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연주
  • 조회 수 2401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2011년 5월 3일 12시 01분 등록

칼럼 - 두 친구 그후...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다른 반 학생이 다급하게 날 부른다. 선생님반 애가 화장실에서 쓰러져있어요. 달려 가보니 순종이가 괴로운 표정으로 쓰러져있는데 성준이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순종이는 오른쪽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며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한다. 겁이 덜컥난다. 순종이를 일으켜 세워 보건실로 갔다. 보건선생님은 다행히 심장 쪽의 이상은 아닌 것 같다며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서 빨리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순종이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데 빨리 오시지 않으니 보건선생님은 더는 기다릴 수 없겠다며 119 구급차를 불렀다. 10-15분정도가 지나자 구급차가 오고 나는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119를 탔다.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순종이에게 119 구급요원이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냐고 물으니 7시30분 등교전에 담배를 피울 때 가슴이 따끔하더니 아침에 생활지도를 받고 8시30분 화장실에 갔을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파졌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순종이는 중학교 3학년이고 10일전에 교내흡연과 학교주변 골목에서 교복을 입고 흡연을 하고 교내에서 상습 도박을 해서 흔히 징계라고 하는 생활지도를 받는 중이었다. 오늘도 징계를 받느라 다른 학생들 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청소봉사활동을 했다. 열흘 전에 선도위원회가 열릴 때 순종이는 엄마 앞에서 우리 앞에서 다시는 흡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다짐과 지도가 무색하게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할 때마다 담배를 피워온 것이다.

구급요원은 늑골쪽에 통증을 호소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더 자세하게 할 수 있겠다고 하며 중앙병원 응급실로 순종이를 옮겨주었다. 순종이 어머니가 도착을 해서 다급하게 순종이를 살핀다. 응급실 직원들이 달려와 순종이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의사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이시냐며 언제부터 아파했는지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리고는 지금 보여지는 것으로는 특별한 외상이 없어 보이고 단순히 근육에 경련이 온 것 같다며 응급실에 있을 필요 없이 소아과 진료를 받고 돌아가면 되겠다고 한다. 순종이는 소아과 진료에서 원래 몸이 마른 아이들이 특별한 원인이 없이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밥 잘 먹고 편하게 쉬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약 4일치를 지어주시고는 4일 뒤에 약을 끊고 통증이 생기면 그때 진료를 받으러 다시 오면 된다고 하셨다.

순종이에게 집에 가서 푹 쉬라고 돌려보내고 나는 학교로 왔다. 학교에 도착하니 전화가 빗발친다. 순종이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 하시는 학년부장님, 생활지도 선생님, 보건선생님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의사선생님께 들은 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흔히 성장기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는데 부장님께서는 걱정 안 하게 생겼냐며 순종이가 쓴 반성문을 보면 알 것이라고 하신다. 순종이가 생활지도를 받으면서 쓴 반성문을 보여주신다.

“ …이제는 담배를 진짜 안 필 것이다. 절대로 학교에서는 안 핀다. 학교에 8시에 도착인데 어쩔 땐 너무 졸려서 더 자고 싶은 데도 겨우겨우 학교에 간다. 학교가 끝나면 봉사를 하는데 허리가 아파 죽겠다. 뭔 봉사가 사람 잡겠다. 그동안 학교 다니기 참 쉬웠다고 3학년이 되니 느낀다. 담배 안 걸린 녀석들 학교 참 쉽게 다니는 거다. 담배 때매 사람 한명 죽겠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 징계 빨리 끝내고 싸돌아 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쉬는 시간에도 졸린데 잠도 못자고 독서를 한다. 힘들다. 진짜 그놈의 담배 때매 이렇게 고생을 한다. 다시는 안 필 것이다. 도박도 안 할 것이다. 오늘 어떤 애들이 담배 걸려서 교무실에 왔다. 저놈들은 징계 받아서 정신차려야 한다. 학교에서 담배 피워서 죄송합니다. 어디 가서 학교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짓 하지 않겠습니다. …”

반성문을 읽는데 난 피식 웃음이 난다. 순종이 답다. 많은 아이들이 교칙을 위반해서 벌을 받으면서도 벌을 받는 것이 억울하고 이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장님은 ‘죽겠다, 사람 잡겠다’는 순종이의 반성문이 걱정스럽다고 하시지만 난 순종이가 어쨌거나 다시는 담배 피지 않고 도박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기 초에 순종이를 보면서 아예 ‘이 녀석에게 도덕성이라는 것이 있나, 뇌라는 것이 존재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반성문을 보니 순종이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식이란 것이 녀석의 머리에 자리잡기 까지는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10일 동안 생활지도가 진행되는 동안 순종이는 정해진 등교시간 8시를 절반도 못 지켰고 청소봉사도 성실하게 하지 못하여 정해진 날 보다 며칠이 더 늘어났다. 그래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단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를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IP *.233.123.232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1.05.03 12:52:08 *.10.44.47
내가 연주였음 난 어떻게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결국 너 이상의 해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하지만...

천직이란게 있는 게 맞다 싶다.
오늘도 너의 길위에서 삶을 맞는 네게 축복을 보내고 싶다. ^^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09:52:27 *.203.200.146
천직인가요?ㅎㅎ
사실 가끔 아이들과 지내는게 천직인가보다 생각을 하는 때가 있어요.
정말 쓰러질 듯 아프다가도 교실에 들어가서 애들이랑 있다보면 어느새 기운이 샘솟는 느낌이 들거든요 ㅎㅎ
언니의 축복 감사히 받을께요^--------^
프로필 이미지
강훈
2011.05.03 13:46:52 *.219.84.74
고삐리 시절 체육관 뒤에서 담배피우다 얻어 터졌던 날들이 생각---
세상 좋아졌구나...생각--
우리 아들 놈 담배 피우면 어떻게 할까 하는 쓸데없이 이른 생각--

끊었는데 요즘은 자꾸 땡기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09:55:53 *.203.200.146
세상 정말 좋아졌어요.
 담배피다걸리면 금연침도 맞게 해주거든요 공짜로다 1주일 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1.05.04 07:21:13 *.111.206.9
옛 생각 나는군. 난 고3부터 담배를 폈었지. 용케 걸리지 않았는데, 학교와 군대에서 몰래 피는 담배는 특히 맛있어. 

순종이의 발전상 보다, 연주의 긍정적인 시각이 더 보기 좋다.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10:07:26 *.203.200.146
고등학생이 담배피는 것은 이해가 되요. 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라 남자애들이 담배피는 것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담배가 애들의 질에 따라 피고 안 피고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피부 뽀송뽀송한 중학생들이 피니까 그것이 수용이 잘 안 되는 거죠ㅎㅎ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근데 이런 긍정만으로는 현실이 벽에 부딪히기도....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1.05.04 08:32:58 *.236.3.241
상대방과 나 사이에 완충지대를 두지 않으면
폭발하기 쉬울 것 같은데, 연주가 아이들을
품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ㅎㅎ

순종이가 나중에 군대가고, 사회생활하면서 연주 샘 많이 그리워하겠다.^^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10:15:33 *.203.200.146
순종이가 저를 그리워 할까요? ㅎㅎ 뭐 저도 사고쳤던 애들이 더 궁금하긴 해요.
학교다닐 때 포기모드였던 녀석이 대학갔다고 자랑하면서 연락오면 더 기특하기도 하구요.
교사들에게 필수과목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는 생각을 종종해요. 교사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반드시 영향이 미치거든요. 교사 스스로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고.
노력중인데 조만간 저 득도할 듯 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1.05.04 09:43:02 *.30.254.21
난 고2 때부터 폈는데...
술과 담배를 함께 배웠지..ㅎㅎㅎ

이유를 알 수 없는 갑갑함,
내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자신에 대한 방치...였던 것 같아..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삶의 의미를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이 든다...

연주야..
사부님의 [깊은 인생]에 스승님에 대한 얘기 나오잖니..
너가 읽으면 특히 좋겠더라...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10:17:32 *.203.200.146
고딩시절에 중딩시절에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전 이제야 조금씩 알겠는 걸요 ㅎㅎ

<깊은 인생>...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조만간 읽고 북리뷰해야겠어요.
프로필 이미지
미나
2011.05.05 08:40:46 *.19.165.159
ㅎㅎ.. 저는 순종이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건 왜일까요?? ;;

아.. 아이들이랑 이런 생활이라니. 왠지 부러워요~!^^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10:24:00 *.203.200.146
그런가요...순종이에게 감정이입이라...내공이 대단하세요. ㅎㅎ
저는 아직 50% 요.
순종이는 학교가 재미없고 어른들의 잔소리가 지겹고...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생각이 확고해요.

이런 생활이 부러운가요? 아이들과의 관계와 그들의 삶이 재밌있고 흥미진진 하죠...관찰자로 볼 수만 있다면 ㅎㅎ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5 10:49:51 *.42.252.67
내가  학교 선생님이엇을면 어땠을까?
완전 남자 아이들이란 뒤엉켜 놀았을 것 같아.
담 넘는 아이 궁둥이 밀어 주고, 담배 피우는 아이 열까치 물려 불 땡겨 주고
반 전체를 조직으로 만들었을거야.
아이고 연주야 너가 선생님이길 참말 다행이다.
그런 아이들도 철들면 다 아빠되고 지는 안 그런 척 하며
자식에게 잔소리하며  기른다. 봐봐 지금 연구원하며 인생을 빡세게 살아가던
우리 조원들 고딩때부터 다 담배피웠잖아. 요즘 세대가 빨라져 중학교로 내려간게야.
우리 둘째도 고딩3학년 부터 담배를 피우는데 아마 외로워서 그러지 싶어.....
전화로 항상 그러지.
야~ 필라면 당당히 피워. 컴컴한 놀이터 구석, 담 아래 쭈글탱이 앉아 불량스러운 아이처럼 피지말고
그랬더니 별로 재미가 없나봐. 건이처럼 몰래 피는 담배가 맛있는 걸 난 미리 알았지.ㅎㅎ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1.05.06 10:26:08 *.203.200.146
그죠...정말 세대가 빨라져서 중학교로 내려오니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자꾸 예전에 나를...내가 다닌 학교를 생각하게 되니까요.
비교없이 분별없이 지금의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저에게 온전하게 주어지기를 바래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칼럼. 두친구 그후 - 겁나는 반성문 [14] 연주 2011.05.03 2401
2371 사랑과 우정을 넘어 [10] 2011.05.03 2081
2370 방사능비를 어찌할까 [11] 박상현 2011.05.03 2114
2369 [01]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18] 최우성 2011.05.03 2107
2368 춤과 웃음 [14] 이은주 2011.05.03 2399
2367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스트레스 [13] 달팽이크림 2011.05.03 2055
2366 칠연계곡 다녀오던 길 file [18] 신진철 2011.05.03 2191
2365 [호랑이] 시장성 진단에 대한 설명 crepio 2011.05.03 2130
2364 사물열전 (사물에게 말걸기) file [14] 사샤 2011.05.02 2129
2363 자식은 태어 난지 삼 년이 지나면 부모 품을 벗어난다 [14] 루미 2011.05.02 2440
2362 05. 마음 구하기 [14] 미나 2011.05.02 3077
2361 그 별들은 다 어데로 갔을까 [8] 신진철 2011.05.02 2331
2360 [양갱4] 맞선 자, 거스른 자, 비껴간 자 file [16] 양경수 2011.05.02 3901
2359 5. 상황에 대처하기 [16] 미선 2011.05.02 2021
2358 나비No.5 - 보스열전 [9] 유재경 2011.05.01 3766
2357 [늑대5]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10] [1] 강훈 2011.05.01 2139
2356 [평범한 영웅 005] 떠나거나 아니면 새로운 철학을 찾아라 [12] 김경인 2011.05.01 3806
2355 라뽀(rapport) 49 - 마음의 혹 [3] 書元 2011.04.30 2056
2354 단상(斷想) 62 - relax & relax file [3] 書元 2011.04.30 5884
2353 [호랑이 실험 11- 세미나 후, 4장 구성 재정리 및 향후 호랑이 스케쥴] [3] 수희향 2011.04.28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