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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일 22시 37분 등록

일상에서 여행은 마법이다. 여행은 사람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마법을 걸어주기 때문에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유인이 된다.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상상의 이미지로 가득 찬 미지의 길을 여행한다는 일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뛴다. 일상이 있기에 여행은 보석처럼 빛난다. 여행은 일상의 거스름을 통하여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조를 그 안에 담고 있다.

 

나는 여행 중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삶의 여행 중이다. 한번도 걸어가 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있다. 만남에서 맘껏 웃고 그들의 삶을 본다. 생경한 나를 보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즐겁다. 이런 불안함과 즐거움이 혼재한 여행길에서 나는 자주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꿈과 밥이 독립된 절대적 가치로 양립하지 못하고 짬뽕 되어 생기는 진퇴양난의 막다른 길이다. 꿈과 밥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밥은 생존이요, 꿈은 실존이다. 생존을 잃은 상태가 죽음이라면, 실존을 잃은 상태 또한 나에게는 죽음이다. 꿈과 밥을 양립시키는 것,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내 삶의 라그랑주(Lagrange)의 한 지점을 찾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목적에 부합하려면 아마도 긴 여행이 될 듯하다.

길게 주어진 여행 길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막다른 길에서 나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가?

 

독일 출신 신학자로 히틀러의 압제를 피하여 미국으로 가서 살았던 폴 틸리히(Paul Tillich)란 학자가 있다. <존재에 대한 용기 (courage to Be)>라는 책에서 그는 용기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용기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그 다음 중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틸리히의 정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용기는 선택의 문제인 듯 하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가장 급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용기인 셈이다. 나에게도 이전에 급한 대로 결정하고 때로는 충동적으로 선택하여 그 일에 시간과 정력, 물질과 체력을 소비했던 분별없음에 반하여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이루어 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사기열전>의 저자 사마천은 그의 삶을 통하여 용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궁형은 생식기를 고환까지 단칼에 잘라낸다. 그러면 소변이 나오는 구멍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다음 요도에 큰 거위 털을 박아 내쳤다. 거위 털을 박아 넣은 데서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 요독증에 걸려 죽고 마는, 끔찍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벌이다. 사마천은 그런 궁형을 자청했다. <사기>라는 삶의 가치를 위해서 그는 치욕을 선택했다. 틸리히가 말한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그 다음 중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그는 하루에도 아홉 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등골에 땀이 흐르는 고통 속에서 <사기>를 완성했다고 이야기 한다. 더불어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 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그가 선택한 태산 보다 무거운 죽음이 그리고 그의 용기가 긴 여운으로 내 마음의 누선을 건드린다.

 

삶 또한 내가 좋아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삶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죽음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 속에서도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 맹자 고자상 -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삶 보다 좋은 것은 무엇이며, 죽음 보다 더 싫은 것은 무엇인가?

삶의 가치 중 하나를 궁형 당하면서도 지켜야 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해야 하고, 그것을 여행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여행은 귀로(歸路)를 전제로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일상을 빛내는 여행의 의미는 퇴색된다. 귀로를 전제하지 않고 나선 길이다. 새로운 신 천지를 꿈꾸며 나선 길이다. 까무러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걸었다'라는 말을 하고픈 그런 길이다.

실존을 잃고 죽든, 생존을 잃고 죽든 삶의 무용함은 나에게 같은 얼굴을 드리운다.

 

그저 일상처럼 한 해가 가고 있었다.

가는 눈발이 가랑비처럼 가늘게 흩어졌다.

사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연말연시의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사이로 마음이 싸했다.

눈발이 코트 깃 사이로 소리 없이 들어오고,

겨울 냉기가 밀물처럼 철벅거리며 나에게 밀려왔다.

시원했다.

그날 나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일 그것으로부터 버텨가고 있는 삶에서 물러날 것을 예감했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 속에서 무너지고 일어남을 반복했다.

"이젠 좀 용감해지고 싶다.” “떠나자! 어디로든, 아무렇게나.”

 

반듯한 듯이 살아온 삶의 외양을 떠나 굴곡지고 비뚤어진 나 자신을 바로 찾아야 했다.

나를 지금의 여행에 나서게 했던 그날 저녁의 용기와 여행자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

나는 여행 중이다.

가자, 멀리 가자. 나의 길이라 생각되는 길로 멀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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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01 23:08:07 *.35.19.58
오라버니의 고뇌가 내 뼛속에 스민다.
밥과 꿈의 양립, 이것이 어찌 이리 힘들단 말이오.
나에게 삶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고, 죽음 보다 싫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
이 여행길에서 무엇을 얻어 돌아오든 그건 소중한 것일거라 믿어요.
우리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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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1:32:57 *.219.84.74
그렇지. 힘들다는 점에서는 인정하자.
하지만 우리가 용기를 내어 시작했듯이 환하게 웃는 시간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멋드러진 과정에 함께 있어서 너무 좋다.
혼자가면 못했을 길이겠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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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01 23:20:48 *.23.188.173
나는 항상 꿈인 쪽이었는데
책임을 크게 느낀 적이 없어서였을까
나는 밥의 무게를 크게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항상 꿈의 비중을 크게 둔 피터팬이었지
그래서 나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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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1:36:26 *.219.84.74
꿈에 대한 믿음이 루미는 크고, 튼실하지만
나는 항상 미심쩍어하고, 혹시 다른 더 좋은 것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의 차이인듯하다.
아들 때문에 붙들려서 피터팬 DVD를 요즘 자주 보는데
피터팬이 웬디에게 날것을 권유하면서 '의심하지 말고 날 수 있다고 믿어. 완전히 믿어야해!'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지...
그러고 보니 루미에게는 피터팬의 경쾌함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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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5.02 09:03:58 *.98.16.15
용기란 무엇인가..
찬란한 5월에도 그 찬란함을 뚫고 들어오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는데요..

지난 북페어에서 잠시지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경주에서보단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ㅋㅋ

용기있는 결정을 내려 2011년은 연구원이 되신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만큼 올 한해가 아름다운 발걸음으로 물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홧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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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1:38:17 *.219.84.74
언제쯤 선배님과 같은 내공을 갖게 될까 궁금합니다.
나도 사부님의 여정을 잘~~따라가면 선배님과 같은 내공을 갖게 될것이라 희망합니다.

이야기는 쏘주한잔 하면서 해야 제격인데...
언제 7기가 선배님에게 술한잔 권유하는 시간을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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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12:20:54 *.111.51.110
그날.
연말연시에 눈발이 내리던 그날.
새로운 결심을 한 그날이
눈에 선합니다.
얼마나 쓸쓸했을지, 혹여나 눈물을 글썽이진 않았을지...

형! 참 소중한 오늘이지요?
그토록 원했던 오늘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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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1:40:00 *.219.84.74
그렇다. 매일 매일 소중하다. 지나놓고 나면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어리석지.
오늘이 소중하다는 것은 일상에 파묻혀 그저 그렇게 지나간다. 미련하지.
그래도 우리는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위대하지..그렇지?

경수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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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13:59:26 *.124.233.1
형님! 빈말이 아니구요!
형님 글에는 그곳에 이르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져요.
그 세계 속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느끼지 않아보면 결코 알 수 없는 깊이요.
그리고 그곳은 폴 틸리히가 말하는 용기있는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곳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직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밥은 생존이고, 꿈은 실존인 이 두 극 사이에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삶보다 더 즐거운 것,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제겐 무엇일까요?

형님께 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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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1:42:23 *.219.84.74
이르렀다고 하니 누가 볼까 두렵다.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고민이 어떤 실행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데...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으로 매일 생각만 쪼물락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의 실행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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