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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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시간_1, 양경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말이 있다. 시간을 시계를 통해 인식하는 현대인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은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몇 초를 얘기하는 것일까? 1000분의 1초? 1억분의 1초? 시간을 아주 미세하게 자르면 지금 이 순간 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물리적 시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답이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진기는 시간을 잘라내어 한 장의 사진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계다. 10초라는 시간이 한 순간에 인식될 수도 있고, 1/1000초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도 있게도 해준다. 위의 <사진의 시간_1>은 지어진지 10년 정도 지난 우리 회사 건축물의 외벽 일부를 찍은 사진이다. 오랜 세월 비를 맞고, 해를 쬐며 자연스럽게 생긴 벽의 모습이다. 시간이 만든 추상화다. '셔터 속도'는 1/30초로 설정했다. '셔터 속도'란 사진기가 빛을 받아들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1/30초를 담았을 뿐인데, 찍힌 대상은 10년의 세월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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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가속한 양성자의 충돌로 발생한 입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연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이 입자는 제네바에서 이탈리아까지 732km거리를 빛보다 60나노초 빠르게 도착했다. 측정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실제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물리학을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현대 물리학의 전제가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아 앞서가는 얘기일 수 있지만, '시간여행'이 가능할지 묻는 기사들이 많이 보인다.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질이 있다면 그 안에서 시간은 정지한 채로 있게 되고,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직은 실험상의 오류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언젠가 과학적으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고, 우주의 시작과 끝이 한 곳에 있으며, 그래서 사실상 순서의 개념의 없는 차원이 있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질지 모르겠다.
<사진의 시간_2, 양경수>
위 사진은 해질 무렵, 동네 교차로에 나가 찍은 사진이다. 그냥 보면 "신호등이 고장 났나?"고 생각할 것이다. 이 사진은 삼각대를 놓고 셔터속도를 10초로 하여 찍은 것이다. 실제 빨간불과 녹색불이 동시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10초 동안 녹색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모습을 한 장으로 담은 것이라는 얘기다. 10초의 시작과 끝이 한 순간에 보인다. 물리학자들이 밝히고자 하는 '순서가 없는 차원'이 있음을 사진은 이렇게나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직관주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유명한 설탕물의 비유를 통해 '절대적인 시간'을 말한다.
"설탕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싶을 때, 아무리 서둘러야 소용이 없다. 설탕이 녹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 내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더 이상 수학적인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나의 조바심, 즉 마음대로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없는, 내자신의 지속의 어떤 부분과 일치한다. 그것은 더이상 사유된 것이 아니라, 체험된 것이다."
수학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시간, 공식 속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직접 체험되는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 베르그송의 말대로 우리는 커피를 녹이며 커피 잔을 들고 있을 때나,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일상적인 순간을 통해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물론 그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려보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나아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을 구분하여 나누는 습관을 버려야만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을 전, 후의 순서로 보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선을 옆에서 보면 >・--------------------・ 왼쪽에서 오른쪽의 순서가 있는 흐름으로 보게 되지만, 관점을 바꾸어 출발점에서 보게 되면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시작과 끝이 한 점에 모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의 시간을 설명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이 하나라는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우주의 나이인 137억년을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지금 이 순간 '절대적인 시간'을 산다면, 영원을 느끼며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말이 시간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보면서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 말은 시계 속의 시간은 잊고, 온 몸으로 삶을 느끼며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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