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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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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일 10시 43분 등록

※ 소설 구상이 안 끝나 오랜만에 에세이를 올려 봅니다.^^


 

방사능비를 어찌할까

 

방사능비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라, 해산물을 먹지 마라, 요오드화칼륨을 비상약으로 준비하라. 지난 재보선에서는 강수확률이 선거에 중요한 변수로 지적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이후 비는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 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자연현상일진대 절대 비를 맞지 마세요라는 안전수칙이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이런 식의 가이드가 천수를 누리는데 도움이 될까.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같다는 생각이 오지랖 넓게 땅은, 식물은, 가축은 어쩌라고꼬리를 문다. 모래무지에 막대기를 꽂고 모래를 발라내는 게임이 떠오른다. 순서대로 모래를 발라내다 보면 기초가 부실해진 막대기가 쓰러질락말락 스릴을 자아낸다. 막대기를 쓰러뜨려 술래가 된 아이는 얼굴이 불편해진다. 막판에 운 없이 걸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빗물과 수돗물을 나누고,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것이 모래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차이를 만들었는데 차이가 깊어지니 무용한 것이 많아진다. 빗물이 그렇고 구제역 소가 그렇다. 차이 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머물 땅도 줄어든다.

 

人間的이란 건 그 사이에 나의 영역도, 상대방의 영역도 아닌 공동의 여백을 수용하는 태도일 것이다. 한 시간을 날면 국토 최남단에 당도하고 빨간날에는 자동차행렬이 고속도로를 빼곡하게 채우는 국토면적 9 9373, 인구 4,800만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천수를 누리는 길은 웬만하면 따지지 않는 것이라고 눈앞에 펼쳐진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결론을 냈다. 흐뭇한 심정이 되어 출근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를 오르고 있었다. 거기서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뒤를 돌아다 봤다. 노숙자 한 명이 계단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보건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술기운에 내뱉는 독백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가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어디서, 언제인가. 결국 찾아냈다.

 

노숙자는 타고난 시인이었다. 밤을 새운 시인의 원고지에서 탄생해야 제격일 시구가 그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속에서 튀어나왔다. 말이 참 요지경인 게, 방사능비에서 봄비로 수식어가 바뀌니 마음이 포근해졌다. 노숙자의 입을 빌려 상소리처럼 튀어나왔지만 봄비는 봄비였나 보다. 수식어 한 마디로 하늘이 달라 보이는 아침이었다.

 

 

 

봄날은 갔네

            박 남 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 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 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가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IP *.23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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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03 12:10:02 *.10.44.47
그러게요. 내몸에 닿는 것만 피한다고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가 모두 함께 져야할 짐일텐데 말이죠.

소설가...에세이를 써도
주제가 묵직하네요. 단편소설 하나깜은 될 것 같아요. ^^
다만 사부님 보시면 한마디 하실 듯.
'길게 써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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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12:11:38 *.230.26.16
ㅍㅎㅎ, 미옥!
성대묘사까지 있으면 완벽할텐데 ^^

그래도 오랜만에 오빠 에세이보니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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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4 08:52:17 *.236.3.241
팀 매거진 편집자 글인데 다음호에서는 몸무게를  줄여야겠다.
매거진 내용은 경쾌한데, 호응이 좀 안 맞았던 것 같다.

칼럼은 길게 써야지. 이래저래 할 게 많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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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3 13:34:24 *.219.84.74
날씨는 또 모래바람 불고 지랄입니다.

박남준님의 비와 꽃은 지랄을 해도 아름답습니다만
황사가 지랄을 하니 정말 욕나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선배님의 다른 얼굴을 보게 보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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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4 08:45:51 *.236.3.241

실존을 잃고 죽든, 생존을 잃고 죽든 삶의 무용함은 나에게 같은 얼굴을 드리운다.

 

그날 나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일 그것으로부터 버텨가고 있는 삶에서 물러날 것을 예감했다.

훈 후배~ 그 날이 그날이었던게지. 지랄같은 인생에 지랄같은 반항을 하고 싶었던 날이.
지랄같을 연구원 1년차를 응원하며 깨달음이 마침내 지랄을 부려 공전의 출간으로 이어지기를!!!
- 제기랄 지랄 선배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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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5.03 18:22:05 *.30.254.21
지난 주, 수요일
북페어 끝나고 새벽까지 술먹고
다음날 늦은 출근길..
햇살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말

"햇살, 지랄같이 좋네.."
(나도, 노숙자 모드....)

상현아!
너의 소설, 나폴레옹!
책자로 나오니 읽기 편하여
시간될 때, 조금씩 다시 읽어보고 있다.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앞, 중간, 뒷부분, 글체의 차이가 느껴진다. 
차이의 느낌이 무언지 정확해지면 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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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4 08:37:37 *.236.3.241
4개월에 걸쳐 쓴 거라 아무래도 톤의 변화가 있겠죠.ㅎㅎ
시간 들여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되면 꼭
얘기해 주세요~~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 같은 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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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7:27:25 *.111.206.9
형, 천명관의 '고래' 읽어보셨어요? 

발상은 같은데, 톤은 달라요. 형은 좀더 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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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8:58:35 *.111.206.9
읽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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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4 08:35:39 *.236.3.241
'고래' 읽었지.
구라빨이 끝나갈 무렵 뭉클함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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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5.05 11:16:27 *.42.252.67
천수를 누리게 위해 유기농만 먹는 사람 교통사고로 몸 상태 깨끗하게 매장되고

건강을 위해 헬스에서 열심히 몸 만드는 사람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로 근육질 몸, 관만 무겁고

 방사는 비 피해 무지개 우산 사 쓰고, 해물 안 먹고 구십 수에 가까우니 자식이 왠수지만을 대고

요양원으로 고려장을 하니 눈을 뜨고 죽은 것처럼 산다.

어짜피 이래서 죽고 저래서 죽고 그냥 살다 죽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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