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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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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5일 08시 4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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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시모키타자와의 골목을 걷는다. 늦은 낮잠 , 개운치 않은 기분을 전환해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2월의 짧은 해는 벌써 졌다. 무작정 길을 걷는다. 공기가 차갑다. 하얀 입김과 함께 주변의 풍경들이 그녀의 시야 속으로 어두운 물결처럼 밀려 들어온다.

 

뎅뎅뎅뎅, 소리와 함께 내려온 노랗고 까만 줄무늬 막대가 길을 가로막는다. 철도 건널목에 멈춰서서 잠시 숨을 깊이 들이켰다 내쉰다. 괜히 몸이 어스스해져 패딩의 앞깃을 여며 본다. 덜컹대는 소음과 함께 사람을 가득 실은 시부야행 전철이 지나가고, 앞을 가로막고 있던 기다란 바가 허공의 위치로 되돌아간다.

 

일시 정지되어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플레이되고, 그들과 함께 철길을 가로지르던 그녀는 순간, 먹먹해진다. ‘나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물론 모든 길은 어디론가 이어질테지만, 어딘가를 원하지 않는 그녀에게는 사방 모든 곳이 마치 불가능한 선택인 느껴진다. 때다. 전화벨이 울린다. 다행하게도. 그녀는 짐짓 태연한 다시 일상을 연기해내고, 그렇게 무심한 시모키타자와의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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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는 서울과는 다르게 심심찮게 철도 건널목 - 후미키리(踏切) - 만날 있습니다아마도 전쟁을 겪은 서울이 1950년대 이후 자동차를 중심으로 길이 형성되었다면, 도쿄는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철길이 그대로 유지된 탓이 아닐까 얼핏 짐작해봅니다.     

 

그런데 철도 건널목은 횡단보도와는 또다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횡단보도의 경우 빨간 신호와 차의 흐름이 사람의 횡단을 차단한다면, 철도 건널목은 기다란 막대가 내려와 직접 몸짓으로 흐름을 막아 세웁니다. (이게 이상하게도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또한 횡단보도의 경우 길을 건널때도 사람과 자동차와의 긴장감이 유지되는 반면, 철도 건널목은 뎅뎅뎅, 하는 신호음과 함께 바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온전히 인도 혹은 차도로 유지됩니다

 

뜬금없는 고백입니다만, 제게는 은밀한 욕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철도 건널목처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독립적인 이미지와 텍스트가 각자의 흐름을 지닌 만나 다른 음률을 들려주고 새로운 풍경을 그려낸 다시 각자 흘러가게 하는 .

 

발터 벤야민은사유 이미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에 끌리는 것은 지식에 대한 없는 어떤 은밀한 반항심 때문이 아닐까?” 저는 또한 반대의 이유로 텍스트에도 끌리네요. 비록 가닿지 못하는 헛된 몸짓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희망은 상실의 자리에서 태어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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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5, 2012 *.216.27.8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는 건 언제나 멋지지.
난 '말씀이 육체를 얻어'라는 말이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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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6, 2012 *.10.140.146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등교길에 늘 철길을 지나고는 했지요. 저 멀리 해운대역에서 동해남부선 기치가 출발하면 땡땡땡 소리가 들리고 차단기가 내려오지요. 역무원도 한분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빨간 깃발을 들고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셨던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가지가 만나는 그 교차점에서 잠시 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바가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을 하는군요.

음률을 듣고 예전 풍경과 새로운 풍경을 그려 볼 수 있는 짬을 만들어주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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