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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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12 - 나는 너를 세상의 중심에 두었다.
참 이상도 하지. 두 주일을 칼럼을 쉬고 놀기만 했더니 오늘은 게시판에 나와 소통을 하고 싶어서 몸이 마음을 끌어내고 있다. 놀자, 놀자, 나와서 놀자.
오월은 슬픔과 기쁨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 아니, 양날의 칼처럼 번득였다. 알수 없는 출렁거림으로 들판을 떠돌았다.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원점에 섰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새롭게 나아가련다.
생일선물로 아들에게 함께 걷자고 하였다. 두 달전부터 겨우 마련해둔 아들의 사흘 휴가는 회사 등반대회로 하루가 잘리고, 엄마의 저녁약속으로 또 절반이 잘려나가서 결국 하루 반 동안 빛이 났다. 가장 좋은 길을 아들과 함께 걸으려고 짱구놀이를 했다. 결국 외돌개에서 시작하는 올레 7코스와 송악산을 도는 10코스,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를 함께 돌아보았다. 지난해에 틈이 날 때마다 익혀두었던 나만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의 길이었다.
우리는 해가 지는 저녁에 하멜이 표류했던 용머리 해안을 돌아보았고 잠시 함께 조랑말을 탔으며 보름달이 뜨는 저녁엔 송악산에 올라 한라산과 서귀포의 바다 전경을 앞에 두고 태평양을 바라다 보았다. 정말 천하가 태평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송악산의 화산 분화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런 평화가 얼마만인지.....아들이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인 듯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준비했던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어미독수리가 되어 새끼를 절벽으로 밀어내지도 못했고, 어미곰이 되어 딸기밭에 버려두고 오지도 못했다. 할 수 없다. 머리가 이해한 것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인위적으로 끌고 갈 일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했던 이 눈부신 하루 반이 그렇게 행복했음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나는 이제 다시 너를 세상의 중심에 세운다. 그동안 진심을 감추고 “이 세상은 이토록 험한 곳이니 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해서 온갖 요동치는 세월을 다 보냈었다. 오직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겪어보니 그 말은 진리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진심이 아닌데 그 마음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길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길을 함께 걸어보았다. 마음이 가는대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길을 따라 살기로 했다. 나는 아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사랑스럽다. 그러니 사춘기부터 겪어온 힘겨루기를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다. 나는 아무래도 네게 대한 내 사랑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의 방식이 아니고 너의 방식으로 이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다. 내가 먼저 길을 떠나 너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고 싶다. 그동안 세상의 사랑을 받으라고 강요했던 모든 요구들을 이제 스스로 모두 거두어들인다. 너는 너만의 눈부신 하루를 살아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이미 너의 것이었던 빛나는 인생에 너무 오래 개입했다.
일상이 황홀한 세상으로 성큼 성큼 나아가거라.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사람을 세우고 너를 세우고 사랑하며 살아가거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살다가 힘이들면 고향 땅을 찾아들듯이 되돌아오너라. 힘들땐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사람이 사람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이 마땅하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 가득 사랑을 담아 너의 평화를 빈다. 지극한 사랑으로 너의 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