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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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31 - 살인의 해석
1909년 8월 29일 일요일 저녁, 지그문트 프로이드박사가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북독일 브레멘에서 증기선 조지 워싱톤호를 타고 왔다. 250명의 승객 중에는 칼 구스트프 융과 산도르 페렌치 박사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주고 받으며 정신 분석학사에 길이 남아있는이야기들을 만들며 함께 여행을 했다. 일주일간의 긴 항해였다.
클라크 대학의 총장 칼빈 S.홀이 20주년 기념식에 프로이드박사를 초대했다. 홀 총장은 프로이드에게 대학 최고의 영예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정신분석학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다. 이미 유럽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아브라함 브릴 박사와 최근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클라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스트래섬 영거 박사가 마중을 나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뉴욕은 건축 산업이 발작을 일으키듯 급성장하면서 도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마천루라고 하는 거대한 탑들이 솟아오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47층 짜리 싱어빌딩의 공사가 한참이었다. 발모럴 빌딩은 브로드웨이에 세워진 웅장한 새 주거용 건축물이었다.
프로이드가 뉴욕에 도착한 바로 그때, 발모럴 17층 고급 아파트 안에 날씬한 젊은 여자가 그 안에 서있고, 흔들리는 촛불 12개가 섬세하게..... 균형잡힌 몸에 옷이라고는 거의 ....한 여자가 머리위에 손목이 묶여 있었고 목에 걸린 또 하나의 끈이...침대 위에는 상아손잡이가 달린 남성용 직각 면도기, 길이가 60센티 되는 검은 가죽 승마용 채찍, 수술용 메스 3개,투명한 액체가 반쯤 들어있는 작은 물병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이제까지 써놓은 것은 제드 러벤펠드의 소설 <살인의 해석>의 무대의 배경이다. 작가는 미국 헌법사와 형법에 정통한 현직 예일대 법과대학원 교수이다.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열렬한 문학 청년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졸업 논문을 프로이드로 썼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는 줄리아드 스쿨에서 세익스피어를 전공했다. 그는 우리가 연구원 레이스중에 읽었던 <제국의 미래>를 쓴 에이미 추아의 남편이기도 하다.
우선 작가의 화려한 배경이 시선을 끌지만 나에게는 젊었을 때의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그가 가진 모든 경험을 글속에 이렇게 풀어 녹여낸 그 힘이 놀라웠다. 첫 작품이라는데 전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때때로 명성은 행운과 함께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것이 마치 정신분석학 강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와 사례처럼 철저한 사실 위에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도시 건축에 관한 역사적 고증 또한 심혈을 기울여 조사했다. 건축물 , 도시거리, 사교계는 물론 세세한 부분도 다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만약 오류가 있다면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니 다만 시간적 배경만을 살짝 바꾼 몇 장면 외에는 실제 인물의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의 성실성이 작품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출판사가 이 소설의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선 인세 100만 달러를 지급했고 초판 부수를 무려 18만 오천 부를 찍었단다. 이런 명성이 단지 운이 좋아서 따라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 555페이지를 읽고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첫 책을 준비하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미 작가가 된 사람들의 속마음이 내 귀에 살며시 전해진다. 그 이야기들을 어떤 때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들을 때도 있고 작가후기나, 번역자의 해설로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같이 가슴 설레이는 장면들이 있다. 그렇지, 그렇겠지, 이 세상에 작가의 이름을 달아 새 생명 하나를 내보내는데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힘에 겨워 지칠 때에는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쓰며 느꼈던 이야기들이 위안이 된다. 전에 소설은 시간이 아까워서 읽지 않겠다고 했던 말을 이제 이쯤에서 거두어 들여야겠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이 칼럼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책의 반이 죽음을 다루며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세상 책의 반이 생명을 다루고 생명을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삶은 사실의 세계이고 죽음은 가상의 세계이다. 이 책 <살인의 해석>이 그렇게 튼튼한 시간적 공간적 사실 위에 살인을 가상으로 풀어나갔으니 그의 살인에 대한 해석에는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있다. 독자들 또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상황을 그려보며 그 해석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 끝에 거짓말도 있고 눈속임도 있고 모험도 있고 연애이야기도 있다. 가슴을 졸이며 글을 읽어 나갔겠지만 예상을 빗나간 결말을 본 독자도 있을 것이다. 탄탄한 긴장감이 일품인 소설이다.
나의 방만한 책읽기가 이제는 살인까지 찾아 읽고 있으니 이제 이 정도에서 책읽기는 마무리를 하고 책쓰기를 해야 하겠는데, 아무래도 아직 읽어야할 책이 많이 남았다는 유혹에 늘 지고 만다. 책일기와 책쓰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활자매체 중독증을 분석하고 다시 해석해서 그림자는 죽여 버리고 진짜를 찾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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