 어쨌든 우리는 죽음을 일대일로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집단 정신치료의 대가 어빈 얄롬은 죽음을 마주 하는 것을 마치 태양빛을 두 눈으로 바라보는 것 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태양을 피해 그 빛이 닿지않는 곳에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혜롭게 대책을 강구해보자는 것입니다. 보다 냉정하고 또 보다 용기있게 말이죠.
이제 월요일 정오의 이 칼럼놀이를 사랑스러운 유끼에게 넘겨드립니다. 마지막 칼럼을 쓰며 지난 일년 동안 초긴장으로 즐겼던 이 아름다운 시간을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이런 날이 내 인생 어디엔가 이미 계획되어 있었겠지요. 마크툽.
그러나 모든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곧 따라옵니다. 이제 나는 목요일 정오로 옮겨 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딱 한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보고 싶습니다. 이어쓰기의 바톤을 넘기며 스스로 다짐하는 것을 이렇게 큰소리로 외쳐 필살기의 날카로운 눈들에게 도전을 해 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죽음 만세!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때
이 발표는 나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얻게 해주었습니다.
한번도 현재의 삶 밖에서 내 주변을 살펴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때의 기억으로는 아내의 웃는 모습이 먼저 보였고, 아장아장 걷는 아들이 보였고
사랑할 수 있을때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반복해서 들려왔습니다.
죽음은 확실히 현재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주제를 갖고 계시는 선생님의 책이 어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영혼을 위로하는 날!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새롭게 운동을 하나 시작 해 볼까봐...
정답게 아주 정답게 답글놀이 해볼까? ㅋㅋ
꿀꺽 꿀꺽 댓글 삼키는 사람 하나가 사람을 일깨우네....
난 철이만 보면 무슨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아
이목구비가 또렷해서인가 했더니...
누군가 " 철이의 눈을 보십시오, 만만치 않찮아요?" 그러더라.
죽기 싫다고 떼 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죽음에게서 위로를 되돌려 받다니..말이야.
그날, 4월 10일 비가 주룩주룩 와주면 더 좋겠다.
말없이 한 두어시간 걷고나면 세파에 멍든 가슴들이 하늘색을 보게되려나...
근데 혹시 이거이 정다운 글인감? 은도끼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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