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박상현
  • 조회 수 2921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0년 11월 1일 11시 58분 등록

우주는 톱밥과 두루마리 화장지 심과 양말 한 짝과 쳇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이름은 엠페도클레스, 혀가 꼬인다면 간단히 햄스터라고 불러 달라. 하지만 잊지는 말 것. 만물의 근본이 흙·공기··불로 구성되었다는 명쾌한 우주론을 펼친 이가 바로 나였다. 種은 바뀌었지만 난 여전히 세계의 본질을 읽는데 일가견이 있다.


나는 환생했다. 나의 神性을 입증하기 위해 에트나 화구에 몸을 던졌다. 끈적거리는 용암에 나의 위대한 두뇌가 잠기기 직전 돈오돈수의 깨달음이 왔다. 말하자면 나는 서양인 최초의 부처였다. 나의 멘토 석가모니 싯다르타가 나의 시대에 함께 했다면, 그래서 나의 신성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깨달음으로 더욱 빛날 수 있음을 알았다면 애꿎게 용암 천지에 뛰어들어 “I’ll be back”을 외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내가 인간이었을 시절, 불생불멸불변(不生不滅不變) 4원소는 사랑과 투쟁의 힘에 의해 결합·분리되고 그에 따라 만물이 변형된다고 한 것을 기억하는가. 세계는 사랑이 지배하는 시기, 투쟁의 힘이 증대하는 시기, 투쟁이 지배하는 시기, 사랑의 이 증대하는 시기의 4(四期)가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했었지. 나는 이렇게 읊었었다.

우선 들어라, 만물의 네 근원을 : 빛나는 제우스(), 삶을 가져오는 헬레()와 아이도네우스의 눈물(바람)로써, 지상의 샘을 적시는 네스티스()

만물은 사랑의 힘으로 결합되고, 미움에 의해 분리된다. 이 커다란 두 원리로 인해 세계는 끊임없이 결합, 분리를 반복한다고 했었지. 내가 햄스터로 환생한 것도 이 원리에 따른 것이다. 나는 낮에는 양말 속에서 수면을 취하고 저녁이 되어야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은 천적들을 대적하기 두려워 해 내가 낮을 피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을 이용해 아이도네스의 쳇바퀴를 돌린다. 불을 쥔 神에서 흙에 선 철학자로, 이젠 저승의 신 아이도네스(하데스) 순풍을 받아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가 나다.

어젯밤에도 여느 때처럼 쳇바퀴를 돌렸다. 쳇바퀴는 나에게 놀이라기 보다는 경건한 의식의 제단이다. RPM 120~130회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주파수 연결이 끊겨 세상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233초의 시간을 쳇바퀴 속에서 온전히 몰입하고 당진 사는 강아지 오리오에게 바통을 넘긴다. 녀석은 나보다 조금 긴 3 33초의 시간 동안 달밤에 체조를 한다. 뒷다리를 벌린 채 천정을 우러러 보는 것, 그것이 오리오가 세상과 교신하는 방식이다. 그 다음은 보스포러스 해협의 괭이 갈매기다. 흰 몸 색깔에 갈매기치고는 특이하게 왼쪽 눈이 얼룩인 갈매기 조나단은 토프카프 궁전을 왼쪽으로 끼고 마르마라해를 향해 수평으로 날다가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자 마자 300미터를 수직 상승한다. 토프카프 궁전의 궁륭과 다리의 각이 정확히 90도가 되었을 때 조나단은 좌측으로 선회해 반경 300미터의 원을 그린다. 이제 안심이다. 우리의 조그만 노고 덕분에 지구는 중력가속도를 유지했고 사람들은 갓 데워진 아침을 선사 받았다. 하데스의 세계도 무너지지 않고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피곤했다. 검은색 양말 속을 비집고 들어가 톱밥이 주는 아늑함에 몸을 맡겼다. 위대한 미션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밤 9시부터 명상단계인 베타파 상태에 진입해야 한다. 주인집 아들래미가 톱밥더미에 묻힌 채 돌돌 만 나의 몸을 젓가락 쥐 듯 들어올려 비행시키지만 않았어도 평온한 일상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녀석은 나를  수평으로 두 번, 수직으로 두 번씩 비행을 시키고 나와 눈을 맞춘 채 한동안 미소를 짓더니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이빨간 지가 꽤 돼서 손가락을 어흥~ 깨물까 생각했다가 어른 체면에 이러는 게 아니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단잠을 깨고 보니 녀석의 비행 궤적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갑작스러운 공중부양에 정신줄을 놓고 버둥거리고 있을 때 녀석이 뭔가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사라....사라. 돈 주고 뭘 사라고 했을 리는 만무하고. 녀석의 발음이 시원치 않아서….사라

그래, 녀석은 살아라고 말했다. 녀석은 허공에 커다란 창문을 그리고 창문을 연 후 나를 창문 안으로 집어 넣으며 분명 그렇게 말했다.

사지를 말고 정적에 싸인 나는 녀석에게 주검이었던 것이다. 창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요즘 아이들의 정신 세계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알겠다. 이제 네 번째 파도를 타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 아이는 나에게 네스티스의 샘물이 되었다. 세계의 구원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속도로  쳇바퀴를 돌리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이렇게 라도 나의 하루가 뜻밖의 사건들로 채색되지 않았다면, 지구를 지키는 일이 제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나는 설치류의 하루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네 번째 윤회를 준비할 때다. 이 생의 기억을 안고 나는 이제 무엇이 될까.

IP *.236.3.241

프로필 이미지
진철
2010.11.01 12:23:33 *.186.57.216
이번 주 칼럼들이..  점점 닮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는 자들이 있다. 아니 보았다고 감히 글 밖으로 내고 있다. 위험한 자들이다.
개파서블... 동청...그리고 밤새 지구의 자전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수퍼 햄스터..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용기를 내기 힘들텐데... 녀석들의 변신의 힘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날은 밤낮으로 변덕이고, 여름과 가을사이를 바삐 오가기 시작하는데..
바람만 여전하다. 좋다... 겨울부터 시작했던 그 바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다..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11.01 14:22:38 *.30.254.21
암튼,,,미치겠어..
재밌어서..
우리, 유끼들의 글은 왜이리, 유니크하니? ㅎㅎㅎ
다른 기수들도 이렇게 독특했을까? 스승님께 여쭙고 싶다..
emoticon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11.01 20:11:47 *.42.252.67
ㅎㅎㅎㅎ 오리오 출세했네. 역세 지속적으로 한 우물을 파면
사람들의 무의식에 인식이 되어지는 거지.
영화 한편 보고 인셉션처럼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오는 기분이야.

프로필 이미지
이병일
2010.11.02 08:39:24 *.93.136.83
형의 사유와 이해한 세계관이 햄스터로 환생한 엠페도클레스로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데 스키마가 충분하지 않은 저같은 독자에게는 짧은 글이지만 많은 지식과 비유가 주는 높은 주파수로 인해, 역설적으로  교신하기에 불안정함을 느낍니다. 형의 영화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매력이 형이 이미 충분히 가진 진중함을 조금 덜어주면서 제게는 어깨힘을 조금 뺀 우화로 다가오면 더 좋겠습니다. (물론 아시지요? 모든 평론가는 고작 몇줄로 소회를 토로하면서 정작 소설도 못쓴다는 것을요^^;)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11.03 08:19:12 *.10.44.47
오빠의 vehicle은 자유로운 마법의 양탄자군요.
시선이 다른 오빠가 보여주는 세상.
이젠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이 있어
우리의 세상이 더 입체적일 수 있어지겠죠?
어디서 보든 우린 결국 같은 것을 보고 있을테니까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92 하계연수 단상23 - 인연은 운명과 같이 일어난다 file [8] 書元 2010.11.07 2861
1991 칼럼. 꿈이 없던, 꿈이 없는 영덕이 [9] 김연주 2010.11.07 2609
1990 [칼럼] 서호납줄갱이의 비밀 file [12] 신진철 2010.11.06 8035
1989 여인혈전-그것이 사랑이었을까 [4] 신진철 2010.11.03 2495
1988 [먼별2] <단군의 후예: 사색하는 나무 디자이너 최성우님 인터뷰> [9] 수희향 2010.11.01 2704
1987 응애 39 - 문상을 다녀와서 [2] 범해 좌경숙 2010.11.01 2663
» 세계의 기원 [5] 박상현 2010.11.01 2921
1985 칼럼. '가가호호 아이둘셋' file [6] 이선형 2010.11.01 3852
1984 감성플러스(+) 27호 - 내일을 향해 써라 file [5] 자산 오병곤 2010.11.01 2454
1983 [컬럼] 리더의 철학! [7] 최우성 2010.11.01 2335
1982 [칼럼] 동청冬靑이라는 나무가 있다 [10] 신진철 2010.11.01 2771
1981 넌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7] 맑은 김인건 2010.10.31 2592
1980 '놓아버림'이 전환을 줄수 있을까? [5] 박경숙 2010.10.31 2987
1979 미션 개 파서블 [11] 은주 2010.10.31 2781
1978 칼럼. 4차원 성철이 [4] 연주 2010.10.31 2331
1977 라뽀(rapport) 29 - 나는 그녀가 그해 가을에 한 일을 알고있다. 書元 2010.10.30 2891
1976 하계연수 단상22 - 돈키호테가 풍차로 간 까닭은? file [2] 書元 2010.10.30 3217
1975 하계연수 단상21 - This is the moment. file [1] 書元 2010.10.30 2377
1974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내 주유소 충전소 오픈 [1] 덕평주유소 2010.10.30 2436
1973 중국및해외 홈페이지제작 및 홍보대행 서비스 [3] 박광우 2010.10.29 3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