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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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치고
오래 비워 두었던 집에 돌아와 짐도 풀지 않고
깊숙한 의자에 앉았네
보여 줄 수 있는 건 눈가의 미소뿐
딱히 내 놓을 건 없지만
마음이 충만하니
육체의 고단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진정한 여행이 그렇듯이 나의 여행은 무모했네
죽었다 살아난 적도 있었지
여신을 만나 단판을 지으려 했던 적도 있었지
선구자의 삶을 내 것으로 삼고자 도전하기도 했지
그 새벽은 잠들지 않고 꽃잎을 피웠고
안개 핀 강가에서 물고기가 퍼덕였지
나를 있게 한 빛나는 경험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네.
나는 나를 거부했네
나는 나를 부정했네
나는 다른 멋진 내가 있기를 바랬네
나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우겼네
울컥 시작한 눈물이 석 달 열흘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네
깨침은 찰나
움켜쥐고 놓지 않았지
힘이 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물고 늘어졌네
어느 누가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그 찰나가 보이지 않는 빛을 발한다는 것도 알았네.
사람은 울어야 하네 사람은 웃어야 하네
원초적일 때 바로 자신을 볼 수 있다네
존재를 원망하고 스승도 원망했네
가슴을 치며 돌아본 세월이 나를 위로 할 쯤
비행기에 올랐지
영화 속이 영화가 결정적이듯
여행 속의 여행은 극적이었네
열 편의 러브스토리가 있었고
일 백 편의 사랑이 만들어졌네
쪽지 뽑아 함께 거닌 한 밤의 호숫가에서
떨쳐버릴 과거를 말할 때 스승님은 한 없이 미래만 일러주셨지
비행기에서 다시 내렸을 땐 예전의 내가 아니었네.
더 잘 웃게 된 유치대장이 내리고 있었네
자신을 받아 들인 뽕공주가 내리고 있었네
자신을 자신에게 말한 봄의 여인이 내리고 있었네
시간은 가을로 달려가고 관계는 깊어졌네
모두 깊고 오래가기를 소망했네
일년의 여행이 우주의 역사만큼 찬란하네
깊숙이 앉은 의자의 일렁임이 알려주네
여행은 끝이 곧 시작이라고
여행은 끝이 없는 것이라고
삶 자체가 여행이지 않던가

애정으로 코멘트하고 격려해주어 힘이 되었습니다.
진지함 속에 겉돌 수 있는 유치함을 잘 수용해 주어 감사했습니다.
수 많은 하얀 밤을 함께 지새 주어 든든했습니다.
뭐든 잘 한다, 예쁘다 해주어 신났습니다.
차이를 인정해 주고 다름을 감싸주어 포근했습니다.
모두 스승이 되어 주어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같이 놀고 꿈을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울고 짤 때 등 두드려 위로해 주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같이 토론하고 고뇌하여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점이 있다면 모두 저 때문입니다.
행복하고 사랑 충만한 이 마음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달밤의 체조 -김원숙 작. 1979
스승님, 예전에는 저를 위한 글을 써주시더니 이번엔 이렇게 그림까지! 감사합니당~~
요즘 일본전통시 하이쿠에 빠져 있는데 스승님의 말씀이 한 줄의 시로 세상을 일깨우는 하이쿠처럼 제 마음에 공명합니다. 훗날 그 곳에서의 달밤에 스승님의 이 시를 읊조리는 저를 상상해 봅니다.꼭 그리하겠습니당.^^
오래된 책갈피에서 '달밤에 체조'라는 그림엽서가 뚝 떨어졌습니다. 천상 저입니다.ㅋㅋ 저리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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