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0년 9월 10일 00시 55분 등록

응애 31 - 살인의 해석

1909년 8월 29일 일요일 저녁, 지그문트 프로이드박사가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북독일 브레멘에서 증기선 조지 워싱톤호를 타고 왔다. 250명의 승객 중에는 칼 구스트프 융과 산도르 페렌치 박사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주고 받으며 정신 분석학사에 길이 남아있는이야기들을 만들며 함께 여행을 했다. 일주일간의 긴 항해였다.

클라크 대학의 총장 칼빈 S.홀이 20주년 기념식에 프로이드박사를 초대했다. 홀 총장은 프로이드에게 대학 최고의 영예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정신분석학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다. 이미 유럽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아브라함 브릴 박사와 최근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클라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스트래섬 영거 박사가 마중을 나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뉴욕은 건축 산업이 발작을 일으키듯 급성장하면서 도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마천루라고 하는 거대한 탑들이 솟아오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47층 짜리 싱어빌딩의 공사가 한참이었다. 발모럴 빌딩은 브로드웨이에 세워진 웅장한 새 주거용 건축물이었다.

프로이드가 뉴욕에 도착한 바로 그때, 발모럴 17층 고급 아파트 안에 날씬한 젊은 여자가 그 안에 서있고, 흔들리는 촛불 12개가 섬세하게..... 균형잡힌 몸에 옷이라고는 거의 ....한 여자가 머리위에 손목이 묶여 있었고 목에 걸린 또 하나의 끈이...침대 위에는 상아손잡이가 달린 남성용 직각 면도기, 길이가 60센티 되는 검은 가죽 승마용 채찍, 수술용 메스 3개,투명한 액체가 반쯤 들어있는 작은 물병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이제까지 써놓은 것은 제드 러벤펠드의 소설 <살인의 해석>의 무대의 배경이다. 작가는 미국 헌법사와 형법에 정통한 현직 예일대 법과대학원 교수이다.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열렬한 문학 청년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졸업 논문을 프로이드로 썼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는 줄리아드 스쿨에서 세익스피어를 전공했다. 그는 우리가 연구원 레이스중에 읽었던 <제국의 미래>를 쓴 에이미 추아의 남편이기도 하다.

우선 작가의 화려한 배경이 시선을 끌지만 나에게는 젊었을 때의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그가 가진 모든 경험을 글속에 이렇게 풀어 녹여낸 그 힘이 놀라웠다. 첫 작품이라는데 전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때때로 명성은 행운과 함께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것이 마치 정신분석학 강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와 사례처럼 철저한 사실 위에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도시 건축에 관한 역사적 고증 또한 심혈을 기울여 조사했다. 건축물 , 도시거리, 사교계는 물론 세세한 부분도 다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만약 오류가 있다면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니 다만 시간적 배경만을 살짝 바꾼 몇 장면 외에는 실제 인물의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의 성실성이 작품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출판사가 이 소설의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선 인세 100만 달러를 지급했고 초판 부수를 무려 18만 오천 부를 찍었단다. 이런 명성이 단지 운이 좋아서 따라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 555페이지를 읽고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첫 책을 준비하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미 작가가 된 사람들의 속마음이 내 귀에 살며시 전해진다. 그 이야기들을 어떤 때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들을 때도 있고 작가후기나, 번역자의 해설로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같이 가슴 설레이는 장면들이 있다. 그렇지, 그렇겠지, 이 세상에 작가의 이름을 달아 새 생명 하나를 내보내는데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힘에 겨워 지칠 때에는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쓰며 느꼈던 이야기들이 위안이 된다. 전에 소설은 시간이 아까워서 읽지 않겠다고 했던 말을 이제 이쯤에서 거두어 들여야겠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이 칼럼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책의 반이 죽음을 다루며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세상 책의 반이 생명을 다루고 생명을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삶은 사실의 세계이고 죽음은 가상의 세계이다. 이 책 <살인의 해석>이 그렇게 튼튼한 시간적 공간적 사실 위에 살인을 가상으로 풀어나갔으니 그의  살인에 대한 해석에는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있다. 독자들 또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상황을 그려보며 그 해석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 끝에 거짓말도 있고 눈속임도 있고 모험도 있고 연애이야기도 있다. 가슴을 졸이며 글을 읽어 나갔겠지만 예상을 빗나간 결말을 본 독자도 있을 것이다. 탄탄한 긴장감이 일품인 소설이다.

나의 방만한 책읽기가 이제는 살인까지 찾아 읽고 있으니 이제 이 정도에서 책읽기는 마무리를 하고 책쓰기를 해야 하겠는데, 아무래도 아직 읽어야할 책이 많이 남았다는 유혹에 늘 지고 만다. 책일기와 책쓰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활자매체 중독증을 분석하고 다시 해석해서 그림자는 죽여 버리고 진짜를 찾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IP *.67.223.107

프로필 이미지
2010.09.10 23:59:32 *.67.223.107
첫문장: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프로필 이미지
2010.09.12 12:09:51 *.67.223.107
마지막 문장:
프로이드는 말년에 친구 한 명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미국에 대한 내 의심은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거네."
프로필 이미지
청해
2010.09.11 11:02:02 *.95.252.171
어줍잖은 글을 써 놓고 한참을 묵혀두다가,
다른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써 놓은 글을 고치거나 지우거나 잊어 버리거나 합니다.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범해 선생님의 내공을 기대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0.09.12 12:02:58 *.67.223.154
내가 좋은책을 발견했다고 좋아하는 책들은 거의 3-4년은
작가의 서랍에서 묵히던 책이더군요.
어쨌든 서랍으로 가기전까지가...우리가 당면한 과제 같습니다.
푸른바다...청해....형산....힘을 모아 뚜벅뚜벅 가 보십시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0.09.12 02:46:12 *.131.127.50

한 동안 어디 있었다요? ^^
잘 지내시죠?
왕누님 글은 늘 독특한 냄새를 풍겨요.

프로필 이미지
2010.09.12 12:07:01 *.67.223.107
백산, 갈수록 칼럼 올리기가 힘이 드네요.
뒤죽박죽...산토리니의 당나귀 똥 같은 냄새가 나는감?

사람들이 백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젠 좀 알 것 같아.
응애 50 고개까지...당나귀처럼 고개를 흔들며...가보는거야....
588인가 599인가 헷갈리네용
프로필 이미지
2010.09.14 00:48:53 *.40.227.17

좌샘 ..                           ...                                .....                                      ........                                       .........................

묶인 손목.. 면도기.. 체찍.. / 으------
살인.. / 앞으루.. 잘 할께여.. ㅎ
해석? / 오! NO!!!

책.. 활자 중독증.. 사색.. 응애 글쓰기..
노란 운동화.. 멋진 모자..
그리고 우히힛..
좌샘께 잘 어울리는 거이루.. 뽑아봤어여.. 헤헤^^

어느새.. 깊어지는 가을이네여..
선생님~, 저두 보고파여.. 함께 걸어여~ ^^

프로필 이미지
응애
2010.09.14 10:36:23 *.67.223.107
향아, 어제 정현이랑,춘희 만났다. 국립극장에서....
못보는 사이에 엄청 키도 커지고...날씬해졌더라.. 두사람다....

산들 바람이 참 좋으네.....백산 부추켜서....바닷가로 함 놀러가자....ㅎㅎ
그전에 석촌 호수를 두바퀴 반쯤 걸어야 할텐데......
추석엔 가족과 함께 보낼거지?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0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6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49
5201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79
5200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89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7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798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3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감사하는 마음 [3] 정산...^^ 2014.06.17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