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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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는 보물을 얻어 일상으로 귀환한 이후로는 내내 행복하게 잘 살았냐구요? 그럴 리가요. 엄마로서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성장’이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관계라는 가설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신념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두 영역 모두가 이제야 가능성의 씨앗 정도를 발견한 왕초보 수준이었던 상황이니 그 신념조차 흔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안전한 길이라고 말하는 곳은 어디나 제겐 메마른 사막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도 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바로 그런 곳에서 저를 살리는 생명수를 발견하고 말았으니 어쩌겠어요. 어떻게든 그 샘이 마르지 않도록 잘 보살피며 어렵게 찾은 씨앗들을 잘 가꾸어가는 수 밖에요.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간 자유시간에 스스로를 돌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그 에너지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나누는 형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기왕 마음먹은 만큼, 아이들에게 가능한 가장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언제 나는 가장 건강한 에너지 상태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지요?
저의 경우에는 의미와 재미가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서툴기만한 엄마로서의 일상에서 그런 일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하는 과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찾은 것이 책읽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육아정보를 얻기 위해 육아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점 육아트렌드가 아닌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살리는 공부가 ‘육아’에 적용되고, 아이를 위한 공부가 ‘나’를 일으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위태롭게만 보이던 저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