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명석
  • 조회 수 434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7년 1월 11일 00시 05분 등록
몇 해 전 일이었다. 여느 날 아침처럼 나는 그날도 혼자 남산길을 걷고 있었다. 때마침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휙! 휙! 휙!” 하며 세 사람이 내 옆을 바람 가르듯 지나쳤다. 순간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지나 앞으로 뛰어간 세 사람은 모두 흰 지팡이를 든 맹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사람이라면 으레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 터에, 그 세 사람은 지팡이를 가로로 세워서 도로 옆에 줄지어 선 철책에 닿을 듯 말 듯 해가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진홍의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서-



정진홍은 학계를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술가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 이어 ‘완벽에의 충동’ 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그 중에는 정약용, 안중근, 유일한이나 잭 웰치, 처칠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도 많고 낯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로서’ 산 놀라운 사람만 모아놓았습니다. 그들은 명쾌하고 분명한 정진홍의 문체에 의해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정진홍이 소개한 사람들 못지않게 정진홍의 에너지도 매력적이거든요.


어느날 산책 중에 정진홍은 달리기를 하는 맹인들과 부딪칩니다. 맹인들의 뜀박질! 그것은 그의 말처럼 눈뜬 사람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반란이고, 눈뜬 사람들의 소심함을 꾸짖는 준엄한 가르침이었지요. 어쩌면 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저하며 포기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북돋워준 의도치 않았던 격려였습니다.


앞을 못보는 그들은 산책을 하는 것만도 용기를 내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걷기에 익숙해진 그들은 달리기에 도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휙! 휙! 공기를 가르며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했을까요. 무수히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진 다음에 달릴 수 있게 되었겠지요. 그다음에 그들은 무엇에 도전했을까요. 등반? 아니면 여행?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도전의 맛을 알고있고, 산다는 것은 곧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제게 2007년은 2막인생의 원년입니다. 관념만 키워놓았을 뿐, 현실적인 수완이라곤 없는 제가 한심합니다. 이제 시행착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 달리기를 해 보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무둥치같은 몸이 부끄럽습니다.

IP *.189.235.1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76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1] 종종 2022.07.12 720
4175 [금욜편지 31-1인회사 연구원 (여성편-싱글여성)] [2] 수희향 2018.04.06 721
4174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자녀가 직접 고르게 하자! 제산 2018.12.03 721
4173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2. 기쁨의 책읽기를 잃어버린 사회 제산 2019.04.14 721
4172 친절하라, 나 자신에게, 모두에게 [1] 어니언 2022.01.20 721
4171 [라이프충전소] 나답게 산다는 게 뭔지 보여준 한 사람 [2] 김글리 2022.04.14 721
4170 [월요편지 107] 직장인이 확실하게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 습관의 완성 2022.05.08 721
4169 목요편지 - 친구여! 운제 2018.11.29 722
4168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확실한 자세 [1] 어니언 2022.12.01 722
4167 [일상에 스민 문학]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정재엽 2018.11.07 723
4166 목요편지 -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두 운제 2019.01.18 723
4165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15. 사춘기 나를 키운 책들 제산 2019.02.24 723
4164 목요편지 - 6월 중순에 [1] 운제 2019.06.14 723
4163 [라이프충전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법 2. 많이 모방할 것 [1] 김글리 2022.05.27 723
4162 화요편지 - 댄스 서바이벌? 리더십 서바이벌! 종종 2022.10.11 723
4161 [일상에 스민 문학] 마음편지의 무거움 [6] 정재엽 2018.05.08 724
4160 매일 축제처럼 살 수 있다면 file [2] 차칸양 2018.05.15 724
4159 65세, 경제적 문제없이 잘 살고자 한다면?(9편-노년의 일과 꿈) [4] 차칸양 2018.12.04 724
4158 [금욜편지 79- 나의 터닝포인트] [4] 수희향 2019.03.08 724
4157 백스물여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만트라 [2] 재키제동 2017.11.24 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