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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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구상이 안 끝나 오랜만에 에세이를 올려 봅니다.^^
방사능비를 어찌할까
방사능비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라, 해산물을 먹지 마라, 요오드화칼륨을 비상약으로 준비하라. 지난 재보선에서는 강수확률이 선거에 중요한 변수로 지적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이후 비는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 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자연현상일진대 ‘절대 비를 맞지 마세요’라는 안전수칙이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이런 식의 가이드가 천수를 누리는데 도움이 될까.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같다는 생각이 오지랖 넓게 땅은, 식물은, 가축은 어쩌라고… 꼬리를 문다. 모래무지에 막대기를 꽂고 모래를 발라내는 게임이 떠오른다. 순서대로 모래를 발라내다 보면 기초가 부실해진 막대기가 쓰러질락말락 스릴을 자아낸다. 막대기를 쓰러뜨려 술래가 된 아이는 얼굴이 불편해진다. 막판에 운 없이 걸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빗물과 수돗물을 나누고,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것이 모래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차이를 만들었는데 차이가 깊어지니 무용한 것이 많아진다. 빗물이 그렇고 구제역 소가 그렇다. 차이 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머물 땅도 줄어든다.
人間的이란 건 그 사이에 나의 영역도, 상대방의 영역도 아닌 공동의 여백을 수용하는 태도일 것이다. 한 시간을 날면 국토 최남단에 당도하고 빨간날에는 자동차행렬이 고속도로를 빼곡하게 채우는 국토면적 9만 9373㎢, 인구 4,800만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천수를 누리는 길은 ‘웬만하면 따지지 않는 것’이라고 눈앞에 펼쳐진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결론을 냈다. 흐뭇한 심정이 되어 출근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를 오르고 있었다. 거기서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뒤를 돌아다 봤다. 노숙자 한 명이 계단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보건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술기운에 내뱉는 독백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가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어디서, 언제인가. 결국 찾아냈다.
노숙자는 타고난 시인이었다. 밤을 새운 시인의 원고지에서 탄생해야 제격일 시구가 그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속에서 튀어나왔다. 말이 참 요지경인 게, 방사능비에서 봄비로 수식어가 바뀌니 마음이 포근해졌다. 노숙자의 입을 빌려 상소리처럼 튀어나왔지만 봄비는 봄비였나 보다. 수식어 한 마디로 하늘이 달라 보이는 아침이었다.
봄날은 갔네
박 남 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 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 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가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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