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03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 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들을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 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 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 치며 웃기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2006년 가을호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 정야 | 2021.08.02 | 1048 |
223 |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 | 정야 | 2020.11.09 | 1048 |
222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 정야 | 2020.01.13 | 1047 |
221 | [시인은 말한다] 픔 / 김은지 | 정야 | 2020.12.28 | 1037 |
»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 | 정야 | 2019.02.25 | 1033 |
219 |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 | 정야 | 2020.11.02 | 1032 |
218 |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 | 정야 | 2020.06.15 | 1020 |
217 | [리멤버 구사부] 내가 담아낼 인생 | 정야 | 2017.11.07 | 1016 |
216 |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 | 정야 | 2020.07.20 | 1015 |
215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라 [1] | 정야 | 2017.06.20 | 1006 |
214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 정야 | 2020.08.10 | 1001 |
213 | [리멤버 구사부]인생이라는 미로, 운명을 사랑하라 | 정야 | 2017.10.04 | 997 |
212 | [리멤버 구사부] 좋은 얼굴 | 정야 | 2021.09.13 | 996 |
211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라 | 정야 | 2017.10.09 | 994 |
210 |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 정야 | 2019.01.28 | 993 |
209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992 |
208 | [리멤버 구사부] 괜찮은 사람 되기 | 정야 | 2021.07.26 | 991 |
207 |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 정야 | 2021.05.03 | 980 |
206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975 |
205 | [리멤버 구사부]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란 | 정야 | 2017.11.16 | 9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