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41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3월 25일 03시 09분 등록



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 저 찬란한 채찍



 

­『상처적 체질』,류근, 문학과지성사, 2010

 

KakaoTalk_20190322_175536964.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리멤버 구사부] 인생은 불공평하다 file 정야 2019.04.01 1541
163 [시인은 말한다] 잎 . 눈[雪] . 바람 속에서 / 기형도 file 정야 2020.12.14 1540
162 [시인은 말한다] 송산서원에서 묻다 / 문인수 정야 2021.07.12 1539
161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정야 2019.05.20 1536
160 [리멤버 구사부] 실천의 재구성 정야 2021.03.02 1524
159 [시인은 말한다] 나는 새록새록 / 박순원 정야 2021.02.08 1524
158 [리멤버 구사부] 우연한 운명 file 정야 2020.11.23 1523
157 [시인은 말한다] 무인도 / 김형술 file 정야 2020.09.07 1520
156 [시인은 말한다] 동질(同質) / 조은 정야 2021.02.22 1518
155 [리멤버 구사부] 사랑하는 법 file 정야 2020.08.03 1516
154 [시인은 말한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이진명 file 정야 2019.11.04 1516
153 [시인은 말한다] 수면 / 권혁웅 file 정야 2020.06.29 1515
152 [시인은 말한다] 오늘의 결심 / 김경미 file 정야 2019.12.16 1515
151 [리멤버 구사부] 정면으로 살아내기 file 정야 2019.10.14 1513
150 [리멤버 구사부] 워라밸 file 정야 2020.09.14 1507
149 [시인은 말한다] 넥타이 / 나해철 file 정야 2020.01.28 1505
148 [시인은 말한다] 밀생 / 박정대 정야 2021.04.19 1500
147 [시인은 말한다] 현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file 정야 2019.07.29 1491
146 [시인은 말한다]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file 정야 2019.11.18 1488
145 [리멤버 구사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천천히 흘러야 한다 정야 2017.10.04 1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