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14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2월 25일 02시 30분 등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 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들을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 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 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 치며 웃기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2006년 가을호


20180826_144322.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4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195
223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file 정야 2020.06.15 1187
222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file 정야 2020.01.13 1179
221 [리멤버 구사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천천히 흘러야 한다 정야 2017.10.04 1176
220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169
219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160
218 [리멤버 구사부] 체리향기 [4] 정야 2017.01.16 1160
217 [리멥버 구사부]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라 [1] 정야 2017.07.14 1146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file 정야 2019.02.25 1144
215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정야 2021.08.02 1139
214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정야 2021.05.03 1137
213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1124
212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1121
211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file 정야 2020.06.01 1116
210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1115
209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file 정야 2020.10.26 1114
208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113
207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1112
206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file 정야 2020.07.13 1111
205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file 정야 2019.01.28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