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명석
  • 조회 수 433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7년 1월 11일 00시 05분 등록
몇 해 전 일이었다. 여느 날 아침처럼 나는 그날도 혼자 남산길을 걷고 있었다. 때마침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휙! 휙! 휙!” 하며 세 사람이 내 옆을 바람 가르듯 지나쳤다. 순간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지나 앞으로 뛰어간 세 사람은 모두 흰 지팡이를 든 맹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사람이라면 으레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 터에, 그 세 사람은 지팡이를 가로로 세워서 도로 옆에 줄지어 선 철책에 닿을 듯 말 듯 해가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진홍의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서-



정진홍은 학계를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술가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 이어 ‘완벽에의 충동’ 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그 중에는 정약용, 안중근, 유일한이나 잭 웰치, 처칠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도 많고 낯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로서’ 산 놀라운 사람만 모아놓았습니다. 그들은 명쾌하고 분명한 정진홍의 문체에 의해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정진홍이 소개한 사람들 못지않게 정진홍의 에너지도 매력적이거든요.


어느날 산책 중에 정진홍은 달리기를 하는 맹인들과 부딪칩니다. 맹인들의 뜀박질! 그것은 그의 말처럼 눈뜬 사람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반란이고, 눈뜬 사람들의 소심함을 꾸짖는 준엄한 가르침이었지요. 어쩌면 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저하며 포기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북돋워준 의도치 않았던 격려였습니다.


앞을 못보는 그들은 산책을 하는 것만도 용기를 내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걷기에 익숙해진 그들은 달리기에 도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휙! 휙! 공기를 가르며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했을까요. 무수히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진 다음에 달릴 수 있게 되었겠지요. 그다음에 그들은 무엇에 도전했을까요. 등반? 아니면 여행?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도전의 맛을 알고있고, 산다는 것은 곧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제게 2007년은 2막인생의 원년입니다. 관념만 키워놓았을 뿐, 현실적인 수완이라곤 없는 제가 한심합니다. 이제 시행착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 달리기를 해 보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무둥치같은 몸이 부끄럽습니다.

IP *.189.235.1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76 기질과 강점을 목격하다 [1] 어니언 2022.09.29 711
4175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이야기 1. 정재엽 2018.08.15 712
4174 목요편지 - 어린시절 두 장면 운제 2018.10.11 712
4173 진정한 여행 [1] 불씨 2022.03.16 712
4172 화요편지 - 사자처럼 당당하고 양처럼 온화하게 [2] 종종 2022.04.06 713
4171 목요편지 -세번째 이야기 [3] 운제 2018.03.08 714
4170 [내 삶의 단어장] with, 함께 할 수 없다면 에움길~ 2023.07.10 714
4169 친절하라, 나 자신에게, 모두에게 [1] 어니언 2022.01.20 715
4168 [월요편지 107] 직장인이 확실하게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 습관의 완성 2022.05.08 715
4167 65세, 경제적 문제없이 잘 살고자 한다면?(6편-저축과 투자) [1] 차칸양 2018.10.30 716
4166 [금욜편지 70- 1인 지식기업가 11년차 새해목표] [8] 수희향 2019.01.04 716
4165 [수요편지] 니체가 월급쟁이에게 장재용 2020.03.04 716
4164 4월을 맞이하며 [4] 어니언 2022.03.31 716
4163 결심의 과정 [2] 어니언 2023.10.12 716
4162 변화경영연구소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file [2] 차칸양 2018.08.14 717
4161 [일상에 스민 문학]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정재엽 2018.11.07 717
4160 [라이프충전소] 우리가 실수를 열렬히 환영해야하는 이유 [1] 김글리 2022.05.13 717
4159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자녀가 직접 고르게 하자! 제산 2018.12.03 718
4158 [라이프충전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법 2. 많이 모방할 것 [1] 김글리 2022.05.27 718
4157 [금욜편지 47- 신화속 휴먼유형- 안티고네형 4- 성장포인트] [2] 수희향 2018.07.27 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