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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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여행은 마법이다. 여행은 사람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마법을 걸어주기 때문에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유인이 된다.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상상의 이미지로 가득 찬 미지의 길을 여행한다는 일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뛴다. 일상이 있기에 여행은 보석처럼 빛난다. 여행은 일상의 거스름을 통하여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조를 그 안에 담고 있다.
나는 여행 중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삶의 여행 중이다. 한번도 걸어가 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있다. 만남에서 맘껏 웃고 그들의 삶을 본다. 생경한 나를 보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즐겁다. 이런 불안함과 즐거움이 혼재한 여행길에서 나는 자주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꿈과 밥이 독립된 절대적 가치로 양립하지 못하고 짬뽕 되어 생기는 진퇴양난의 막다른 길이다. 꿈과 밥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밥은 생존이요, 꿈은 실존이다. 생존을 잃은 상태가 죽음이라면, 실존을 잃은 상태 또한 나에게는 죽음이다. 꿈과 밥을 양립시키는 것,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내 삶의 라그랑주(Lagrange)의 한 지점을 찾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목적에 부합하려면 아마도 긴 여행이 될 듯하다.
길게 주어진 여행 길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막다른 길에서 나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가?
독일 출신 신학자로 히틀러의 압제를 피하여 미국으로 가서 살았던 폴 틸리히(Paul Tillich)란 학자가 있다. <존재에 대한 용기 (courage to Be)>라는 책에서 그는 용기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용기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그 다음 중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틸리히의 정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용기는 선택의 문제인 듯 하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가장 급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용기인 셈이다. 나에게도 이전에 급한 대로 결정하고 때로는 충동적으로 선택하여 그 일에 시간과 정력, 물질과 체력을 소비했던 분별없음에 반하여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이루어 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사기열전>의 저자 사마천은 그의 삶을 통하여 용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궁형은 생식기를 고환까지 단칼에 잘라낸다. 그러면 소변이 나오는 구멍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다음 요도에 큰 거위 털을 박아 내쳤다. 거위 털을 박아 넣은 데서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 요독증에 걸려 죽고 마는, 끔찍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벌이다. 사마천은 그런 궁형을 자청했다. <사기>라는 삶의 가치를 위해서 그는 치욕을 선택했다. 틸리히가 말한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그 다음 중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그는 하루에도 아홉 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등골에 땀이 흐르는 고통 속에서 <사기>를 완성했다고 이야기 한다. 더불어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 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그가 선택한 태산 보다 무거운 죽음이 그리고 그의 용기가 긴 여운으로 내 마음의 누선을 건드린다.
삶 또한 내가 좋아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삶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죽음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 속에서도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 맹자 고자상 -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삶 보다 좋은 것은 무엇이며, 죽음 보다 더 싫은 것은 무엇인가?
삶의 가치 중 하나를 궁형 당하면서도 지켜야 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해야 하고, 그것을 여행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여행은 귀로(歸路)를 전제로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일상을 빛내는 여행의 의미는 퇴색된다. 귀로를 전제하지 않고 나선 길이다. 새로운 신 천지를 꿈꾸며 나선 길이다. 까무러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걸었다'라는 말을 하고픈 그런 길이다.
실존을 잃고 죽든, 생존을 잃고 죽든 삶의 무용함은 나에게 같은 얼굴을 드리운다.
그저 일상처럼 한 해가 가고 있었다.
가는 눈발이 가랑비처럼 가늘게 흩어졌다.
사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연말연시의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사이로 마음이 싸했다.
눈발이 코트 깃 사이로 소리 없이 들어오고,
겨울 냉기가 밀물처럼 철벅거리며 나에게 밀려왔다.
시원했다.
그날 나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일 그것으로부터 버텨가고 있는 삶에서 물러날 것을 예감했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 속에서 무너지고 일어남을 반복했다.
"이젠 좀 용감해지고 싶다.” “떠나자! 어디로든, 아무렇게나.”
반듯한 듯이 살아온 삶의 외양을 떠나 굴곡지고 비뚤어진 나 자신을 바로 찾아야 했다.
나를 지금의 여행에 나서게 했던 그날 저녁의 용기와 여행자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
나는 여행 중이다.
가자, 멀리 가자. 나의 길이라 생각되는 길로 멀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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