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1년 9월 30일 14시 26분 등록

장미1. 집으로 가는 길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까지 부모님이 우산을 가지고 오셔서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우산이 없어서 끝까지 남은 두 아이 중 하나였다. 더 이상 기다려야 부모님이 오실 것 같지 않았다. 쓸쓸하게 조금 더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부숴져 못쓰게 된 우산을 하나 주워들고 얼굴만 겨우 가리며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오늘따라 집까지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치마는 비에 젖어 철판처럼 무거웠고 마구 뒤집어지기도 했다. 치마를 붙잡으면 우산이 날아가고 우산을 돌보면 치마가 뒤집히고 갈 길은 멀고 챙피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선 집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 중요했다. 아, 이제 집이 보인다. 그러나 엄마는 집에 없었다. 나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늘 그때 쓸쓸했던 그 마음이 기억속에 다시 떠오른다.”

우리 아이가 학교 교지에 올린 글의 일부다. 아니,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준비물 놓친 걸 학교까지 가져다주고 밤을 새워 숙제를 같이 해주고 학부모 모임에도 열심히 나갔건만 아이는 그렇게 우산도 없이 집으로 혼자 돌아오게 한 그 비바람치던 날만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 이 말이 가진 함축적 의미가 날이 갈수록 가슴에 와 닿아서 지금 쓰고있는 책의 제목으로 정하고 싶었다. 먼저 네이버에게 물어보니 이미 26권의 책이 이 제목을 달고 책으로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집을 그리워 하나보다. 모든 삶의 귀결은 집이다. 아니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나는 두 분의 어머니와 두 분의 아버지를 이 세상 밖에 있다고 하는 집으로 떠나보냈다. 시부모님은 먼 도시에 살고 계셨기에 임종을 지켜 드리진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그 분들의 모습을 새겨 두었고 요즈음도 풀로 덮어 둔 집은 종종 찾아간다. 남편의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오고 가는지 부모님에 대한 어떤 추억들을 남겨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땐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만 내가 느낀 건 어머님께서 조금 죽음이 두려우신 것 같았다. 쓸쓸한 표정으로 저기 저 곳에 누우러 가야한다고 말씀 하셨다.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직 생생하게 그 체온과 마지막 날들을  기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든지 함께 다니셨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에는 점점 더 두 분이 서로서로 위로하면서 정말  남부럽게 정답게 사셨다. 그러더니 두 분이 같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당번이 되어 아버지 곁을 지키게 되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내게 큰 선물을 주셨다. “나는 이 한세상을 참 잘 살다가 간다.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았고 가고 싶은 곳도 다 가 보았다. 이젠 더 바랄 것이 없다. 참 감사한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당신이 지금 어딘가 불편해서 병원에 계시지만, 당신의 불편함 이전에 무언가 우리들에게 선물을, 무언가 좋은 기억을 남겨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우리가 한가지 아버지께 잘 못한 일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갈증이 나시고 또 바로 전에 이미 드셨다는 걸 잊으셔서 계속 10개도 넘게 야쿠르트를 드셨다. 우린 아버지께 그러시면 당뇨에 걸려서 힘들게 되니 이제 그만 절제해야 된다고 하며 더 이상은 야쿠르트를 드시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찹쌀떡도 드시고 싶다고 했다. 그것을 우리는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 친동생인 우리 고모를 앞장세워 아래층으로 내려가셔서 기어이 찹쌀떡을 사서 맛있게 드셨단다. 고모는 우리와는 좀 다른 입장이어서 아버지의 그 마음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셨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 고모가 아버지의 청을 들어준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땐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던 오빠도 똑 같이 그때에 우리가 옳다고 생각 하는데로 행동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죽어갈 때에는 내가 하고 싶다는 걸 다 하게 해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내일을 위해 참아야만 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일 것 같다. 더구나 내가 기운이 없어져서 남에게 몸을 맡겨야 할 때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시간에 찹쌀떡을 드셨기에 사는동안 특별히 찹쌀떡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픈 추억에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히려 조금 재미있게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년 연상이고 더 오래 아프셨지만 아버지를 앞세우고 꼭 100일째 되는 날 아버지에게로 떠나가셨다. 두 분은 지금도 그렇게 손을 꼭잡고 어디든지 다니시며 즐겁게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 뜻에서 참 복이 많다. 부모님이 마지막에 우리에게 주고가신 이 충만한 기쁨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데 참 평화롭게 부모님을 추억하게 해준다. 간절히 바라건데 나도 마지막 순간을 우리 부모님처럼 좋은 모습으로 가고 싶다.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면 언제나 미소가 머금어지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집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된다. 나는 다행히  아름다운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기에, 내가 지상의 집을 떠나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때 조금은 즐겁게 또 조금은 기대를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렇게 기도를 시작한다.

오, 주님!

내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아십니다. 어디에서든 내가 나서야 일이 된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타인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 나의 과도한 열정을 다스려 주소서.

사색하되 사변적이지 않고 도움을 주되 지배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게 하십시오.

내게 엄청난 지혜가 쌓여 있어 혼자만 가지고 있기에 아깝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나 주님, 내게도 친구 몇 명은 필요합니다. 잔소리 속에 불필요한 것을 낱낱이 열거하지 않게 하시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직관을 허락하여 주소서.

내 몸의 아픔과 병에 대해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시오. 병의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엄살에 대한 유혹은 점점 커집니다. 남의 엄살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재능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참고들을 수 있는 인내심을 주소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지혜를 배우게 하십시오. 그리고 남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성자 성녀와는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불편합니다. 하지만 말도 붙일 수 없이 괴팍한 노인네가 되기는 싫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오, 주님, 그 재능을 입 밖에 내는 훌륭한 재능도 겸비하게 하소서.

교회학자 아빌라 성녀 대 데레사의 기도문이다. 우리 아이의 세례명도 아빌라의 데레사이다. 그 아이의 생일이 데레사 성녀의 축일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인이 천상의 집으로 돌아간 날을 성인의 기념일로 정하고 축하를 한다. 부디 다음에 어느 비바람 부는 날에는 아이에게 단단한 우산을 가지고 가서 잘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 기억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땅위의 집을 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길을 평화롭게 걸어가길 원한다면 말이다.

IP *.69.159.123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1.09.30 22:47:56 *.8.230.133

흠~  축하 드려요!
드디어 막이 올랐군요.^^

프로필 이미지
범 누님
2011.10.02 09:22:53 *.69.159.123
백산,
벌써 입술이 마르고 기진맥진...합니당. ㅋㅋ
박수는 오히려 백산에게 ^^...... 짝짝짝~  
프로필 이미지
이병일
2011.10.01 08:00:40 *.208.165.184
감사히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11.10.02 09:23:59 *.69.159.123
감사합니다. 고마운 독자님.
힘을 내서 오늘도 한꼭지....써 볼게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52 [Sasha] 컬럼 23 Passing by Limbo World -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file [12] 사샤 2011.10.03 2283
2651 #4. 미나의 모의 비행 – 좌충우돌 미나의 구직 이야기 [8] 미나 2011.10.03 2702
2650 [늑대24] 지속가능한 자유를 위하여 [7] 강훈 2011.10.03 2134
2649 시간을 선물하세요 [8] 루미 2011.10.03 2207
2648 [Monday,StringBeans-#4] 사진과 함께하는 시간여행_1 file [12] [2] 양경수 2011.10.02 4716
2647 나비 No.23 - 놓아버림의 미학 [10] 유재경 2011.10.02 4935
» 장미1. 집으로 가는 길 [4] 범해 좌경숙 2011.09.30 2346
2645 23. 인생은 예측불허 file [7] 미선 2011.09.30 2257
2644 [10] 냉장고 [5] 최우성 2011.09.30 2020
2643 길이 끝나는 곳에서 (13 나가면서 ) file [4] 백산 2011.09.26 2211
2642 [Monday,String Beans-#3] 아산 현충사 _ 이순신과 이몽학 file [8] [2] 양경수 2011.09.26 8226
2641 [늑대23] 통(通)하여야 살 수 있다. [10] 강훈 2011.09.26 2024
2640 [Sasha] 컬럼 22 한 시간의 기적 ㅡ (살아남기위하여) [10] 사샤 2011.09.26 2301
2639 22. 시간을 선물로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file [12] 미선 2011.09.26 2533
2638 나비 No.22 – 작은 기쁨을 만끽하라 file [10] 유재경 2011.09.26 4027
2637 먼지를 털어내세요 [11] 루미 2011.09.25 2539
2636 미나의 모의비행 (3) file [10] 미나 2011.09.25 2412
2635 성공 키워드 아줌마를 보라 - 8. 목표 지향적 對 관계 지향적 書元 2011.09.25 4324
2634 응애 80 - 장미 밭에서 춤추기 [8] 범해 좌경숙 2011.09.24 2780
2633 길이 끝나는 곳에서 (12 어리석은 자가 산을 넘는다) [4] 백산 2011.09.23 2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