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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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눈이 떠졌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물로 목을 축이고 베란다 창문을 보면 푸른 새벽이다.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한 하늘 빛이 조금 뒤 핑크 빛으로 물이 든다. 어김없이 이 시간에 눈이 떠지고 나는 변기 밑동에 오른쪽 뒷다리를 들고 오줌을 쌌다. 그 시원함과 짜릿함에 눈이 실실 감긴다. 머리부터 꽁지까지 타라락 털고 슬금슬금 자리로 왔다. 특별히 정해진 내 자리는 없다. 하지만 엔지의 몸에서 최대한 가깝지만 그녀가 돌아누울 때 깔리지 않는 정도가 내 자리이다. 은은한 오렌지색 불빛 사이로 자는 엔지가 보였다. 엔지는 새벽에 물을 마시고 오줌을 싸는 우리를 위해 스탠드를 켜놓고 잤다. 불빛에 깊은 잠을 잘 수 없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던 그녀의 이불 자락이 흘러 내려져 있었다.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매일 켜있던 스탠드인데 오늘따라 불빛에 비친 엔지의 자는 모습이 예뻤다. 나는 코로 이불을 들추고 살그머니 엔지의 겨드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엔지의 팔을 베고 누웠다.
이 보다 행복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녀의 숨결이 내 뺨에 닿자 목덜미에 잔털이 곤두서면서 짜릿했다. 해가 뜨지 않고 이대로 계속 잠을 잤으면 좋겠다. 감겨진 그녀의 속눈썹이 때로 파르르 떨렸다. 나의 코끝의 차가움에 그녀가 깰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살며시 쓸어 넘겨 그녀의 자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그녀의 하얀 목을 보니 나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이런 감정은 인간들만이 가진 감정이다.
나는 단지 본능에 충실했다. 코끝을 들어 킁킁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나에게 밥을 주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엔지의 냄새다. 나는 그녀의 독특한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이 냄새는 나를 늘 기분 좋게 한다. 그녀의 겨드랑이에다 슬그머니 코를 박고 자면 코 끝의 따뜻함에 잠이 잘 왔다. 그 날 밤에도 엔지의 팔에 누워 자다 코를 심하게 코는 바람에 이불 밖으로 쫓겨났다. 쫓겨나며 방울이를 안 건드려서 천만다행이다. 자는 방울이의 코털이라도 건드렸으면 허연 이를 들어내고 흑 곰처럼 대드는 방울이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렌지 빛 사랑은 현실로 돌아왔다.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 십중팔구 알게 되겠지만, 그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인간과 나누는 사랑은 종족번식을 위해 상대방을 찾아 짝짓기 본능과는 전혀 다르다. 사랑은 미묘하고 어려운 주제이다.
본능적으로 짝짓기를 하고 한번도 보지 못하고 살지 못하는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엔지와 함께 한 집에서 먹고 산 칠 년이란 세월을 사랑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가? 사랑은 인간이 품는 감정이다. 그런데 인간이 개를 팔에 안거나, 무릎에 앉히고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 그 감정이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들도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느낄 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다듬거나 토닥거린다면, 우리도 가만히는 있지만 그 사람을 따르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은 사랑을 받고 싶고 또 주고 싶은 마음에서 어린아이가 하듯 우리의 몸을 으스러질 만큼 꽉 안아주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의 눈에는 평소에 못 보던 눈빛이 서리고 손길도 달라진다. 사랑이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사랑을 모르던 우리들에게 사랑을 알게 해 주는 것도 사람이고, 사랑하다가도 사랑을 버리고 떠나는 것도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사랑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인가 보다. 우리 개들은 안아주거나 만져 주는 손길에서 사랑이 느껴지면 그대로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죽는 날까지 변함없니 충성하고 사랑하는데 말이다.
인간과 나누는 사랑의 신비를 완전히 다 밝히지는 못하더라도 그 일부분인 인간의 공통적인 한 가지 특징은 분명한 것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착하든 못되든 인간은 하나 같이 외로운 존재라는 점이다. 배우자가 있어도 부모가 있어도, 형제자매가 있어도, 모두 외로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사람들이 무릎에 안거나 부를 때 달려가거나 침대 발치에 눕기만 하는 것도, 아니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기분이 들고 나도 모르게 꼬리가 살랑댄다.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와 엔지는 변함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뜨거운 남녀간의 열정적인 사랑 같은 것도 아니고,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랑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으면 좋고 바라보면 잠이 오는 편안한 사랑이었다. 인간들의 변화하는 사랑에 버려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외롭다고 그들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지 않아도 되었다. 엔지와 나의 사랑은 믿음과 신뢰로 엮어진 단단한 동아줄 같은 사랑이었다. ‘변함없는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사랑은 변한다~
뭐, '난 지금 더 사랑해.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진짜 사랑이야' 쯤으로는 안 팔릴까요? ㅋㅋㅋ
왜 지금 시점에서 뜬금없이 우성오빠의 술타령이 생각날까요?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먹지' ㅋㅋㅋ
'아무리 시간이 흘러봐라. 널 미워하나, 더 사랑하지' ^^;;
참, 언니 '나는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는 김정운 교수 말고 다른 사람의 책.
나도 광고만 봤고 아직 안 봤다우, 담번에 서점에서 직접보고 당기면 사려구요.
근데 그거 제목은 끝내주지 않우?
제목을 정하는 거이 미뤄둔 숙제!

나는 '난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와 노는만큼 성공한다 주문했어.
전적으로 동감이야. 노는만큼 성공하는 거.
나도 이론으로는 다 알아. ㅋㅋ 그 상황에 맞게 그 연령의 열정에 맞게
사랑이 진행 된다는 거. 나이가 먹을수록 익어가는 과일처럼 은근한 향기가 있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선아 니가 사랑이 변한다고 하니
제일로 재밌다. 너는 안 변한다고 우겨야 니 책이 팔리지.
사람들은 다 변한다고 믿는데
안 변한다고 박박 우겨야 책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 아니야.ㅎㅎㅎ
진짜로 아침부터 죄다 사랑타령을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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